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의 전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여호수아3:1~17) 본문

구약/여호수아

하나님의 전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여호수아3:1~17)

행복으로초대 2020. 8. 5. 20:46

하나님의 전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여호수아3:1~17)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40년 생활은 마치 훈련소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훈련소는 두 가지 물의 기적으로 들어가고 나옵니다.

광야훈련소 들어갈 때는 홍해의 기적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훈련소를 나올 때는 요단강의 기적으로 나옵니다.

처음 홍해의 기적으로 훈련소에 들어갈 때는 보통 당나라부대라고 하는 오합지졸 군대였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하기 뭐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광야 40년의 훈련소 기간을 거치면서

이제는 자타공인, 하나님도 인정하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군대로서 퇴소식을 하고 이제 실전에 투입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퇴소식이 바로 요단강의 기적입니다.

 

보통 군대는 군복무기간이 있어 군인으로 있다가 제대를 하면 일반인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군대는 예수 그리스도로 새 생명얻고 새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군대로 훈련받고

남은 일생 평생 하나님의 군대로 하나님의 전쟁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매일의 삶이 영적전쟁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전쟁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만 두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궤입니다.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가나안을 건넌다는 것은 전쟁의 시작을 말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전포고입니다.

그런데 전쟁의 시작을 어떻게 하시는가?

바로 언약궤가 앞서 나갑니다. 보통 전쟁을 하면 선봉부대가 있습니다.

가장 강한 군대가 전쟁을 앞서나갑니다.

온갖 최첨단 무기와 최강의 훈련된 군인들이 앞서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단강에서 앞으로 전개된 전쟁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십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그래서 잘 훈련된 특수부대, 날카로운 창칼에 시선을 향하지 않도록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궤에만 모든 시선이 고정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명령한 것은

언약궤을 주목하여 보고 있으라.

시선을 고정하고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일어서는 것을 기다리다가

그 뒤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보는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4절을 봐도 그렇습니다. 언약궤가 앞서 나가고 백성들은 뒤따르는데,

언약궤와 백성의 거리가 2000천규빗이라고 합니다.

한 규빗이 45센티미터입니다.

그럼 약 912미터 정도 됩니다.

900미터 앞의 언약궤를 보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언약궤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언약궤를 볼 수 있도록 시선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삭개오 이야기: 예수님을 보고싶다!

하지만 키가 작다. 시선이 가려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무에 올라가야 한다.

예수님이 잘 보이는 곳에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인생에 변화가 생기고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님을 잘 보지 못하는 상태인데,

그대로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있으면 아무 일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인 방황이 끝나고 좋은 교회를 만나면 신앙의 방황이 끝나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남등처먹던 인생이 나누고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고,

자기만 알던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기적이죠.

그런 기적이 언제 일어납니까?

하나님께, 예수님께로 시선이 바로 잡힐 때입니다.

 

모든 시선을 언약궤에 둘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900미터 거리에서 언약궤를 볼 때,

알지도 못하는 길, 한번도 지나보지 않은 길이지만 아무 문제없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언제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고 하나요?

백성들을 성결하게 할 때입니다.

성결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된 상태를 말합니다.

성결함과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무슨 관계일까요?

 

요단을 건넌 후, 첫 전쟁이 여리고 전쟁입니다.

여리고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은 여리고성의 전멸입니다.

그 그 어떤 것도 살려두지 말며, 손대지 말며, 취하지 말라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리고 전쟁에서 딱 한 사람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황금보화과 진귀한 물건들을 챙깁니다.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시선을 고정하고 싸울 때, 아간은 시선을 딴 곳에 두었습니다.

그로 인해 온 백성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것입니다.

성결함은 모든 생각과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것입니다.

시선이 흐려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기이한 일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15~16절입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감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물에 잠기자 강물이 멈춥니다.

곧 마른 땅이 됩니다. 그 마른 땅으로 백성들이 건너갑니다.

홍해의 재방송, 40년 동안 말로만 전해들었던 홍해의 기적을 눈앞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이런 놀라운 광경을 보면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는 요단강이 멈추는 광경을 보는 사람입니다. ~~~~ ~~~~ ~~~~~~~

둘째는 요단강에 서있는 언약궤를 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디가 더 잘 보이셨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보다가 17절에 이 부분이 확대가 되면서 확실히 보여야 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동안 기적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 속에도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생각해 보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광경을 보는 사람이 있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어디에서 올라가는 것일까요? 언약궤에서 올라옵니다.

요단강의 기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단강에 멈췄습니다.

이 기적 속에서 누가 가장 깊이 강력하게 이 기적을 경험했을까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입니다.

기적의 중심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기적의 현장 속에서도 느끼는 온도차는 다릅니다.

 

알고보면 우리 거제호산나교회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받는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구름기둥 불기둥만 보는 성도가 있고,

언약궤를 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요단강의 멈출 때에도 마른땅이 된 요단강을 보면서 건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요단강의 넘쳐나는 강력한 흐름을 막고 서있는 언약궤!

곧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서 건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은수 집사님 한주간의 최고의 뉴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병이 낫는 것에 환호하는 성도들이 있고,

병을 낫게 하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집중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병이 낫는 것에 환호하는 성도들은 와~~~~~~~ 한번 하고 나면 끝납니다.

하지만 병을 낫게하시는 하나님을 본 성도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영적변화, 영적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나의 능력이신 하나님!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주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기도의 자리에 나오게 됩니다. 말씀의 자리에 나오게 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음을 얻은 그는 발목에 힘을 얻어 걷고 뛰며

곧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걷고 뛰는게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앉은뱅이로 멸시받고 천대받고 가난에 찌들었던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를 주목했을 때,

그의 어둔 인생. 원망하고 자신을 낳은 부모, 무정한 주변의 사람들을 원망하던 인생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언덕을 넘치는 강한 강물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넘쳐들며 인생을 위협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강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약궤가 강 한 가운데 굳게 서있는 한 우리는 마른땅을 건너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