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전도서7:1-7 메멘토 모리 본문
'메멘토 모리'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위키백과에 그 뜻을 검색해 보면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로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개선 장군의 화려하며 웅장한 모습 뒤에서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치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승리하여 개선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라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1절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할만큼
사람들은 명예를 중요시합니다.
살아보니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명예의 중요성은 더합니다.
모두 자기 이름의 명예를 위해 삽니다.
전도서 22장 1절에는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 인품 그 자체입니다.
좋은 기름, 즉 물질적인 부요보다 좋은 의로운 삶을 살아내서
얻은 명예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죽는 날이 출생한 날보다 낫다는 말은
좋은 평판, 명예를 얻고 세상을 마감하기까지
혹독한 시련과 어려움이 따랐고,
이제 그 힘든 시간을 잘 마쳐서 좋은 이름을 얻고
마감하는 것이 큰 복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와 비교도 할 수도 없는 천국의 삶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에
죽는 날이 출생한 날보다 낫습니다.
영원한 안식과 기쁨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단, 누구에게만 이 말씀이 적용될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영원한 안식과 기쁨의 날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날입니다.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 날입니다.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하고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살아갑시다.
2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이것을 마음에 둘지어다"
죽는 날이 출생한 날보다 낫고
초상집이 잔칫집보다 나음은 '죽음'이 가진 의미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심판과 지옥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구원과 천국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항상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초상집이 잔칫집보다 나은 것은 죽음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을 기억하며 늘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초상집만큼 죽음을 많이 생각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곳이 초상집입니다.
그리고 내가 맞이할 죽음을 생각하는 곳입니다.
산자는 이것을 마음에 두라고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3절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왜 슬픔이 웃음보다 나을까요?
분명히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는데, 왜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가?
이 말씀은 세상의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겨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고통으로 지쳐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천국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더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슬픔을 통해 죽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낫습니다.
메멘토 모리!
개선하는 장군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 교만해 질 때,
늘 겸손할 수 있도록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던
로마 장수의 지혜를 배워야 겠습니다.
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그래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우매자는 먹고 마시며 웃고 즐기는 잔치집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도 지혜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과 같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쁨입니다.
그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삶.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에게는 영원한 기쁨이 있으니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뻐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또 기뻐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분별해야 합니다.
마음이 초상집에 있으며 죽음을 기억하며 살기 위해서
우매한 자들의 노래와 웃음소리를 듣는 것보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 듣기를 기뻐해야 합니다.(5,6)
책망을 듣는 것은 쓴 약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약이 쓰지만 몸에 좋은 것 처럼 책망을 즐겨 들으면 큰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매자들의 달콤한 노래 소리와 웃음 소리,
마음을 교만하게 만드는 아첨하는 소리에 넘어가지 말고 분별해야 합니다.
또한 탐욕을 분별해야 합니다.
뇌물을 멀리해야 합니다.
탐욕은 사람의 마음을 세상에 묶어 둡니다.
그래서 탐욕과 그 뇌물은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누릴 부귀영화보다
더 소중한 것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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