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태복음 14:22~27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본문
본문:마태복음 14:22-27절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하지말라
최근 한국에 오디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코리아갓탤런트,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 기적의 오디션,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각 방송사마다 열리고 어떤 프로그램은 오디션에 참석인원이 200만명에 육박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우승을 차지하면 가수 배우 아나운서가 될 수 있도록 후원하며 엄청난 상금과 차량 등이 지원되고 순식간에 유명인이 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에서 외쳤던 말 가운데 “기적을 노래하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사람들은 인생이 180도 변화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승을 하면 탄탄대로 성공의 길을 걸어갈 것 같지만 기적같은 우승이후 잠깐의 유명세와 관심을 받은 후, 다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기적을 경험하는 것 보다 기적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안심하나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집에서는 오늘 본문의 제목을 '기적, 그 이후'라는 표현을 썼더라구요. 왜냐하면 어떤 큰일을 체험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난 그 다음이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게 하신 후. 예수님 어떤 일을 하실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고 말씀의 은혜받는 이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기적 이후에 풍랑을 겪게 하십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갈등을 겪는 것 중에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했으면 그 은혜가 지속되거나, 그 감격을 가지고 계속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서 그 체험 때문에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얼마가지 못해 낙심하거나 주저앉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체험한 은혜보다는 내가 지금 부딪치는 현실이 더 크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나타난 현실의 벽은 무엇입니까? 바로 풍랑입니다.
먼저 본문 24절을 보겠습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사건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병이어는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어떻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일 수가 있을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매우 특별한 체험이었음에 분명합니다. 흥분의 도가니, 감격의 연속! 놀라움, 충격! 이런 말이 어울릴까요? 그런데 그 순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명령하십니까?
마태복음 14:22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들을 황급하게 보내고 자신도 그 자리를 피하신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이 기적을 체험한 후에 그 곳에 모인 무리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군중들은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꿈입니까? 적어도 5000명을 먹이실수 있다면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었습니다. 어쩌면 제자들도 그런 기대감에 적지않게 동요를 하고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기대감을 뒤로한채,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자신은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백성의 요구가 주님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배를 타고 바다로 왔는데 바람이 몹시 불더니 급기야 큰 파도가 치고, 바다가 그들을 삼킬 것 같은 위험이 닥쳐 온 것입니다. 말씀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여기서 이상한 점을 한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바다로 나가게 된 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의지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다로 나갔더니 파도가 치고, 큰 물결이 일어나서 자신들을 삼킬 것 같은 위험이 닥친 것입니다. 차라리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런 고난은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씀에 순종했는데 오히려 고난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건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기적의 현장을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그 감격이 아직도 마음속에서 가라앉지 않은 상태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기적을 체험했으니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거친 파도였습니다. 큰 풍랑이 그들을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경험이 없습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생활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 앞에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 고난을 만나거나, 아니면 여전히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 해결되어지지 않고 수렁으로 빠져가는 일을 경험한 적이 없으십니까?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빠졌던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은혜받고 난 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업을 경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 모시고 개업 예배드리고, 주일날은 문닫고, 교회에서 온전히 봉사하면서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은 더 어려워지는 것을 경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십일조해서 축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면 일이 잘 풀릴 것 같아 당장 사업자금이 어려운데도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렸는데 오히려 더 자금난에 허덕인 적이 없습니까?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 서울대에 합격시킨 한 학부모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래 믿음으로 자녀교육! 이래서 주일날 학원 안보내고 월요일부터 시험인데 그래도 예배하고 하나님께 봉사가 중요해 믿음으로 자녀교육! 이랬는데 그 녀석이 지금 3수 4수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제자들이 그런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은혜받은 감격을 가지고 순종하면서 나아갔는데 그들이 만난 것은 파도였습니다. 고난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빨리 해결해 주시면 그래도 어느정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닙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믿더니 쫄딱 망했구나" "예수 믿어도 별수 없네" 이런 말들은 정말 듣기 싫습니다. 특히 예수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본문 25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밤 4경에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밤 4경이었습니다. 밤 4경이라 함은 새벽3시에서 6시경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떠날 무렵은 초저녁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초저녁에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떠난 시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도대체 바다에서 파도와 몇시간을 싸운 것입니까?
왜 예수님은 좀 더 일찍 그곳에 나타나시지 않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무슨 뜻으로 제자들을 풍랑 속으로 보내신 것일까요?
둘째, 예수님은 기적 그 이후, 제자의 길에 고난도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3년의 공생애를 사시면서 줄곧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치유사역과 많은 기적을 베푸시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건강을 주고 풍요로움을 주고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제자는 희망, 건강, 풍요로움, 생명만이 목적이 아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그 기적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을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 속에서, 아마 이랬을 것 같습니다.
“아 저런 분이 나의 스승이야! 내 인생을 예수님께 걸어보래. 그럼 축복의 길은 보장된 거잖아.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어깨에 힘을 줬을까요? 여기를 보고 내가 예수님의 제자요! 저기를 보고 내가 예수님의 제자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우러러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저분의 제자요!
그런데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기적의 현장 오병이어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다로 가라!!!
