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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음의 벽을 허무세요(행8:14~17) 본문

신약/사도행전

마음의 벽을 허무세요(행8:14~17)

행복으로초대 2020. 3. 10. 18:53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마음의 벽을 허무세요'입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중요한 구절입니다.

사도행전 18절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어가는가"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사도행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왔을 때, 예루살렘과 유대까지는 확장되었고, 이제 사마리아에 왔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사마리아로 확장될 때, 해결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그래도 영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민족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우리의 본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어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으로서의 영적 우월감에 더해 성령강림의 특별한 경험을 가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특별히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과정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높디 높은 벽을 허물지 않으면 복음확장의 큰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벽을 허물기 위해서 어떻게 하실까요? 낮추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시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있었던 사건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경험했던 성령의 임하심이

사마리아에도 그대로 재현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도들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사도행전 18절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까지는 수용되는데,

사마리아와 땅 끝은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의 벽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한 가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예수를 믿을 때, 여러분이 믿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믿게 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삼위 하나님 중에서 내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이십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은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 겁니까? 안계신겁니까?

 

계신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마리아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왜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하며, 성령이 임하시는 경험을 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왜 일반적인 믿음을 가지는 과정이 아니라 특별한 성령의 체험을 해야 하느냐?

 

예루살렘 성도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와 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인데, 마음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땅끝에 있는 이방인에 대한 마음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 이방인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개,돼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더럽고 저주받은 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있더라도 마음에 꺼리낌이 있습니다

뼈 속깊이 유대인으로 살아왔는데, 사마리아와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전통, 개념, 가치관, 견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의 성취입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야할 성도들은 자신의 어떤 생각과 고정관념보다

 중요한 것이 말씀의 성취에 있음을 꼭 기억합시다.  

그래서 유대인 성도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18절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에 방해가 되고 장애물이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해 안수하며 기도할 때,

오순절에 경험했던 성령의 임하심이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놀라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이

사마리아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났음을 알렸을 겁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성도가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데,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은

그들에게는 더욱 대단한 경험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성령의 강림이 사마리아 성에도 동일하게 있게 함으로

영적 눈높이를 맞추려고 하십니다.

복음이 전해지기 마음의 벽이 허물어 져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없이는 살수 없고 영원한 멸망으로 향해가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당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죄인의 대명사였던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향해 모두 돌을 들어 치려할 때, 예수님은 인자한 음성으로 구원받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매국노와 같은 세리장 삭개오의 집, 죄인의 집에 들어가셔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18,19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자들에게로, 포로된 자들에게로, 눈먼 자들에게로, 눌린 자들에게로 가야합니다. 복음은 함께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어야할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일생 중 제게 가장 인상깊은 장면들 중 하나는 한센병 환자들의 발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갓 전도사가 되었을 때, 담임목사님께서 저에게 가서 찬양인도하고 말씀을 좀 전하고 오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가서 보니 한센병 환자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담임목사님~~~~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찬양인도하고 말씀 전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국그릇을 제 앞에 놔주시면서 엄지손가락을 푹 담그셔서 주시는 겁니다. 그 순간, 머리 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왔다갔다~~~하다가 아무말 하지 않고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3번 정도 가서 찬양인도를 하고 말씀을 전했었는데, 다음부터는 안그러시더라구요. 그리고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국그릇에 손가락 푹 담근 국을 먹는지 안먹는지 그걸 보고 마음을 열지 닫을지 결정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 국을 먹는 걸 보고 저를 몇 번 더 초청을 했다고 합니다. 이해는 되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멸시와 배척을 당했습니까?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되어 사람을 테스트해보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센병 환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예절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리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깨달은 것은 말씀이 전해지려면,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려면 서로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야 되는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옆에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복음을 대해 벽을 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이 벽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히려 벽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마음의 벽을 좀 더 낮춰 보십시오. 예수님이 꼭 필요한 사람이 보입니까? 예수님없이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당할 불쌍한 영혼이 보이십니까? 그럼 마음의 벽을 허물고 예수님과 함께 건너가서 그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복음으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죄인의 친구였던 예수님을 본 받읍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