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기도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라 - 느헤미야 1장 5절 본문
기도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라 - 느혜미야 1장 5절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호칭하느냐에 따라 기도응답의 30~40%가 좌우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향해 '랍비여', '선생님이여'라고 부른 사람치고 기도응답 받은 사람 거의 없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여, 주여, 나의 하나님이여, 구주여 라고 한 사람들의 문제는 다 해결을 받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던졌는데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그 경험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예수님을 다시 부릅니다. "주여"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식하는 순간이 그의 인생의 궤도가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어떻게 아느냐? 어떤 신지식을 가지고 있느냐?하는 것은 중요한 신앙의 문제입니다.
제가 새벽기도를 시작하면서 사도신경을 하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모두 이상하다 생각했겠죠? 아이고 목사님 실수하셨네~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사실 일부러 사도신경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신경을 지금 할 거니까요?
사도신경에는 4번의 'Credo'가 나옵니다. 크레도, 이 말은 "내가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사도신경을 예배 시작할 때 많이 하죠. 왜 그런줄 아십니까? 사도신경을 함께 고백하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 당신이 믿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임을 서로 서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 할 때, 눈을 다 감고 하시는데, 원래는 눈을 뜨고 서로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해야 합니다. 사도신경에 몇번의 '믿습니다'가 나온다구요? 4번 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교회와 구원의 도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우리에게 쌓이게 됩니다. 함께 사도신경의 의미들을 생각해 가면서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시작.~~
(사도신경)
어제는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하라. 첫번째로 "기도로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경험하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기도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라" 입니다. 다같이 따라해 볼까요? "기도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라."
느헤미야 1장 5절을 통해 느헤미야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그 관심을 간절한 기도로 연결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해 왔던 사람이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느헤미야 1장에서 갑자기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도가 쌓여 있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마치 하루 세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항상 기도했던 다니엘처럼 기도하던 사람이었단 말이죠. 그렇게 기도가 쌓였던 느헤미야는 한가지 확신이 생겼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면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언약'은 '그 언약'으로 봐야 합니다. 그냥 언약을 아니라 '그' 언약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특정한 약속을 말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말합니다. 그리고 긍휼은 다른 말로 은혜로 해석됩니다. 이 긍휼은 어떤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말씀해 줍니다. 또 실제 원어상 문장의 구성으로는 "언약과 긍휼을 지키시는 주여"가 맞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는 그 언약에 은혜를 베푸셔서 반드시 시키시는 주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회복을 고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언약'을 두고 늘 기도하던 사람이었고,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언약을 반드시 지키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느헤미야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신실하시니까,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니까. 이스라엘의 회복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면 그 일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고대하던 또 다른 한 사람의 기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드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를 하는 이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예레미야의 기도입니다.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고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예레미야의 기도에서도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 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 이름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분명히 이런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래서 예레미야는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부르짖습니다. 느헤미야도 예레미야도, 기도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도가 최선의 방법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좀 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전능하십니까? 정말 전능하십니까?
하나님은 못하는게 많습니다. 한가지만 말씀드릴까요?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 어기기 잘 못하십니다. 우리는 거짓말도 잘 하고 약속도 잘 어기지만 하나님은 거짓말도 못하고 약속 어기는 것도 못하십니다. 하나님 못하는 거 많으세요.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으로서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을 무참히 짓밟고 어겼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김으로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가 아닌 진노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데, 하나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든든히 서계신데, 우리는 자꾸만 하나님을 떠나갑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하나님~ ~!! 어디 계세요? 하나님 어디 계세요!!! 하나님을 찾습니다. 나는 전혀 변함이 없고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자꾸만 나를 멀리 멀리 떠나 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누가 변했고, 누가 떠나갔는지? 히브리서 13장 5절에서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는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화 중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해변가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 저편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장면마다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두 줄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발자국이었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걸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 때쯤 그는 문득 길 위에 있는 발자국들이 어떤 때는 단지 한 줄밖에 나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또 그것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시기마다 그러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는 신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내가 일단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한다면 언제나 나와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들을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발자국이 한 줄밖에 없었습니다. 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당신은 정작 필요할 때면 나를 버렸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내 소중한 사람아, 난 그대를 사랑하며 결코 그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때마다 그대는 발자국이 한 줄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럴 때마다 내가 그대를 두 팔에 안고 걸어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나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친절한 그 팔로 나를 안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멋진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세히 보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이 구절을 잘못 오해하면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여부, 즉 조건에 맞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하나님으로 비춰집니다.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의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을 정말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사랑과 순종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합시다라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뜬구름 잡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하나님을 사랑함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이 3가지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3가지를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지키려고 힘써 노력하십시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즉 그 언약과 긍휼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기도를 통하여 익히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때문에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기도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이 말씀도 함께 기억하며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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