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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태복음7:1-6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27-비판하지 말라 본문

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7:1-6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27-비판하지 말라

행복으로초대 2024. 8. 30. 19:33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 27- 비판하지 말라(7:1~6)

 

예수님을 믿고 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준을 세웁니다. 

!~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구나

어느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인가?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분별해야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무나 유명한 말씀인데 

오늘 말씀은 무조건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 비판할 때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판을 해도 꼭 이것을 지켜야 한다! 무엇일까요?

건전한 비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첫째. 비판에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비판을 하게 될 때, 스스로 생각해 보고

깨끗한 비판이면 비판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비판이면 하지 마십시오.

비판이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면 깨끗한 비판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잘못된 판정>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납득되지 않는 판정 때문에

경기가 엉망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한번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계획적이거나 부정한 의도로 

잘못된 판정을 하는 심판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학연, 지연, 인맥으로 검은 돈이 오고가는 것이

나중에 발각되면 그 심판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말 오랜 시간 훈련을 열심히 하면서 승리를 위한 목표로 달렸던

운동선수가 오랜 시간 노력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다. 

판정에 불순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판정이 아니면 죄가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

정말 깨끗한 비판을 할 수 있습니까?

정말 깨끗한 비판은 사랑으로 합니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정말 너무나 아끼고,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정말 걱정이 되기 때문에

비판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혹시 비판하실 때,

정말 사랑해서,

정말 아끼고 소중해서,

정말 걱정되고 염려되서,

비판하십니까?

 

<박OO권사님 이야기>

사랑의 편지 :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면

검은 그림자가 쓰~~윽, 그러면 어김없이 편지 한장이

자리에 놓여져 있습니다. 

내용은 설교할 때, 발음이나 내용상의 문제들에 대해서

지적하는 내용.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교역자들이 그 편지를 사랑의 편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예를들면) 쫓아서 - 좇아서 와 같은 발음.

경상북도 구미출신의 나? 발음이 어렵다. 

재물? 제물?

 

비판을 할 때, 사랑이 아니면 불순물이 들어갑니다.

혹시 불순물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비판이 아닌 비난이 아닌가요?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비판할 때, 미움의 불순물이 들어가 있지 않는지?

비판을 할 때는 상대방보다 내가 더 높은 위치에

마음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교만이라고 하죠.

그래서 교만의 불순물이 비판에 많이 들어갑니다. 

교만의 불순물이 위험한 것은 비판할 때,

비판하는 자신이 하나님이 됩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깨끗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죄가 됩니다. 

 

나와 관계가 좋은 사람에게는 관대하면서

나와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의 흠은 왜 그렇게 잘 보입니까?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비판을 많이 합니다.

사람을 세우기 위해 비판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특히, 비판은 뒷담화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비판하는 사람. 그 사람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한다고 해서 뒷담화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깨끗한 비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순물이 잔뜩 낀 더러운 비판입니다.

죄입니다. 비판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말 소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하십시오.

정말 사랑하십니까? 정말 아끼십니까? 

 

둘째, 먼저 비판이 적용되어야 할 곳은 '자기'입니다.

누군가를 비판하려면 먼저 자기에게

먼저 적용을 해야한다는 것.

 

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의 특징은 작다는 것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단점입니다. 작은 잘못입니다. 작은 실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을 가지고 있고,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합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적용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단점과 잘못, 실수를 잘 보지 못합니다. 

단점과 잘못, 실수를 작게 여깁니다. 

그리고 남의 단점은 잘 보고, 크게 여깁니다. 

그래서 남 비판하기를 더 잘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비판의 적용은 누구에게 먼저 하라고 합니까?

자기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려면 자신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문제점을 더 크게 보고 겸손해 져야 합니다.

나의 잘못과 실수를 고백할 수 있으면, 

사실, 남을 비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자기를 비판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비판과 회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례요한의 첫번째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첫번째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그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성도들이 어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비판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새롭게 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비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건전한 비판, 깨끗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교회가 세워지려면 

남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나를 향한 비판이 먼저 입니다. 

 

교회는 회개공동체입니다. 

교회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합니다.

교회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교회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단점을 고백합니다.

교회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가 자꾸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남의 눈에 있는 티를 잘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평안한 이유는

나의 눈에 있는 들보가 너무 커서

그 들보 때문에 감히 부끄럽고

죄송함 밖에 없어 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말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 말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눈에 들보가 있는 줄 아는 사람은 낮아집니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출 줄 압니다.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압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단점은 나를 낮추시는 일에 쓰시고

나의 장점은 남을 높이기 위해 쓰십니다.

나의 장점은 남을 섬기기 위해 쓰십니다. 

 

나의 연약함, 나의 단점, 부족함을 서로 고백하고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괜찮다고 하고,

우리 서로 칭찬하기에도, 잘 하는 것 인정해 주기에도,

바쁜 영주시민교회 하나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헤아림?의 뜻?  

 

2절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비판이라는 말이 계속되다가 헤아린다는 말이 나옵니다. 

비판을 할 때면 그 비판한대로 비판받는데,

반대로 누군가를 헤아리면 그 헤아림으로

똑같이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헤아림?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라고 할 때

이것을 신적 수동태라고 합니다.

내가 비판받고 헤아림을 받은데,

누가 그렇게 한다는 말일까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헤아림이라는 말입니다.

 

헤아림이라는 단어는 경제용어입니다.

거래를 할 때 썼던 말이라고 합니다. 

어떤 거래를 할 때, 양이나 길이를 재는

''를 들이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양과 길이를 재는

자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무엇을 측정하시는가 하면

내가 비판하는 양과 길이를 측정하시고

내가 한대로 그대로 갚아주시겠다는 무서운 말입니다.

헤아림이라고 하니 좋은 뜻으로 보이지만

좋은 뜻인데, 무서운 말입니다.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다 기억하십니다.

비판하지 않고 네가 다른 사람을 헤아려주면

이것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다 갚아주십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의 자! 앞에서 어느 누가 완전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흠도 없이 티도 없이 완벽히 의로울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겸손합시다. 낮아집시다.

그동안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깨끗한 비판이 아닌 더러운 비판,

미움과 교만이 가득 들어간 비판을 했다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합시다.

 

자신을 돌아보지는 않고

남의 잘못한 것만 비판하며 아프게 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데,

하나님의 자! 그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