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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성도는 말씀으로 구별됩니다(삼상3:1~4:1) 본문

구약/사무엘상

성도는 말씀으로 구별됩니다(삼상3:1~4:1)

행복으로초대 2018. 5. 17. 21:45

일상 생활 속에서 참 많은 구별법이 있습니다. 그중에 한가지 문제를 내 볼께요. 이 문제는 실제로 LG전자 입사시험에 나온 문제입니다. "삶은 계란과 날 계란을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삶은 계란과 날 계란 두개가 있는데 어떤 것이 삶은 계란이고 어떤 것이 날 계란인지 어떻게하면 알 수 있을까요? 주부 9단 우리 집사님, 권사님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뭐지? 어떻게 알 수 있지? 궁금하시죠?

 

계란을 팽~하고 돌려보면 압니다. 계란을 팽~하고 돌리면 삶은 계란이 빨리 돌까요? 날 계란이 빨리 돌까요? 삶은 계란이 빨리 돕니다. 왜냐하면? 날 계란을 돌리면 일단 껍질이 돕니다. 그 다음 흰자가 돕니다. 그 다음 그 안에 있는 노른자가 돕니다. 이 때 마찰력이 생깁니다. 껍질이 돌면서 흰자를 끌고 가려고 하는데 흰자가 안가려고 하죠. 억지로 흰자가 끌려가면서 혼자는 못간다 하면서 노른자를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럼 노른자는 나 건들지 마라~ 나 노~른~자야~ 몰라 땅 값비싸면 항상 날 말하지 노른자 땅이라고 나 그런 노른자야!!! 하면서 안 끌려가려고 하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노른자도 억지로 끌려갑니다. 그러니 마찰력이 생기면서 속도가 삶은 계란보다는 천천히 돕니다. 삶은 계란은 푹 삶아져서 껍질도, 흰자도, 노른자도 딱 달라붙어있어요. 그래서 한번 돌리면 마찰력없이 홱~하고 돌아갑니다.

 

제가 예전에 이 실험을 하다가 중요한 영적인 원리를 발견했어요. 여러분! 날계란의 마찰력을 유치원생의 말로 바꾸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싫어! 안해! 안돼! 나좀 내버려둬! 내맘이야!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에 잡아서 뜻이 있어 돌리려고 하는데 싫어! 안해! 안돼! 나 좀 내버려둬! 내맘대로 할거야~! 하면서 하나님과 자꾸만 마찰을 하는거죠.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왼쪽으로 돌려도 Yes!  오른쪽으로 돌려도 Yes!, 꺼꾸로 돌
려도 Yes!  주님 말씀하시는대로 잘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 속에서 푹 삶아져야 합니다. 말씀 속에서 푹 삶기면 마찰이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힘에 압도되고 말씀의 힘에 움직이고 앞서가는 말씀을 따라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대해서 마지막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시대? 엘리시대는 사사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마찰력이 정말 심했던 시대입니다. 흑암의 시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사사시대를 정의하는 한 구절 "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자기 마음대로 사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3장 1절과 같은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스라엘은 참되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일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니요.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다니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이상한 시대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시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습니까?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받은 것도 그들이 탈출해 나왔던 애굽 사람들과 다르고 곧 들어가 정복해야 할 가나안 사람들과 다른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을 위해 40년이라는 광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냥 의미없이 목적없이 방황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을 지 몰라도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저기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과 분명히 다르다. 내가 선택하여 특별히 나를 예배하는 백성으로 삼았다. 나의 말씀으로 사는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비전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모른다니요. 듣지 못한다니요. 출애굽의 감동도 가나안 정복의 용맹도 사라지고 이제는 세상과 구별되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누가 가나안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아픔이 느껴지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하고 구별된 백성입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엘리의 눈이 어두워간다는 말씀은 단순히 육적인 눈이 어둡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영적인 영안이 어두워 있다. 영적인 무감각 상태에 빠져있다는 말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어떠함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영적 대표인 엘리가 실패했다고 하나님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캄캄한 어둠의 시대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이 있다. 사무엘이 보게 될 것이다.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구별하시는 방법이 이것입니다.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사람. 그것이 하나님의 구별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 수 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는 사람, 그것이 하나님의 구별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몇번을 부르십니까? 우리나라 성도들은 삼세번이 머리 속에 있어서 보통 이 문제를 내면 3번이라고 많이 합니다. 4번을 불렀죠. 3번 부를 때까지는 몰랐고 그리고 4번째 부를 때,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라는 엘리의 지도에 따라 하나님과 사무엘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사무엘이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니,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시대적인 사명을 주고 앞으로 사무엘을 어떻게 쓰실 것인지 비전과 사명을 주고 능력도 주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대단히 특별한 주의 종으로서의 사역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을 구별하는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구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을 하나님은 나타내시고 높이십니다.

 

15절부터 보십시오. 엘리는 아마 밤새도록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을 겁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날이 새자 사무엘을 부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장면을 유심히 보셔야 합니다. 엘리가 사무엘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저기 드럼치는 중1 김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영이에게 "영아, 어제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냐?" 어둠의 시대, 암흑이 시대, 말씀이 희귀하였던 사사시대의 대표인 엘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시대의 대표가 된 사무엘에게 말씀 듣기를 간청하게 되었습니다. 신분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무엘을 높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 올리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무엘의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높이시고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은 계속 높아집니다. 엘리는 계속 낮아집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을 계속 자라게 합니다. 사무엘이 자란다는 표현이 계속 됩니다. 19절, "사무엘이 자라매" 라고 합니다. 그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 그리고 그가 자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람을 도우십니다. 그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에게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고 해도 될텐데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4장 1절을 보십시오. 그의 말이 온 땅에 전파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된 사람,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기 있는 여경이가, 저기 있는 수민이가, 저기 있는 세라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자라게 하시고 저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았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는 날이 곧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의 청소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고 전하고 말씀대로 살게 할까? 이것으로 정말 고민이 많습니다. 말씀을 보지 않는 시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시대이지만 말씀이 임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말씀으로 구별되는 성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날 계란 되지 마십시오. 말씀으로 푹 삶긴 계란 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