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자신을 아는 성도들(유다서 1장 1~2절) 본문
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가 한 명언이 있습니다.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제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아십니까?
제 속마음을 아시는가요? 잘 모르시죠?
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저 자신이 아닐까요?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 보면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참 많습니다.
진정한 자신은 남들이 보고 느끼는 그 모습이 진정한 ‘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릅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어떤 정보든 찾아낼 수 있는
엄청난 정보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고 사는 세상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자신을 아는 성도들’입니다.
제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도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진정한 자기는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자신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누구라고 합니까?
바로 성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졌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성도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르게 서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유다서의 첫 시작인 발신자와 수신자 부분을 살펴보면서
성도들이 알아야할 자기 정체성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오늘부터 유다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다서는 1장에 24절로 된 짧은 서신서입니다.
유다서의 저자 또는 발신자는 유다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가룟 유다 아닙니다.
당연한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유다서의 저자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합니다.
그럼 야고보는 누구일까요?
가장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견해로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와의 관계는 형제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55절을 보면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원래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7장 5절을 보면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 유다서를 쓴 유다 모두 해당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함께 한 가정에서 자란 야고보와 유다에겐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닌 그냥 자신의 형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이후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고전15:7)
제자들과 함께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경험하고(행1:14)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로 활약을 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오늘 말씀에서
유다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말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유다의 자기 인식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혈육으로는
예수님의 형제, 동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권위는 상당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런 권위를 내려놓고 자신을 ‘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그의 형제인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말합니다.
유다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성도였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향해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살펴봤지만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들은 예수님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육체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보니
예수님은 그리스도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종’으로 자신의 생명을 포함해
모든 소유가 예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이 찬양이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과의 혈육관계를 넘어서
예수님께 자신을 드린 종으로 살았습니다.
여기서 적용의 포인트를 혈육관계에서
믿음관계로 나아가는 것에 맞춰보고자 합니다.
가족을 생각해 보십시오. 혈육의 관계로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아름다운 가족입니다.
거기다가 한 가지 더 추가할 개념이 믿음의 동역자로서의
가족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모두 예수님 앞에서는 종입니다.
남편도 예수님께 종으로 살고, 아내도 예수님께 종으로 살고,
부모도 예수님께 종으로 살고 자녀도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일대일입니다. 서로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대신 구원받아 줄 수 없고 대신 천국에 갈 수도 지옥에 갈 수도 업습니다.
자기 믿음을 가지고 구원받고 살아야 합니다.
그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바로 믿음으로 서로를 당겨주고 밀어주며 믿음을 끌어올려주는 시
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합니다.
가족이라는 단순한 혈육의 개념에 머문다면
믿음의 가정으로서 성장이 없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되십시오.
따뜻한 가족의 온기가 가득한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오늘부터 가족 서로를 바라볼 때,
믿음의 동역자구나!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의 권위와 힘이 아닌 믿음의 모델이 되시고 자녀의 어리광과
연약함이 아닌 믿음의 경주를 함께 달리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동역자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세워주는 관계로 나아갈 때
믿음이 더욱 성장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둘째,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이번에는 유다서의 수신자를 통해 성도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다서의 수신자는 바울 서신서들과는 다르게 특정한 교회나
개인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수신자를 이렇게 말합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3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부르심을 받은 자,
둘째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 자,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은 자를 우리는 ‘성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보통 성도라고 할 때는 ‘구별된 자’ ‘거룩한 자’에 초점을 많이 맞춥니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불러주셨으니
타락하고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무를 말합니다.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 안돼!“ ”어떻게 거룩한 백성이 그럴 수가 있어?“
이런 의무감이 듭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에 대한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 성도가 어떤 사람들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을 얻은 자이며 지키심을 입은 자입니다.
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인가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대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시편 37편 2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사랑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보호하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성도를 둘러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끊임없는 사랑과 보호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 ‘주님의 날개’입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로 우리를 불러서 따뜻한 품안에 품어주시고
사방의 위협으로부터 철저히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그 날개 아래 피하면 됩니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시61:4)
성도는 구별된 삶으로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도 있지만
그렇게 구별된 삶으로 담대히 살 수 있는 근거와 용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길이 힘드십니까?
외롭습니까? 두렵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냅시다.
하나님의 사랑아래 그 보호하심 아래,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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