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2024고난주간5:십자가는 흘려보내는 것이다(요19:38-42) 본문
2024고난주간5:십자가는 흘려보내는 것이다(요19: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때는
12제자가 다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도망친 12제자 외에
예수님의 제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고
자신의 무덤으로 쓰려고 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자신의 것으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다 버리고 도망쳤을 때,
자신이 가진 무덤으로, 자신이 가진 향품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었던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십자가 위에 초라하게 매달려 있는
초라한 예수님에게 자신의 가진 것을
흘려보내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영광의 왕이시요, 온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초라한 시체가 되셨고
감히 두려워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을 때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을 때
그것으로 부활을 위한 무덤에 내려가시는 일을 성취하게 됩니다.
흘려보냄의 중요성
흘려보내는 것,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흘려보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흘려보내는 것은 단순히, 착한 일, 선한 행실, 좋은 일이 아닙니다.
흘려보냄에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계속 달려계시면 안됩니다.
왜 십자가에 달려 있으면 안될까요?
예수님은 무덤으로 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셔야 되고,
무덤에서 3일 만에 부활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 순간에는
예수님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시체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가장 낮고 천한, 비참한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이 때,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해야 하고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야 하고
누군가는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 묻어야 하고
누군가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장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해야 할 12제자는 다 두려워서
자기 목숨 살려고 다 도망쳤습니다.
그럼 이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서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를 내리고
자기 죽으면 들어가려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고,
그 곳에서 향품바르고 세마포로 싸고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한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흘려보냈는데,
이것이 부활의 승리를 위한 과정을 이루어나가는
너무나 중요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위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흘려보냄은 도덕책에 나오는 착한 일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세요
참 잘했어요~~~ 뭐 그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나는 흘려보냈는데, 그 흘려보냄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위해
나의 흘려보냄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부활의 승리를 위해
나의 가진 것을 쓰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흘려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니고데모의 흘려보냄을 선용하여
무덤에서 부활의 승리를 위한 일에 쓰셨습니다.
십자가는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십자가에 대한 비전과 꿈이 너무 위대합니다.
성도마다 십자가에 대한 생각이 너무 큽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십자가는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를 흘려보내지 못할까요?
1.십자가를 묵상만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공부만 했기 때문입니다.
십가가를 보고 울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무덤을 보고 울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지금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여러분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 계시지 않습니다.
십자가 형상을 쓰려면
예수님이 못박힌 십자가 쓰지 마세요.
무덤을 보고 울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무덤을 보고 울기만 하니까 흘려보냄이 안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우울하게, 우중충하게 있으면 안됩니다.
고난주간에 고난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고난주간은 고난당하는 주간이 아니라
더욱 사랑하는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디 계실까요?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무덤에서 올라오셔서
낮고 천한 사람들, 힘들고 고통받고
눈물짓고 괴로워하고 신음하고
너무나 도움이 필요한 힘들어 하는 사람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마치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처럼
죽음과 같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가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무덤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위해 오셨고, 살리셨고, 구원하셨고
나에게 힘주셨고, 일으켜 세워 주셨고,
지금 하나님의 사랑 받으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예수님 계시지 않습니다.
평생 십자가를 묵상만 하고 공부만 하다가
십자가는 언제 질까요?
십자가는 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살아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살아내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가슴에 세운 십자가.
그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의 작고 초라한 섬김이지만
낮아짐과 수고의 십자가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흘려보내야 합니다.
왜 십자가를 흘려보내지 못할까요?
2.십자가가 전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장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고난주간이 되면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해야지.
금요일에는 정사예배를 드리겠지.
정사예배 드릴 때는 성찬식을 해야겠지.
고난주간이 되면 해야할 일들이 생각이 나겠지요?
우리 머리 속에는 고난주간에 해야 할 일들이
이 정도 밖에는 안되요.
예수님을 딱 내 수준으로 가둡니다.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정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흘려보냄을 위해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고난주간에만 머물고,
정사예배에만 머물고
부활절에만 머물면 안됩니다.
평생 내 안에만 머무르고 있는 십자가는
예수님의 아픔입니다.
우리들만의 고난주간,
우리들만의 새벽기도,
우리들만의 정사예배
우리들만의 부활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온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주간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고난주간이고,
그것이 십자가이며
그것이 복음이고
그것이 교회입니다.
대한민국 온 교회에서 지금 거의 같은 시간에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를 드리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난주간에는 세상이 뒤집어 져야 되요.
"십자가는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이 마음을 가지고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면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묵상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고난주간특별예배 시간만큼
시간을 내고, 예배드리는 시간만큼 물질을 내고
예배드리는 시간만틈 작은 수고를 내서
흘려보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필요한 누군가를 향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우리의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지난 주부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번에는 누구에게 흘려보내야 합니까?
제가 한달에 한번씩
제 나름대로의 흘려보내기 프로젝트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위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흘려보냄을 하려고 합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지난 주간, 강력하게 말씀으로 말씀하셨어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흘려보내는 십자가로
누군가의 '나음'을 위해 수고하는 분들이 누구인가?
성도들 중, 환자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간병하시면서
지쳐있는 분들을 위로해야겠다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역장님들께 부탁드렸어요.
구역에 지금 가족들 병간호 중인 분들이 누구인지
파악해 달라고 했고, 이번 주 다음 주까지
주주운동 흘려보내기 하려고 합니다.
작은 선물이라고 하고 힘내라고 뭐라도 해주고 싶어요.
기도하는 목사가 있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으니까.
위로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십가가는 흘려보내는 것이다.
고난주간은 더욱 사랑하는 주간이다.
우리가 더욱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십자가를 흘려보내십시오.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 섬기면 그 섬김을 하나님께서 받으셔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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