그런데 그 바다에는 무서운 풍랑이 이는 고난의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①출애굽기-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열가지 재앙을 경험하고 애굽땅을 나온후 그들이 간 곳이 어디입니까?
애굽의 창칼에 포위된 홍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고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또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광야의 방랑자들이 됩니다.
②다윗- 3m 가까이 되는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싸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성공의 길은 보장된 것 같습니다.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 라 하며 최고 인기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다윗은 사울에게 쫒기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③엘리야-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자 850명과 대결을 벌입니다. 제단을 쌓아놓고 하늘에서 불 이 내려와 제단을 태운 쪽이 승리하는 목숨을 건 대결을 벌입니다. 엘리야가 불을 내려주소서! 라고 하 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태워버립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고 승리하였습니 다. 그런데 그 이후,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이세벨 왕비의 협박에 혼비백산해 도망가 광야의 로뎀나무 아 래에서 하나님께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④예수님-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십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인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가신 곳은 광야 40일 금식의 자리였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후,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 승리를 거둔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 한 후,
하나님은 그 기적의 자리, 승리의 자리, 은혜의 자리에 계속 두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로 인도하심을 봅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가는 길에 축복도 있지만 고난도 함께 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이 땅의 신앙의 선배들이 이 고난의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교회역사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해 절망과 좌절을 경험해보지 못하고서 믿음을 얘기한다는 것은 모순일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절망, 좌절, 실패, 이런 것들을 경험해보기 전에 믿음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전까지 제자들은 어떤 환경가운데 있었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는 환경이었습니다. 만약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그들이 보았던 것은 병자를 고치시는 모습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에서는 주옥같은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언제나 흥분과 감격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런 날만 계속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기쁜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형통한 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전혀 얘기치 못한 일들이 내 앞에 닥칠수도 있습니다. 마치 갈릴리 바다의 풍랑이 전혀 예기치 못할 때 일어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여러분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조금 전에 누렸던 감격을 그대로 간직할수 있었습니까? 오병이어의 그 놀라운 감격을 여러분의 가슴에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습니까? 대부분은 다 감격과 흥분을 뒤로한채, 고난에 부딪혀 더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조금전에 경험했던 그 놀라운 능력의 주님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동분서주(東奔西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해결이 되어지시던가요? 열심히 밀어붙히니까? 뭔가 여러분들이 의도했던대로 성과를 거둘수 있었나요? 오히려 더 큰 '좌절'과 '실망'만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주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도 고난은 여전히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면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쉽게 넘어지고 맙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제자가 된 후로도 이런 경험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좋은 날만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를 무시하고 따르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의 능력을 경험하고 난 뒤, 심지어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까지 합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좋고, 신나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뒤 신나는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 자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정말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 삶속에서 더러는 예기치 못한 고난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배제하면 안됩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파도를 만났을 때 죽게 되었노라고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신앙생활 가운데 만나는 고난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고난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생각, 마치 더 강한 군인이 되기 위한 훈련소 과정이라 생각하시고 인생의 풍랑이 닥칠 때를 슬기롭게 이겨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기적 후에 찾아온 풍랑속에도 제자들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한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렇게 여러시간 파도와 싸우면서 바다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배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거나, 이렇게 오랜시간 파도와 싸울때 배가 뒤집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들이 탄 배가 오늘날처럼 그렇게 좋은 배도 아니었을테고…, 이런 저런 것들을 종합해서 보면 이들이 바다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왜 이들이 이 오랜 시간동안 파도와 싸우면서 바다에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힘으로 버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베드로가 어부출신이기 때문에 파도의 방향을 잘 알고 있어서 그 지식을 가지고 거대한 파도와 맞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답으로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길을 내가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제자들을 바다로 나가게 하신 것은 주님이셨습니다.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은 그들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비록 지금 당장 모습을 그들에게 나타내 보이시지는 않았지만 그 고난의 현장에서 주님은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입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젖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쯤에 바다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3단어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풍랑 가운데서 괴로워 하실 때, 예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보시고, 걸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괴로움을 보고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부딪쳐 괴로워하고 있는 문제인 풍랑 위를 밟아서 걸어오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풍랑의 현장에 직접 제자들에게 오셔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할 만큼 정신을 잃어버린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말라”고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27절에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하지 말라" 라고 하시는데. 주님은 파도부터 잠잠케 하신 후에 나타나지 않으시고, 먼저 나타나셔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하지 말라'라고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환경이 극복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환경을 극복하기에 앞서 주님의 말씀 앞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하지말라' 절망과 실망속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중에 고난당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낭패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아니 인생의 거대한 파도앞에 놓인 분이 계십니까? 그런데 그 인생의 파도가 물러가기를 원하십니까? 고난이 하루속히 지나가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말라"는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가 만나는 고난이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이 아닙니다. 눈이 가리워져서 내 인생의 파도 앞에 서 계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입니다.
인생의 파도가 아무리 거대해도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말라"는 말씀이 내 귀에 들려진다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질 것입니다. 인생의 파도 앞에 서 계시는 분이 유령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깨닫게 된다면 그 거센 파도를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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