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은 궤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삼상 4:1~22) 본문
하나님은 궤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삼상 4:1~11)
이스라엘과 블레셋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했습니다. 4000명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3절)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그리고 전쟁에서 이길 전략을 내립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전략을 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하나님의 언약궤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면 비참합니다. 30000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 승리할 줄 알았는데 전혀 반대의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부분에서 오늘의 중요한 단어 하나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마음이 없는 신앙! 다른 말로 하면 ‘껍데기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궤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은 전혀 하나님에게 없으면서 언약궤 ‘궤짝’만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궤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없는 신앙, 그것이 바로 껍데기 신앙입니다. 어떻게 하면 껍데기 신앙을 고칠 수 있을까요?
1.껍데기 신앙을 고치려면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섬김의 대상이 아닌 수단과 방법으로 보는 신앙을 고칩시다.(가져다가 VS 나아가서)
3절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니까 언약궤를 앞세워 전쟁을 하면 좋은 전략이 아닌가?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좋은 것’보다 ‘바른 것’을 선택해야 하죠! 우리에게 바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명기 12장 5절입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11절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신명기의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을 향해 “찾아 나아가서” “갈지니” 이것이 바른 자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습니까? “가져다가” “그것으로”입니다. 하나님이 수단과 방법이 되어있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와 복을 채워주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신앙의 패턴이 하나님을 이미 그들의 경배의 목적,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들이 필요할 때, 불러다가 써먹는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배함이 먼저입니다. 경배함이 없는 간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시다. 다른 말로 순수하게 사랑합시다. 사랑도 성향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조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봅시다. 어떤 조건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수단과 방법으로 보는 믿음을 버리고 순수함으로 아무 조건없이 그냥 하나님을 사랑해 봅시다. 하나님께로 이시간 나아갑시다.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갑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나면 조건이 사라집니다. 그냥 사랑합니다. 순수하게 그냥 사랑합니다.
2.껍데기 신앙을 고치려면 거룩한 삶을 위해 몸부림 치십시오.
(4절):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불량자,죄악의 시대를 대표하는 죄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있습니다.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무리들이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꺼내려고 할 때,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이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버텨야죠! 하지만 우리가 잘 알 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엘리는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엘리는 벌벌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신통치 않았던 엘리의 반응이 이랬지만 그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는 안중에 없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이스라엘의 진중에 들어올 때, 상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5절)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백성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등장합니다. 언약궤를 향해 외치는 백성들의 환호성을 가로채며 그 앞에서 잘난 체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래서 4절의 말씀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궤 옆에 거룩과는 한참 멀어진 불량자, 홉니와 비느하스가 옆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죄’의 대표가 옆에 있습니다. 엘리의 가문을 진멸하겠다 하신 하나님의 선포가 있었고 그 옆에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에 홉니와 비느하스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죽음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궤 옆에 홉니와 비느하스로 대표되는 ‘죄악’을 두지 않으십니다.
껍떼기 신앙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이 내 곁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죄악된 것들을 옆에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에 무엇이 있습니까? 왜 교회에서 술, 담배를 하지 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술,담배를 한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술,담배를 통해 악한 환경에 많이 노출됩니다. 거룩한 모임에는 술과 담배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를 즐기실까요? 아니죠. 불법과 타락한 자리, 육체의 더러운 일에 술과 담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야한 잡지와 동영상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그것을 즐기실까요? 각종 부정과 부패의 자리를 예수님이 좋아하실까요? 그래서 죄악의 생활을 끊고 거룩함으로 살아가십시오. 거룩함이 있는 신앙은 거룩함을 곁에 두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죄악된 물건들을 버리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죄악된 습관들을 버리십시오. 거룩한 습관들을 만드십시오.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물건들, 거룩한 습관들, 거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럼 죄악된 생활과 껍데기 신앙은 무슨 상관일까요? 죄악된 생활을 하면서 교회 와서는 가면을 쓰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면을 벗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영이 임하여 자신을 가리고 있는 거짓된 모습을 벗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가면을 쓰고 신앙생활을 하면 오히려 껍데기가 더욱 단단해 져서 깨뜨리기 더욱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하신 하나님 옆에 거룩한 사람과 거룩한 물건과 거룩한 습관을 좇아 살아갑시다. 껍데기 신앙을 고치려면 거룩한 삶을 위해 몸부림 쳐야 합니다.
3.껍데기 신앙을 고치려면 형상을 미신화 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약궤를 뭔가 신통방통한 물건으로 숭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신기한 언약궤, 그것에 힘이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건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입니다. 말이 이상한가요? 이렇게 바꿔볼까요? 십자가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입니다. 성경책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입니다. 영화를 보면 귀신이 나오면 십자가를 꺼내들고 떠나라고 외칩니다. 성경책을 들고 외칩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책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자들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900년 동안 백성들이 놋뱀을 가지고 성물숭배를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놋뱀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놋뱀을 하나님을 숭배합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히스기야왕 때에 가서야 그것을 깨뜨려버립니다.
십자가마저도 미신화하면 안됩니다. 십자가의 색깔이 빨간색이냐? 녹색이냐? 그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언쟁을 벌이고 싸우는 분도 봤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나무입니다. 빨간색,녹색 불들어오는 십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십자가 형상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중요합니다. 십자가 형상을 숭배하는 미신, 주의하셔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도 미신화하면 안됩니다. 전에 전인적치유수양회를 할 때, 마지막 저녁시간에 귀신이 정체를 드러낼 때가 있어요. 귀신 들린 분을 붙잡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여자 권사님, 집사님들 몇 분이 갑자기 다가오더니만 귀신들린 분 여기 저기를 막 꼬집으면서 여기 귀신있다 저기 귀신있다 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떠나가라 물러가라 난리 굿을 해요. 그런다가 막 때리면서 떠나라 떠나라~!~~~깜짝 놀랐어요.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이름을 그렇게 미신 굿하듯이 쓰지 마십시오.
신앙의 모든 행위가 미신화 되면 안됩니다.
반발하실 수도 있지만 연말 송구영신예배 때, 성경구절 뽑기도 미신화 하면 안됩니다. 한해를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겠다는 좋은 취지로 하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하면서 왠지 점치듯이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게 쓰여진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도 미신화 되면 안됩니다. 숭배의 대상이 되면 안됩니다. 목사의 직무를 생각함으로 존경하고 그 직무를 맡은 사람이기에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목사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교회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영광 받으실 분입니다. 사람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여러 이단들은 결국 사람을 숭배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교주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은 모든 눈이 볼 수 있도록 임하시며 다시 오시는 그 때가 심판의 때요 종말입니다. 이단이 아닌 정상적인 교회에서도 목사에 대한 숭배가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이 이런 시험과 유혹에 많이 빠집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기도회니까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기도하면 응답받습니까? 예 기도하면 응답받습니다.
그렴 기도해서 응답받습니까?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되는 것입니까? 아니요.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역사해서 되는 것입니다. 나의 어떤 행동이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잘못 알면 기도가 미신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생활을 모습을 하나씩 살펴보면 참 많은 미신적인 행동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껍데기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에 딱딱한 껍데기가 쌓여가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신앙의 오류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누적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상이나 신앙의 정형화되어버린 틀을 미신화하지 마십시오. 말이 조금 어려운데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잘못하면 미신을 믿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언약궤를 미신화 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지 말고 바르게 알아 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됩시다. 잘못된 미신적인 믿음이 우리의 믿음생활의 틀이 되어 딱딱한 껍데기가 되지 않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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