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신명기16:9-12 감사하는 성도3-복을 복되게 하는 감사 본문
9 일곱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도입>
감사하는 성도는 가장 좋은 첫열매로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사님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은 선교사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선교사님의 아드님이 미국에서 콜롬비아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지만,
첫 3년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뜻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3년을 마친 후, 직장에 취직하려고 했는데,
4군데에 원서를 냈는데 4군데 다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낙심하기 딱 좋은데,
하나님께 가장 좋은 자신의 시간을 드린 삶을 후회하지 않고
다시 원서를 냈는데, 콜롬비아교육대학원생들이
꿈의 직장으로 꼽는 가장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게되었습니다.
특히,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꼭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을 믿고
하나님께만 복을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신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당당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순간감사하고 매일감사하고 모든 것 감사해야 합니다.
이중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고난, 질병, 사고, 실패, 괴로운 삶의 현실의 삶 조차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감사는 현실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현실에 대해서 감사하면
항상 감사, 쉬지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가 안됩니다.
현실에 요동치면 감사도 요동치고
현실이 흔들리면 감사도 흔들립니다.
어떤 때는 감사하다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우리의 감정에 따라 감사하면 안됩니다.
반드시 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에 대한 확신,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마태복음 5장 4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악인과 선인,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악인과 선인을 구분하는 기준.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비와 해를 이 장소에 내려주시면 모든 사람이 다 햇빛을 받고 비를 맞습니다.)
하나님은 해와 비를 누구에게나 내려주십니다.
해와 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복을 말하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려주시는
해와 비, 내려주시는 복이 얼마나 큰지 알고
그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동일한 환경과 동일한 상황 속에서
아무리 해와 비를 내려주어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히려 해를 비추면 해가 뜨겁다고 불평하고
비를 내려주면 비 때문에 불편하다고 짜증냅니다.
악인과 선인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해가 비추고 비가 내리는 같은 환경, 같은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것,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고
더욱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선인이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 말씀 속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감사하되 자원하여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이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알아야 하나님이 주신 복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주신 복대로 감사할 수 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무리 복을 주어도
그게 복인줄 모르고 복인줄 모르니까 감사할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니까 하나님께 드릴 것도 없고.
하나님~도대체 언제 복을 주셨습니까? 이럽니다.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씀이 기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감사할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자식을 뼈빠지게 키웠습니다.
단물 쏙 빠지게 자식을 위해 다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자식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갔고, 명성을 얻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부모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가
저한테 해준게 뭐가 있습니까?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실력으로 여기까지 성공했습니다.
도대체 저에게 해 준게 뭡니까?" 이렇게 말하는
호로자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식은 부모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여기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희생하시고 고생하시면서
저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은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처음 아들 1번, 두번째 아들 2번.
여러분의 자녀가 1번이면 좋겠습니까?
2번이면 좋겠습니까?당연히 2번이겠죠?
정말 2번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2번이 되십시오.
그런데 이것이 인생세상에만의 일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나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주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작은 것 하나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감사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주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
주께서 주신 복에 감사로 반응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기서 오고 오는 세대에게 감사로 반응하라고
박제하듯이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신 사건이 있습니다.
10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며
나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절함을 들으시고 대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시고 그들이 대제사장에게 가는 동안에 나병이 고쳐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감사로 반응하는가? 반응하지 않는가로 나뉘어집니다.
10명 중 딱 한명, 사마리아 사람만이 가는 길을 돌이켜
예수님께 찾아왔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아홉은 어디있느냐?고 하시면서
이 사마리아 이방인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왔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2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동일한 나병이었고, 예수님께 고쳐주시기를 구한 동일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제사장에게 가는 동일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병이 나은 동일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명 만이 감사의 반응을 합니다.
그리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로 반응하는 것은
감사는 구원받음의 증거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육체의 질병만 고침받은 9명이 있는 반면에
영혼까지 구원받은 1명의 사마리아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사람이 하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나의 삶에 감사한 흔적이 있었는가?
