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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태복음5:1-5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5-온유한 사람 본문

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5:1-5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5-온유한 사람

행복으로초대 2024. 2. 1. 21:47

마태복음 5:1-5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 나5 온유한 사람

 

우리 주먹 한번 쥐고 힘차게 시작해 볼까요?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은혜의 파도가 몰려옵니다)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 다섯번째 시간.

오늘은 온유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항상 생각하십시오.

사회통상적인 개념의 단어와 기독교의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꼭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분하지 않고 

세상의 개념을 그대로 교회에서 사용할 때, 

교회가 점점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갑니다. 

 

'온유' 라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사회,세상에서의 뜻과 교회, 하나님 나라에서의 뜻을 구별하세요.

사회, 세상에서는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 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온유의 뜻은 이 뜻과 다릅니다. 

자, 이제 우리가 사는 하나님 나라에서

온유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1. 온유함이란? 무엇일까요?

온유함의 그림 그리기 합니다.

이제부터 온유함이라고 하면 다음의 이미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첫번째 그림 보여주세요.

 

1)들소 vs 황소

들소와 황소의 그림입니다. 

들소와 황소 그 힘이 대단하죠? 

들소나 황소의 뿔이나 받히거나

뒷다리에 한방 맞으면 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힘쎄고 거친 황소도 길들여지고

코뚜레를 코에 꿰면 사람의 손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랴~이랴~~ 하면 가고, 워~~워~~하면 섭니다. 

코뚜레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갑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길들여진 사람 - 온유한 사람입니다. 

누구에게 길들여졌을까요? 하나님에게 길들여진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두번째 그림입니다. 

2)야생마 vs 전투용/경주용/승마용 말

아무리 힘이 쎄고 잘 달리는 명마라도   

감당하기 어렵고 아무도 탈 수 없는

야생마 자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쟁에 나갈 때 타던 달들은

성격이 험하고 힘이 쎄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야생마가 아니면

전쟁에 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생마를 길들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길들인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런 야생마를 잘 길들여 경주용 말이나 승마용 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야생마가 길들여진 것, 이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우리 안에 야생마가 많이 있거든요. 우리 마음 속에도 있고,

여러분 집에도 날뛰는 야생마가 있죠?

길들여지는 것, 그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세번째 그림입니다. 이제 온유에 대해서 아시겠죠?

3)물, 불, 바람

통제되지 않는 물, , 바람은 끔찍한 자연재해가 되어

큰 피해를 끼치지만 통제되는 물, , 바람은

수력이 되고, 화력이 되며, 풍력이 되어

전력을 생산하고 큰 유익을 줍니다.

 

그래서 온유함이란?

길들여진’, ‘통제되는’ ‘다스림을 받는이라는 의미입니다.

팔복의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진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다스림으로 길들여진 사람입니다.

 

2. 온유는 성령의 열매

이제 세상에서 말하거나 도덕책에서 말하는 온유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온유가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유는 팔복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하나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 온유해지기로 결심해서 온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밭으로 삼고,

성령님께서 농사지으셔서 맺힌 열매가 온유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나를 변화시켜

온유한 사람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위해 늘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옛사람의 모든 습관을 버리고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복이 있도다~ 온유한 사람이여~

하나님께 길들여진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 길들여져서 복받읍시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들소 같으면 하나님~

제 코에 코뚜레를 하셔서 하나님이 이랴~하시면 가고

워워하시면 서는 사람되게 해 주세요.

이것을 조금 고상하게 표현해서 찬양한 것이,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라.

내 성격이 야생마 같아서 아무도 감당못하고

천방지축, 혈기가 장난아니라도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능력으로

저를 길들여주시고 통제해 주셔서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 길들여져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는 사람이 됩시다. 

 

3.그럼 무엇이 길들여져야 하는가?

온유는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으로 길들여 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많은 것들이 길들여 달라고 기도해야겠지만

오늘은 두 가지만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1)나의 감정을 길들여 주소서!

<모세 / 요셉의 온유함 : 퍼즐 법칙>

 

잘 들으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감정대로 움직이면 안됩니다.

보통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잘 하는 말이

"그래도 나는 뒷끝은 없다!" 하시죠.

앞끝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정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감정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말씀에 길들여지지 않았고

말씀에 통제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온유함의 첫번째 대표 모세를 만나보겠습니다. 

♥모세의 온유함

출애굽기32:31-32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출애굽한 이후, 끊임없이 모세를 원망하고

비방하고 반역하는 백성들,

결국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하나님께 반역을 했습니다. 

