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이단을 경계하는 방법(유다서 1장 8~9절) 본문
유다서는 이단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정체는 영지주의 이단이었으며 특히 쾌락주의 이단이었습니다. 유다는 앞선 5~7절에서 하나님께서 그 이단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성경에서 유명한 3가지 심판의 장면을 상기시켜 줍니다.
①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대항하다가 광야에서 죽었던 사건.
②천사가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건.
③그리고 음란한 도시였던 소돔과 고모라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던 것 사건입니다.
이제 오늘 읽은 본문으로 와서 8절을 보시면 '그러한데'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한데'는 3가지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다 당시에도 하나님의 심판 대상인 영지주의 이단들이 있으니 그들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단을 경계하는 방법입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니는 거짓 이단들을 어떻게 하면 경계할 수 있을까?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첫째, 성경 외의 계시를 말하면 경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이단들에 대해서 8절 말씀에서는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3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고 백성들을 꾀어내어 악을 행하게 하는 선지자와 '꿈꾸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꿈꾸는 자'는 불쌍히 여기지 말고 가차없이 죽여서 악을 제하라고 합니다. 구약에도 '꿈꾸는 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릴 때, 멀리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요셉을 보면서 형제들이 요셉을 가리켜 한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요셉은 형들에게 '꿈꾸는 자'였습니다. 형들이 봤을 때 요셉은 '거짓된 사람'이란 말입니다. 자신이 꾼 꿈을 가지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계시인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거짓 선지자, 나쁜 인간이다는 뜻입니다. 물론 형들의 시기와 질투가 작용했지만 요셉을 향해 '꿈꾸는 자'라고 한 것은 요셉은 가차없이 죽여야 되는 인간이다는 뜻입니다. 물론 여기서 요셉을 향해 '꿈꾸는 자'라고 부른 것은 형들의 잘못입니다. 요셉은 진짜 하나님의 계시의 꿈을 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서에 나오는 '꿈꾸는 자'는 이단 거짓교사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꾼 꿈과 환상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면서 거짓으로 꾸며 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주의하고 경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다 전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이 나오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나 꿈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성경으로 하나님을 알고 배우고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성경 외에 자신이 본 환상, 꿈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라고 하면서 거짓되이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거짓이며 이단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경계하시고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이런 사람들을 다른 말로 하면 '직통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보면 현수막이나 건물에 이런 글을 볼 수도 있습니다. '직통 계시' 환상, 꿈 예언 성회 이런 광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직접 계시의 말씀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이 안통합니다. 목사들도 무시합니다. 목사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직접 하나님께 계시를 받는 사람인데 니가 무슨 권위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라고 하면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 돌아오게 하기 참 힘듭니다. 여러분 주변에 분명히 이런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해 오셨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경계하시고 멀리 하십시오.
둘째.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육체의 삶이 없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8절에 보면 '육체를 더럽히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들이 바로 이단의 표시입니다. 육체를 더럽히는 사람들은 '사람의 육체는 전적으로 악한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오직 영혼만이 중요하고 육체는 영혼의 무덤이다 감옥이다 사슬과 같은 것이다고 합니다. 영혼만이 고귀하고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어떻게 다루어도 괜찮다고 하고 육체의 본능이 원하는대로 쾌락,탐욕,성욕,정욕에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육체는 구원과는 관계없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체의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친 내용 중에 내가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더하여 진다고 했습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니까 죄를 지어도 된다.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 중에 하나다 이런 논리인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나는 은혜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덕을 버리고 인간의 상식을 버립니다. 더러운 행위를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단의 표지입니다. 이들이 육체를 더럽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단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설교를 듣든지 성경공부를 하든지 할 때,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설교나 성경공부를 주의하십시오. 가장 정통적이고 바른 인간론 교리는 '전인적 인간'입니다.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전인적 인간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십니다. 이단들 중에 많이 파고드는 것들이 이것입니다. 인간을 삼분론, 이분론이니 하면서 분리시킵니다. 인간을 영과 혼과 육으로 분리하거나 영혼과 육체로 분리시키거나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뭔가 이상하네 라고 생각하십시오. 이단들 중에 지방교회라고 있습니다.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라는 저자 이름의 책이 혹시나 여러분의 책장에 꽂혀 있을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이단들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교리는 잘못된 이단들을 양산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영과 혼과 육체를 분리할 수 없는 전인적인 존재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실제로 이 자리에있는 여러분 중에도 지금까지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분리시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수정하십시오. 사람은 분리가 안되는 전인적인 존재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죽고 나면 영혼은 천국에 가고 육체는 땅에 묻혀 썩는다고 하죠. 하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에 우리는 완전한 부활을 합니다. 부활 때 우리의 죽은 몸이 다시 일어나고 완전한 몸을 입게 됩니다. 도저히 분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경계하시고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사람의 행위에 대해 전혀 강조하지 않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칼빈주의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상당히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에 관해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질문을 받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화의 길을 걸어갑니다. 성화의 과정은 구원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이 취소 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이 항상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은혜에 내가 어떻게 보답할꼬?" 하나님 제가 오늘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하루로 살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세상 가운데 빠져 살지 않겠습니다. 육체 가운데 헛된 세월 보내며 살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런 하나님 앞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삶의 행위가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이런 삶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함부로 내팽겨쳐 두지 않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삽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구원은 그 어떤 것으로도 취소가 안되니까 이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이단 중에 구원파가 이런 경우입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 구원파에서는 자범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회개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과정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하시고 멀리하십시오. 여러분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갑니다. 새벽에 깰 때에 감사하시죠? 눈 뜰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밤에 우리와 함께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든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하루!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까? 감사함으로 이 하루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꼭 놓치지 마십시오. 이것을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사람을 경계하시고 멀리 하십시오.