내가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이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십니까?
감사로 반응하십시오. 하나님께 감사의 삶을 살아갑시다.
감사하는 삶이 우리의 믿음생활에 왜 중요할까요?
1)감사는 사랑을 회복시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2 너는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합니다.
인생의 쓰디쓴 경험이 양약이 되어
오히려 큰 힘이 되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서전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함께 나눌만한
중요한 사건이나 이야기들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서전에서 감동을 주는 내용은
절망의 자리에 있던 작가가 고난과 가난, 역경을 헤치고 일어나
성공의 자리까지 이른 내용이 주가 됩니다.
그래서 그 고난을 겪을 때는 가난과 역경을 겪을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힘이 되고 고난이 양약이 되고 성공적인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그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였을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항상 이 때로 돌아가게 합니다.
"애굽땅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 때를 기억해라~! 이 때를 생각해라! 이 때를 묵상해라!
이 때는 애굽 땅 종되었던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전성기가 언제였을까요? 솔로몬의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때를 기억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때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때가 아닌 애굽땅 종 되었던 때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애굽 땅 종되었던 때는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희망도 없고
오로지 한숨 뿐이었던 비참한 때.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 구원하신 역사.
10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으로 애굽사람들 치신 역사.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광야에서 벌어진 전쟁과 승리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이 약하고 고난의 시기, 광야의 때를 지나지만
하나님으로 충만한 때,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경험하던 때.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보던 때, 그래서 하나님만이 존재하던 그 때.
그 때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경험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오히려 솔로몬의 때, 금을 돌같이 여길 정도로 풍족하던 때가 아니라
애굽 땅 종되었던 때. 그 때 얼마나 좋았느냐? 내가 너를 사랑했고,
니가 나를 사랑했고, 그러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느냐?
비록 가진 것 없고, 비록 풍부하지 못했어도 우리의 사랑은 충만했다!
이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애굽땅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다시 회복되게 하십니다.
사랑합니다의 또다른 표현이 '감사합니다' 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언제가부터 이 사랑해라는 말이 고마워~라는 말로 바뀌더라구요.
아내가 저에게 해준 일을 생각하며 너무나 고맙고
저를 위한 아내의 사랑과 헌신 때문에
여기까지라도 할 수 있었지~라고 감사한 마음이 많이 생깁니다.
<문권사님 이야기>
어느날 갑자기 어떤 권사님이 캐리어에 짐을 가득히 넣어서 교회에 와서
"목사님 저 집나왔어요!" 그러는 거에요.
제가 놀라서 "권사님 왜요?" 라고 하니까
"수십년을 살았는데, 맨날 소리만 버럭 버럭 질러대고
내가 지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권사님은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까지 모신 권사님입니다.
시어머니 한분만 모셔도 힘든데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까지 모셨으니
이정도면 효부상감이잖아요.
그런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맨날 소리지르고 뭐라하고
그러다가 그날도 남편이 또 막 화를 내면서
이 권사님한테 소리 소리 지른겁니다.
그 남편이 장로님이세요.
그 장로님이 소리 지르고 나니까
내가 지금까지 참았는데 나 이제는 못참는다 하면서
짐챙겨서 집나온 겁니다.
막상 나오니까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교회온겁니다.
평생을 살아도 이 남편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했다는 겁니다.
그 말 듣는게 소원이에요.
고마워~수고했어! 고생많이 했다. 나 만나서 힘들었지?
미안하다! 이 말이 그렇게도 어려운지. <숙제>
하나님 사랑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해주신 일들에 대해 감사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도 내게 복주신것을 헤아려 보십시오.
질병 중에도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내가 알리라 아멘.
역경 중에도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내가 알리라 아멘.
2)감사는 복을 복되게 합니다.
복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복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복은 갇힌 웅덩이가 되지 않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갇힌 웅덩이처럼 존재한다면 복이 아닙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은
나무를 돌아가는 흐르는 시냇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의 특징은 흐르는 시내와 같습니다.
