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막을수 없는 예배(행16:22~26) 본문
막을 수 없는 예배 (사도행전 16:22~26)
모두 잘 지내고 있죠?
지금까지 아무도 아픈 사람없이 건강히 잘 있다고 하니 기쁘고 감사합니다. 오늘 3월 15일 주일, 중고등부 친구들~함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볼까 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 16장 22절~26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막을 수 없는 예배’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다가 억울한 누명을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히기 전, 옷이 벗겨지고 매를 많이 맞아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빛도 들지않는 어두운 감옥에 갇혔습니다. 발에는 차갑고 무거운 쇠사슬이 채워져 안 그래도 매를 맞아 온몸이 아픈데,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될 때,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하나요?
1.원망합니다.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 귀신쫓아내주고 고쳐주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을 했는데,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다니요.보통 사람들은 하나님도 원망하고 억울한 누명을 씌운 사람들도 원망하고, 제대로 조사도 하지않고 멍청한 판결을 내린 판사도 원망합니다. 그러면서 불평하고 욕하고 부정적인 온갖 생각과 말을 쏟아내겠죠?
2.절망합니다.
말씀 속에 감옥을 묘사하는 말이 ‘깊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냥 감옥이 아니라 깊~은 감옥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강하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깊은 감옥 뿐만 아니라 특별히 바울과 실라의 발에는 차꼬, 즉 발에다 수갑을 채워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온 세상을 뛰어다니던 바울과 실라의 발은 꽁꽁 묶여버리고 아무것도 할수 없게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까요? 얼마나 괴로울까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때 우리 함께 생각해 볼까요?
“빛을 발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둠이 강하다는 뜻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어둠이 강할 때, 빛은 더욱 강하게 빛납니다.
어둠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절망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여러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빛입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빛을 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말, 행동과는 다른 특별함을 보여줍니다.
어떤 특별함일까요? 25절을 보면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기도와 찬송이 가득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감옥에 가두고, 발에 차꼬를 채워 바울과 실라를 꼼짝못하게 해도 그들의 기도와 찬송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최악의 환경에 던져지더라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예배가 우리의 특별함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고 가정에서 영상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함께 예배할 수 없도록 환경이 막혀도 이때, 우리의 특별함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한 우리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환경을 초월하는 예배자가 됩시다. 예배는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자가 누구인가? 이것이 중요함을 바울과 실라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예배드리기 힘든 환경 속에서 찬송과 기도로 예배합니다.
예배드리기 좋은 환경, 안좋은 환경이 따로 있을까요? 우리는 어느샌가 예배드리기 좋은 환경에 익숙해졌습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아니 핍박하지 않는 예배의 시간과 장소 안에서, 최고의 음향과 영상을 보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예배드릴 때, 의자가 조금만 불편해도, 스피커 소리가 조금만 불편해도, PPT 자막이 한템포만 늦어도, 냉난방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더위와 추위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예배에 대한 불평을 합니다.
저는 예배드릴 때, 항상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한 북한 선교사님을 통해 들었던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찬송과 기도를 생각합니다. 마음껏 목이 터져라 찬송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아무도 없는 넓은 들판에 나가 공산당 노래에 찬송가 가사로 찬송하는 성도, 부르짖어 기도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다락방에 몰래 들어가 온 몸을 비틀면서 기도하는 성도들, 기도하는 그 나무바닥 무릎 자리가 움푹 패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예배에 갈급한 예배자가 됩시다. 찬송과 기도에 목마른 예배자가 됩시다. 여러분~~교회와서 예배드리고 싶죠? 미치겠죠? 혹시 몇주째 예배드리지 않으니까 아이구~~주일 아침 늦잠 잘 수 있어 좋~다, 편하다하면서 예배를 소홀히 하는 친구들 있나요? 예배드리지 못하는 환경이라고 예배를 잃어버린 친구들이 되면 안됩니다. 예배를 향한 배고픔, 목마름이 가득한 예배자가 됩시다.
많은 성도님들이 예배의 자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다시 모여서 예배드릴 때,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습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함이 얼마나 안타깝고 영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번에 더욱 깨닫게 됩니다.
둘째, 기도와 찬송의 능력을 믿는 예배자가 됩시다.
목마른 예배자, 배고픈 예배자가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리니까 그 소리가 죄수들에게 들립니다. 여기서 들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죄수들이 들었다는 말은 죄수들에게 믿음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찬송과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큰 지진을 일으키십니다. 감옥을 흔드십니다. 문을 다 여십니다. 모든 죄수들의 매인 것을 다 벗겨버리십니다. 여기서, 지진이 난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옥이 흔들린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이 다 열린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수들의 수갑이 다 풀려진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수들이 아무도 탈옥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실라의 찬송과 기도 소리를 들으며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감사했습니다. 놀랍고 큰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망칠 수 있어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찬송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의 능력입니다.
흉악한 죄인 괴수라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찬송과 기도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믿고 찬송합시다. 믿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믿고 예배합시다. 그 어떤 노래보다 찬양을 더 좋아하고 많이 알고 더 많이 불러봐요. NGP카톡방에 성민이가 계속 찬양을 올리고 있어요. 찬양을 배워요.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계속 중고등부와 교회와 나라와 코로나사태의 안정을 위해 기도합시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의 소원을 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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