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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태복음 25:31~46 인생은 무엇으로 평가받는가? 본문

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 25:31~46 인생은 무엇으로 평가받는가?

행복으로초대 2020. 3. 30. 03:13

인생은 무엇으로 평가받는가?(마25:31~46)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고 모든 민족이 그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 앞에 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을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모든 사람을 오른편과 왼편으로 구분해 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른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복을 선포하십니다. 34절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오른편에 선 자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그 복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왼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41절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왼편에 선 자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습니다. 그 저주는 지옥의 영원한 불에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오른편에 선 사람들이나 왼편에 선 사람들이나 자기가 왜 오른편인지, 왼편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오른편과 왼편에 선 사람들에게 구분의 기준을 가르쳐 줍니다.

 

그 기준은 각 사람들이 예수님께 행한 일입니다.

35~36절, 42절~43입니다.

예수님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느냐? 주지 않았느냐?

예수님이 목마를 때에 마실 물을 주었는가? 안 주었는가?

예수님이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는가? 영접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는가? 입히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는가? 돌보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갇혔을 때, 찾아와 위로해 주고 돌보아 주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

 

이렇게 예수님께 행한 일로 오른편, 왼편이 구분되어집니다.

예수님께 행한 일로 천국과 지옥이 나눠집니다.

예수님께 행한 일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오른편과 왼편에 서 있는 자들의 궁금점은 더 커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굶주린 것, 목말라 하신 것, 나그네 되신 것, 헐벗은 것, 병드신 것, 갇혔던 것을 본 적도

없고 어떤 일을 행한 적도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특히 분위기상 지옥불에 던져질 저주받은 왼편 사람들이 더 억울하다고 난리가 났겠죠? 


예수님의 답은 무엇일까요?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한 마디로 '소자'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예수님은 멀~~~~리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 주변에 있는 배고프고 헐벗은 이웃, 외롭고 절박한 처지에 처한 이웃이 예수님이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이웃에게 한 행동이 예수님께 한 행동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가 살아간 인생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우리의 믿음의 행동을 보시고 평가를 하십니다.

 

미국의 1만명 대형교회 근처에서 한 노숙자가 초라하고 냄새나는 행색으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숙자는 교회를 향하는 교인들에게 배가 고프니 한끼 밥먹을 돈이라도 있으면 달라고 구걸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노숙자는 성전 맨 앞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예배위원들에게 끌려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 자리에 눈치를 보며 앉았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찬양이 뜨겁게 시작되었습니다. 연이어 참회의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사랑에 흠뻑 취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말씀 선포시간이 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말씀을 전할 목사님을 소개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새롭게 목사님이 부임할 에정이었습니다.

"오늘 새로 부임하실 예레미야 스티펙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교인들은 모두 기대에 찬 시선으로 새로 부임한 목사님을 환영하려고 박수를 치다가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노숙자가 강단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숙자가 바로 그 교회에 새로 부임할 예레미야 스티펙 목사였던 것입니다.

그 노숙자 차림의 목사님은 말없이 마태복음 25장 35절에서 40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스티펙 목사님이 이 말씀을 다 읽자, 성도들은 무언인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곧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티펙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을 마무리 했습니다.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은 많으나 제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으로 이웃과 함께 그리고 옆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웃의 배고픔과 헐벗음과 외로움과 절박한 필요를 돌보는 사랑의 섬김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심판이나 구원의 근거는 아니지만, 주를 향한 믿음과 사랑의 증거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나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 비유는 서로 연결되는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양과 염소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들,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될 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정하시는 착하고 충성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면 살아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우리 거제호산나교회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좋은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요즘 최고의 주제는 코로나겠지만 어느샌가 우리교회에서는 코로나가 아니라 산달교회가 핫이슈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산달교회를 향한 아름다운 일들로 성도들이 산달교회를 정말 가고 싶어합니다.

어제도 몇몇 분들이 산달교회를 물어보더라구요. 어제 저녁에도 한 성도님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함께 한 몇분의 성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중, 산달교회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우리 교회가 너무 좋습니다.

 

저는 선교사님들이 오시면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선교사님과 교제를 나누고 함께 하고 섬길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오시면 거의 대부분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십니다. 

불편한 게 있어도, 필요한 게 있어도 말씀을 잘 안하십니다.

그래서 최대한 선교사님들께 편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불편할 때,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생각나는 사람, 부담없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어제는 몽골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오셔서 함께 예배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가 편하다고 해서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입고 오신 옷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옷은 교인 중에 한 분이 선교사님들이 오시면 주세요라고 교회에 가지고 오신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몽골 선교사님이 오셨는데  몽골 선교사님의 사이즈와 너무 잘 맞았습니다. 그 옷을 입고 오셔서 보여주셨습니다. 너무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데 부탁할 곳이 없어 편한 목사님께 부탁한다고 하십니다.

선교사님이 커피 포트가 필요하다고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 하시는데,

마침 미리 구해둔 커피 포트가 있어서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어떻게 이렇게 필요를 잘 채워주시는지

하나님 은혜가 놀랍고 감사하다고 하시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 선교관에 계신 한 선교사님께서 안타까운 일을 당하셔서 마음이 많이 힘드신 이야기를 한 권사님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이 선교사님을 위해 갓김치를 담아서 선교사님께 밥 잘 챙겨드시라고 섬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 너무 좋고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만날 예수님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일까요?

어제 담임목사님께서 예배 , 서로 인사를 나눌 때 말씀하신 세가지를 기억하십니까?

돌아봅시다. 찾아봅시다. 함께 합시다.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고 찾아보고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극히 작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

내가 오늘 만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시고,

주변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돌아보며 찾아보고 함께 함으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한 일에 쓰여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들, 영육이 건강하게 하시고, 연약한 질병가운데 있는 성도들 회복시켜 주시고,

관계의 모든 문제들, 가정속에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법적으로 힘든 싸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 힘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더욱 굳세게 해 주시옵소서. 이 땅과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코로나 질병의 모든 바이러스를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