셋째.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어지럽히면 경계하십시오.
계속해서 8절 마지막입니다.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이단들의 성향 중에 하나가 권위를 업신여깁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스러운 직분을 받은 사람들을 비방합니다. 그로 인해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힙니다. 그래서 권위를 업신여기는 사람, 비방하는 사람이 교회에 있을 때, 조심해야 하며 그런 사람은 스스로 입을 닫고 스스로 말씀으로 자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함부로 비방하거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해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이 말씀에 대해 지지하는 예로 든 것이 9절 말씀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다투는 장면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다투느냐하면 모세의 시체를 두고 다툽니다. 이는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입니다. '모세의 승천기'라는 위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땅에 묻어두고 영혼은 하늘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마귀가 나타나서 모세의 시체를 달라고 합니다.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려고 했던 명분은 이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살인자이고(출2:11-15),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자(민20:11-13)니 모세는 내 것이다."고 하며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다투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숨겨진 의도는 마귀가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모세가 죽은 후 그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시체를 찾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시체를 우상으로 섬길까봐 해서 찾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럼 마귀는 어떻게 할까요? 마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도록 하기 위해 '모세의 시체'를 찾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마귀의 악한 궤계에 대해서 천사장 미가엘이 천사장의 권위로 꾸짖을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천사장 미가엘은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천사장 정도되면 대단한 위치입니다. 천사들의 대장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꾸짖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너틀 꾸짖으시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감히~~~~이런 느낌입니다. 감히 너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받은 자들에 대해 업신여기거나 비방할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요즘 목회자들 중에 성적인 문제, 비리와 부패의 문제들이 많이 부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언론 미디어가 발달하다보니 바로 바로 실시간으로 이슈화됩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의 부끄럽고 약한 부분들로 교회를 비판하고 질서를 어지럽히며 목회자들의 권위에 대해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존 성도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는 스스로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고 성도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반대로 성도들은 목회자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목회자를 왜 존경해야 할까요? 지금 이 본당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제가 가장 어립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저를 존경해야 할까요? 어린 저를 존경하지 않아도 될까요? 여기서 아니요. 목사님은 어리니까 오히려 나이든 우리를 존경해야죠!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목회자에 대한 존경'대해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자체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그가 맡은 사역과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 때문에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서신서 초두에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다"라고 자꾸 강조를 합니다. 이것은 사도의 권위로 존경받고 군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권에 대해 강력하게 방어했던 이유는 그의 사역과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한 강력한 방어입니다. 사역과 복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사도권을 지키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목회자를 향하여 이렇게 생각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저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말씀을 전하는 분이니 존경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목양의 사역을 맡긴 분이니 당연히 우리가 존경해야지." 이렇게 말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질서와 권위, 사역이 든든히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단들 중에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천지가 그렇습니다. 신천지 교인이 정체를 숨기고 교회에 등록을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합니다. 새가족이 왔는데 열심히 봉사도 하고 모임에도 적극 참석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인정해 줍니다. "야 그 사람이 교회에 와서 교회 분위기도 좋아지고 전도회도 활성화되고 교회에 복덩이가 들어왔어요." 이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 새가족이 전도도 잘 합니다. 전도는 이미 각본에 다 짜여진 겁니다. 신천지의 전략입니다. 노방전도를 나가든지 관계전도를 하든지 매주 새가족을 등록시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도되어 등록된 새가족들은 다 신천지 인겁니다. 그렇게 신천지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오고 점점 교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퍼뜨립니다. "아~~ 우리 목사님 설교가 별로야. 우리 목사님 설교 참 못해." "아!~우리 교회 시스템이 문제야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그렇지 않아요?" 그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점점 이상한 분위기가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세력을 만들고 목회자를 몰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천지의 전략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우리 거제호산나교회가 100퍼센트 여러분의 마음에 드십니까? 솔직히 마음에 안드는 것도 있으시죠? 불만거리 불평거리가 있으시죠?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판단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천사장 미가엘 조차도 주께서 너를 꾸짖는다고 하셨는데 교회와 목회자와 질서에 대해서 업신여기거나 비방하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참 위험한 사람들이 '수근수근 거리는 자'입니다. 수근수근 거리는 영이 여러분을 잡지 않도록 항상 말을 조심하시고 교회의 질서와 권위에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단들을 경계하라는 말씀 속에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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