돈은 복도 아니고 저주도 아닙니다.
하지만 돈이 복이 되는 것은 돈이 흐를 때입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재능으로만 되면 복이 아닙니다.
그냥 남들보다 탁월하고 실력이 있는 것일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재능이 흘러가면 그것은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복이 흘러갑니다.
그것이 복의 특징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으면, 이삭에게 복이 흘러가고,
이삭이 복을 받고 야곱에게 흘러가고 야곱에게서 요셉으로
하나님의 복이 흘러갑니다. 그렇게 흘러흘러간 복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흘러 오늘 우리에게까지
흘러왔습니다. 복은 흘러갑니다. 그 훈련은 맥추절을 통해 하십니다.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받은 복을 세어보고 그 복을 모두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왜 복을 흘려보내고 함께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맥추절 말씀과 함께 하시고
왜 맥추절에 이 일을 더 집중적으로 하라고 하실까요?
감사를 하면 할수록 이렇게 함께 복을 즐거워하고 흐르게 하는
복이 복되게 하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복이 복되게 합니다.
맥추절은 단지 하나님께만 감사를 드리는 절기가 아니라
이웃과 형제들에게 나아가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추수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남겨 두게 하셨습니다.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 것(레 19:9,10)
떨어진 이삭을 다 줍지 말 것(레 23:22)
가난한 자를 위해 열매를 다 따지 말 것(신 24:19-21)
혼자서만 주신 복을 생각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가족과 다른 사람들과 레위인과 제사장들과
나그네와 이웃에 사는 고아와 과부들과
다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이 되면 소외된 이웃을 초청하도록 했습니다.
소외된 이웃은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관심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복되게 하는 방법은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과 나그네와 고아들과 가난한 과부들로
표현되는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나누며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레위기 23장 22절
너희 땅의 곡물을 밸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곡식을 추수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규례가 있었는데,
바로 밭의 모퉁이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 가난한 자들이 밭의 모퉁이에 남겨진 곡식을 베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추수하다가 떨어진 것들을
줍지못하도록 해서,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복지정책이었습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가 무엇인지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는 '함께' 하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 사랑이 이웃사랑으로 흘러갈 때,
하나님께 감사가 이웃에게 감사로 흘러갈 때 완성됩니다.
감사하는 성도는 마음에 섬김과 나눔의 모퉁이를 만든다!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 중, 항상 이 모퉁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나누고 섬기고 베풀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차를 사주신 집사님이 계시죠. 월급을 받으면
항상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 및 헌금을 제외하고
교역자와 교회의 봉사자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섬길 돈을 따로 만들어 그것으로 섬기고 격려하셨습니다.
감사절의 기도문이라는 짤막한 글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굶주린 자들을 기억합니다.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병자들을 기억합니다.
친구들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외로운 자들을 기억합니다.
자유를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속박당한 자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은사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지게 하소서. 아멘.
이 기도문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감사와 더불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감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히 13:16절에서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축복을 감사드리되
가지지 못한 자들을 꼭 기억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한 방법입니다.
나누라는 명령은 예수님께서도 명령하셨고,
또한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인생의 질문을 아침마다 던지십시오.
"너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보았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전쟁 고아를 돕기 위해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설립한”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이 계십니다.
지금 컴패션은 세계 25개국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1952년 겨울, 차가운 새벽 거리를 걷던 중
길가에 널린 어린이를 군용트럭으로 던지는 인부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컴패션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인부들이 쓰레기를 던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얼어 죽은 어린이임을 발견했다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마음 속에
‘너는 이것을 보았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들어왔고,
미국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어린이를 잊지 말아주세요.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한국 어린이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라고 외쳤고
지금까지 컴패션의 선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며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생명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교회는 이 일을 가장 잘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마음에 모퉁이를 가진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서 작은 마음이라도 모으면 무슨 선한 일이든
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진 성도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말 좋은 교회로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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