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천국을 경험하는 교회(막10:45) 본문
천국을 경험하는 교회(막10:45)
할렐루야~오늘도 수요예배로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오늘 모두 투표 하셨습니까?
지금 415 총선 개표가 한창 진행중에 있습니다.
저는 지난 토요일에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투표현장에 가서 투표용지를 받아든 순간 잠깐 당황스러웠습니다.
투표용지가 너무 긴 겁니다.
지금까지 여러번의 선거를 했지만 이번처럼 긴 투표용지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까 비례정당 투표용지 길이가 자그마치 48센티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비례정당 갯수만 35개라고 하니 길다란 투표용지를 받아들고보니
사실 정당 이름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너무 길어 개표기계를 쓸수 없고 손으로 개표해야 해서 시간도 엄청 많이 걸릴것이라고 합니다.
투표를 하면서 "사람은 권력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이 때에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에덴동산으로 함께 갑시다.
동산중앙에 선악과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 선악과를 따먹고 맙니다.
선악과의 전체이름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 즉 사람이 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선악을 판단하는 심판의 자리에 앉겠다는 말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사람이 선악을 판단하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죄인이기에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성향을 따라 판단이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결국 자신이 옳다고 하는 생각해서 옳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결국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에덴동산에서 나와서 가인과 아벨이 예배드리는 장소로 갑시다.
가인과 아벨이 예배드리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에게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해 동생 아벨을 원망하고 미워하여 죽이고 맙니다.
결국 내가 남들보다 낫지 못하면 죽여서라도 남을 이겨야 하는 욕망, 그것이 바로 권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리에는 늘 갈등이 있습니다.
지난 20대 국회를 동물국회라고 합니다. 의장석 점거·인간장벽·몸싸움,욕설을 내밷고 국회가 난장판이었습니다. 나랏일을 하라고 세운 국회의원들은 일도 하지 않고 권력만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고 참 답답하고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권력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결국 동물이 되나 봅니다.
권력은 국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어느 곳에나 다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신혼시절을 보낼 때,
결혼을 먼저 한 친구,동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초반에 기선을 잡아야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잡혀사는 남편,아내들이겠죠?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살아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구요?
남편과 아내는 서로 기선을 잡아야 할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섬겨야 할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서로 기싸움하는 관계가 아니라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해야할 관계입니다.
지난 주 담임목사님 말씀에 져야 한다고 했는데, 예~지니까 관계가 살아나는 경험을 합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있었던 끊임없는 전쟁과 끔찍한 학살, 폭력의 역사는 권력을 추구하는 죄의 속성을 가진 사람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회사를 경영하고, 가정을 이끌어가면 결국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권력의 길로 가서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의 길로 가서 섬길 것인가?
어린 시절 인상깊었던 동화중에 램프의 요정 지니 이야기를 잘 아실 겁니다.
램프를 문지르면 나타나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
어릴 때 지니처럼 내 소원을 들어주는 진짜 요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성경을 보다보니 진짜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같은 하나님이 계긴 겁니다.
솔로몬 왕에게 나타나 니 소원이 무엇이냐? 이 장면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나한테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시면 나는 무슨 소원을 말할까 고민을 많이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니까 철없이 대통령이 제일 힘쎈 사람인줄 알고, 또 평생 대통령인줄 알고 대통령 되게 해주세요.
조금 나이를 더 먹으니까 이것 저것 따질게 많더라구요. 큰 집도 있으면 좋겠고, 멋진 차도 있으면 좋겠고, 거울을 보다보니 얼굴도 재건축이 심각하게 필요하겠고, 그래서 돈 좀 많이 벌 수 있게 해주세요.
나의 성향이 권력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혼자 조용히 방에 앉아 생각해 보고 하나님이 나에게 딱 한가지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소원을 말할까? 그것이 바로 내가 걷고 있는 길입니다.
누구보다 높은 명예와 인기를 누리고 싶다. 누구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남들 아래에서 명령받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 위에서 군림하며 명령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내 속마음이라면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신 예수님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홀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결심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고 피를 쏟으며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지만 능력을 내려놓습니다. 정말 12군단 더 되는 백만명의 천사도 동원하실 수 있지만 묵묵히 십자가를 지십니다.
십자가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권력의 길을 걷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으나 여전히 권력을 추구하는 그 상태 그대로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에 있어도 세상만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와 세상이 다른 것이 무엇이냐면서 세상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됩니다.
교회에서 세상이 아닌 천국을 경험하려면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길을 걷어갈때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세상이 아닌 천국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
교회가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교회에서 천국을 경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우리 거제호산나교회에서 세상과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거제호산나교회에서는 천국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는 '섬김'이라고 합니다.
어떤 새가족 성도님이 우리 교회에 등록한 후,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이상하다구요. 뭐가 이상합니까? 모든 성도님들이 자기를 도와주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 같다고 합니다. 성도님들의 머리 속이 보인다고 합니다. 뭘~도와줄까요? 머리 위에 글자를 붙이고 다니는 것 같다고 합니다. 힘든 것 같이 힘들어 해주고 위로해 주고 아프다고 하니 몸에 좋은 영양제 가지고 오지, 이상한 교회에요.
천국을 경험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 거제호산나교회도 천국을 경험하는 교회입니다.
권력의 길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즉 섬김의 길을 걸을 때 천국을 경험하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십자가의 길, 섬김의 길을 걷는 성도들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도 진짜 국민을 사랑하고 생각하고 섬기고자 하는 일꾼이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신약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6:1-6 믿지 않는 곳에는 권능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0) | 2022.12.14 |
---|---|
마가복음6:1-6 편견에 갇힌 곳에서는 권능을 행할 수 없습니다 (0) | 2022.12.13 |
마가복음 6:1-6 자라지 않는 곳에서는 권능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0) | 2022.12.12 |
십자가를 맞이하는 예수님(막14:32-42) (0) | 2021.03.27 |
이렇게 기도하여 일어납시다 : 5장 35~43절 (0) | 2016.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