이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셔서 다 죽이려고 하실 때

모세가 자기 감정대로 했으면,

"네~ 하나님~ 다 죽이세요 꼴 좋다" 라고 했겠지만

모세는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을 막아서서

차라리 자기 이름을 지워서라도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합니다.

 

나를 원망하고 나를 비방하고 나를 배신하며

나를 아프게 한 사람에 대해서

차라리 제 이름을 지워서라도 그 사람 살려주세요.

이것이 될까요네 진짜 어렵습니다. 사실 안됩니다. 

아무리 은혜 받아도 내 감정이 상하면, 쉽게 화냅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참 아이러니한게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생명도 바칠 것처럼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부흥집회,성회 같은데 가보면 눈물콧물 다 쏟으면서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주여~~~ 이 땅을 고쳐주소서~!북한땅을 살려주소서!

온 땅과 온 민족을 살려주시옵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 주소서~~그러면서 예수님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겠다고 하면서도

내 감정, 기분 상하게 한 한 사람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안되니 기도해야 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모세는 비록 악한 백성들이지만, 그들을 살려달라고,

자신의 이름을 지워서라도 이들을 살려달라고 합니다. 

모세를 향해서 비방과 원망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기분 상하게하고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위해 기꺼이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설 수 있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세의 온유함에 대해서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민수기12:3

이 사람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 말씀의 모세의 형제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을 대항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면 이해가 되는데,

자신의 형제인 아론과 미리암이

자신을 향해 비난할 때 모세의 감정은 어땠을까요?

안그래도 백성들의 비난도 힘든데, 형제들의 비난을 참을 수 있을까요?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하지만 그 때도 내 감정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살아계신 성령님~ 감정을 길들여주소서.

말씀의 능력으로 감정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기도합시다. 

 

두번째 온유한 사람을 만나보겠습니다. 

♥요셉의 온유함

창세기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이 감정대로 사는 사람이었다면

형제들은 다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감정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따라하십시오. 퍼즐 법칙. 

퍼즐 법칙을 기억하십시오. 퍼즐이 뭐죠? 

제 딸들이 백화점이나 어린이놀이,장난감 코너에 가면

꼭 사달라고 졸라대고 사들고 집에 와서는

방에 다 흩어놓고 빈공간에 하나씩 하나씩 맞춰갈 때면...

저게 언제 완성은 되려나? 했습니다. 

 

그 퍼즐들 하나하나를 보면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그 퍼즐들 하나하나를 보면 어떤 그림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퍼즐들 하나하나를 보면 그냥 선이고, 색깔입니다.

어떤 퍼즐조각은 눈썹의 한 부분이 있고, 어떤 조작은 손톱의 한 부분

어떤 퍼즐조각에는 웃음짓는 입꼬리가 있고,

어떤 퍼즐조각에는 눈물짓는 한 사람의 눈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퍼즐조각에는 화내고 분노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고,

어떤 퍼즐조각에는 걱정과 염려로 고민하며

기도하는 어떤 사람의 손이 있습니다.

하지만 퍼즐조각 하나만 보면 어떤 그림인지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조각들을 다 맞춰보면 정말 멋진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아하~이거구나~~

요셉이 형제들에게 배신당할 때

노예로 팔려갈 때,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당할 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 때,

요셉은 자신이 들고 있는 조각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모든 감정과 화와 분노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다스리며

인내하고 버텨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조각이구나~! 하루 하루, 순간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조각이구나! 이것을 맞추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낸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은 가장 선한 그림, 최고의 걸작품을 완성해 가신다! 할렐루야!

 

그 순간, 그는 형제들이 두려워하며 떨고 요셉 앞에서 목숨을 구걸할 때

이 순간의 조각을 들고 형제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말해 줍니다. 

형제들이 자신을 해하려고 했던 조각을 맞추고

하나님께서 온 땅에 구원을 베푸시는 완성된 그림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하루 하루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가장 멋진 그림의 한 조각이구나.

오늘 내가 들고 있는 조각은 화가 나는 조각, 병에 걸린 조각,

사고가 난 조각, 실패한 조각, 눈물흘리는 조각, 싸우고 다툰 조각,

괴로움에 삶을 내려놓고 싶은 조각.온갖 좋지 못한 조각을

들고 있지만 이 그림 전체를 디자인하고

그린 분은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잠잠히 사랑하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렇게 내 하루의 조각, 하나씩 자기 자리에 놓아가서 다 합쳐지면

~~하나님이 이런 멋진 그림을 그리셨구나! 놀라고 감동하는 때가 있을 겁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배신과 자신을 팔았던 것들도

하나님의 퍼즐 중 하나였음을 깨달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하심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었기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감정이 길들여짐으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퍼즐법칙을 기억하시고 감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나의 말을 길들여 주소서!

