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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사도행전4-교회의 목적은 증인입니다(행1:6~11) 본문

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4-교회의 목적은 증인입니다(행1:6~11)

행복으로초대 2020. 3. 7. 13:07

 

사도행전4-교회의 목적은 증인입니다(행1:6~8)

 
 
사람이 살면서 어떤 일들에 관심이 생기면 '힘'으로 나타납니다.

 

관심이 있는 분야에 힘을 쏟습니다. 시간을 사용합니다. 연구를 합니다. 훈련을 받습니다. 전문가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면 잠시도 못견딥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는 몇시간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싸이클을 좋아하는 분을 압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분의 허벅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허벅지 둘레가 얼마나 뚜꺼운지, 오랜 시간 자전거 패달을 굴리면서 다져진 허벅지가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사람의 건강 척도 중에 허벅지 둘레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허벅지가 자꾸 얇아지면 건강의 적신호가 온다고 합니다. 허벅지 운동 많이 하십시오. 다들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일을 하죠.
 
추운걸 견디지 못하는 어떤 목사님을 압니다. 그런데 그 분이 테니스를 정말 좋아합니다.
물론 목회도 참 잘 하십니다. 테니스를 워낙 좋아하시니까, 눈이 오고 바람이 쎄게부는 겨울에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목사님이 테니스를 칩니다. 그 때는 추운 줄 모릅니다.
 
어떤 일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가? 이것이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관심대로 살고 그 관심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 관심이 결국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적 공동체입니다. 사실 교회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도 바른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 목적은 바른 목적일까요? 바른다는 말은 성경적이다.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목적 아래 모든 성도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가 바른 목적 아래 같은 마음을 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교회의 바른 목적은 '복음'입니다.
그럼 성도의 바른 목적은 무엇일까요?
교회와 성도는 뗄레야 뗄 수 없는관계입니다.
교회의 바른 목적이 복음이라면 성도의 바른 목적도 복음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바른 목적은 무엇일까요?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심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3절에 보듯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입니다. 관심이 다릅니다.
 
제자들이 말하는 회복이라는 단어에 집중해 봅시다. 이 회복은 정치적.행정적인 회복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것에 제자들은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바램은 정치적인 독립입니다. 빼앗긴 영토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자유를 얻게하는 것인데, 제자들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관심은 결국 목적이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예수님과 다릅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새로운 관심, 새로운 목적을 심어주시고자 한 예수님의 진심을 알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
 
제자들의 관심과 목적을 바르게 수정해 주고자 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서 아시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남은 삶의 목적을 바르게 알고 그 목적에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관심을 가지고 살아라!
이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이 가져야 할 바른 목적을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교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증인입니다.
 
우리가 예수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았다는 말은 천국간다는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배웠습니다.
천국은 눈물이 없고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곡하는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영원한 행복 속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상한 심령들이, 세상의 갖가지 문제들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은 아예 천국시민권까지 발급해 두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이렇게 좋은 천국에 바로 데리고 가시면 안되나요?
혹시 지금 예수님이 데려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계시죠?
이 땅에서의 시간은 끝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좋죠? 아멘이시죠? 아멘!
 
사도바울의 말을 들어보시죠?
빌립보서 2:23 "내가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예수님과 함께 있는 훨씬 더 좋은 일이라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4~25절입니다.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사도 바울이 세상을 떠나 예수님께로 당장 가지 못하는 이유는 성도들의 유익, 즉 믿음의 진보와 믿음의 기쁨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자신의 삶을 헌신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후, 우리가 살아야할 시간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 목적을 단 두 글자로 줄여 '증인'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 제자들에게 다른 목적을 가지지 말고 이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증인이 될까?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쏟고 배우고 연구하고 훈련하고 증인으로서 전문가가 되어라고 합니다.  
 
구원은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요 절대 은혜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칩니다.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람을 구해주었습니다.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상황이라, 인공호흡하고 심폐소생술해서 숨을 쉬게 했습니다.
곧 물에 빠졌던 사람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났으니 천만 다행입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나 살았다" 하고 가버립니다.
이게 뭐죠? 생명은 살았으나 그 생명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을 살려준 이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삶입니다.
 
날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으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예수님이 날 살렸어요. 예수님이 자기를 죽여서 날 살렸어요.
그리고 생명을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더 풍성한 삶으로 나를 인도해 주셨어요.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주셨어요. 예수님의 보혈로 새 생명 얻었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소개해 드리께요.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말. 성도들이 해야할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너의 소원은 무엇인가?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저의 소원은 오직 대한의 독립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또 다시 "우리 나라의 독립입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인가?라고 세번을 물으셔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저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 독립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나라가 자주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허락하소서!
 
여러분 이 말이 누구의 말인줄 아십니까? 백범 김구 선생님의 말입니다.
오직 조국 대한의 독립만이 그의 유일한 소원이었음을 잘 압니다.
이것이 그의 관심이며, 독립에 대한 관심에 온 힘을 쏟으니 그 힘을 보고 많은 민족투사들이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독립을 외치며 바쳤던 것입니다.
 
교회는 증인이 되는 곳입니다. 교회는 목적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어떤 목적일까요? 증인입니다. 증인공동체가 되기 위해 교회의 성도들은 여러 목적들을 다 내려놓고
증인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예배드리는 것도, 성도간의 교재도, 교회의 구제와 나눔도, 성경공부도, 모든 훈련과 양육, 교육도 '증인이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증인이 되는 비전을 주시고 승천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제자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있으니까 천사들이 와서 "어찌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예~ 예수님은 분명 다시 오실 겁니다. 천사들이 어찌 하늘을 쳐다보느냐? 라고 한 것은 이제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 증인의 일을 해야할 때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일까요?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남은 인생의 목적입니다.
 
붕어빵 전도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화요일 마다 모여서 붕어빵을 굽고 30여명의 전도대원들이
붕어빵을 들고 관계전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붕어빵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붕어빵 속에 담겨있는
복음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붕어빵이 아니라도 상관 없습니다.
건강이 받쳐주지 못하고 회사 직장, 생활의 여러가지 일들로 붕어빵 전도 시간에 함께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각자의 관심이 '증인되기'로 하나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