<스데반, 예수님의 온유함 : 3초의 법칙>

 

성도의 말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성도의 입술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진리와 복음을 담는 입술에서

어떻게 상처주고 괴롭히고 깨뜨리고

아프게 하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성도는 입술이 길들여져야 합니다. 

말이 길들여져야 합니다. 

말을 잘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말로 사람을 아프게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반면, 말로 사람에게 힘을 주고 살리기도 합니다. 

 

세번째 온유함의 대표는 스데반 집사님입니다. 

♥스데반의 온유함

스데반의 마지막 말: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60)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 돌을 들고 무섭게 노려보며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한 말입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같은 말씀을 한 분이 또 계십니다. 

 

네번째 온유함의 대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함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죽음의 고통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 그 위대한 말씀이 울립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나오는 말이 그 사람 자체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성도들의 죽음 중,

한 집사님의 마지막 순간을 말씀드립니다. 

마지막 숨을 짜내면서 둘러선 가족들과 성도들 앞에서

"울지마세요. 저는 이제 주님 손잡고 갑니다"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믿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주 동안에 건강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순간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요로결석이 몇번이 나왔어요. 

요로결석이 정말 아프거든요. 거의 해산의 고통과 맞먹는다고.

남자가 아기낳는 체험을 하는 정도. 저도 요로결석으로 방바닥을 

뒹굴다가 너무 아파서 엠블란스에 실려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눕혀놓고 아무 것도 안해 주는 거에요.

아파 죽을 것 같은데, 아무 치료도 안해주니까

간호사,의사들을 보면서 욕이 입천장까지

올라왔다가 멈춘 적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욕은 안했습니다. 멈췄습니다. 

말을 다스렸습니다. 

 

예수님과 스데반 집사님 처럼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도 이길 수 있도록

성도는 말이 길들여져야 합니다.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잠깐 3초 법칙을 따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입에 3, 가슴에 30. 다시 몇초요? 사람마다 다릅니다. 

3초, 5초, 10초 잠깐 화를 내려놓고 쉼호흡하고 멈췄다가 말하세요.

내 안에 야생마가 있습니다. 훈련되어야 합니다. 길들여져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나의 입술의 모든 말이 길들여지게 하소서.

 

4. 온유한 사람이 받는 복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 땅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내세의 의미에서 ‘천국’을 선물로 받습니다.

팔복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우리가 받는 땅은 무엇일까요?

 

2)현세에서는 ‘사람’을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 길들여진 온유한 사람에게 만남의 복을 주십니다.

제 성격이 상당히 다혈질이었습니다.

상당히 까칠하고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

일이 안되면 짜증을 많이 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화도 많고 주체하지 못해서 사는 동안

인생의 쓴맛을 본 적도 많았습니다. 

온유하지 못한 나의 감정, 나의 말.

그로 인해 힘든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야생마 같은 상태로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선물과 같은 귀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시고

그 분들을 통해 온유함으로 길들여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저를  따라해 보세요. 최선의 다툼보다 차선의 평화를. 

다시 한번 더, 최선의 다툼보다 차선의 평화를.

저의 목회철학을 말씀드릴 때가 있을텐데,

저의 목회철학 중 중요한 원칙입니다. 

최선의 다툼보다 차선의 평화를. 

한 교회에서 싸움닭처럼 훈련받았습니다. 

장로들과 싸우는 방법, 애먹이는 성도들을 이기는 방법

이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교회있는 동안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만약 그 교회에 있다가 다음 교회로 갔으면 교회가 박살이 났을겁니다. 

그런데 교회를 옮겼을 때, 만난 담임목사님을 통해

최선의 다툼보다 차선의 평화를 몸속 깊이 탑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깊은 경험을 하도록 

또 다른 훌륭하신 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동안, 수많은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을 

섬겼습니다.  그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이 저를 위해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담임목회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힘도 많이 써주셨습니다. 영주시민교회 담임목사로 올 때도

선교사님들의 기도와 측면지원이 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동안 섬겨왔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

함께 했던 동역자와 열심으로 함께 했던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땅이며, 

지금은 우리 영주시민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복된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사람들에게 도와줄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선한 길로 인도해 주는 믿음의 좋은 친구,

좋은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길들여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남의 복을 주시며

사람을 통해 도우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