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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축복하는 사람(롬12:14~21) 본문

신약/로마서

축복하는 사람(롬12:14~21)

행복으로초대 2020. 12. 24. 18:23

축복하는 사람(12:14~21)

1.연말 연초가 되면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합니다.

진심이 담긴 말이든 단순한 인사말이든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축복의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을 향해 축복할 수 있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 하고 말씀을 따라 가다보면 축복하는 삶, 축복하는 사람이 되는 길에,

넘어가야 할 한가지 산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2.그냥 단순히 축복하라가 아니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는데

나를 박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축복하라!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이게 가능한가?

3.맞습니다. 어렵습니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불가능에 도전하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불가능처럼 보이지만,

로마서 1214절부터 21절까지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려워보이고, 불가능처럼 보여도 해야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어렵다고 포기하고 타협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 하신 일이고,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가신 길이며,

제자된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4.그럼 이제 이 불가능해 보이는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 보기 원합니다.

 

5.첫째, 하나님은 나 혼자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악을 상대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19)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자신을 박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에 분노가 가득하게 되고

더러운 말들과 악한 저주가 가득하게 됩니다.

그때, 그 일은 하나님께서 내게 오셔서 그 모든 분노를 다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악은 하나님이 처리하신다. 악은 하나님이 정확하게 계산하고 계신다.

악은 하나님이 상대하시겠다고 합니다. 축복하고 사랑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악인에 대해서 원수갚은 일, 심판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겠다고 하십니다.

 

즉 우리의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 선한 일을 하는 것.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것. 함께 화목한 것

이런 좋은 역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겠다고 합니다.

악을 상대하고 악을 심판하고 악에 대해서 원수를 갚고 진노하시는 역할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요?

 

우리가 선과 악의 결정자가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하나님께서 계산하시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교만해져,

스스로 지혜인 것처럼,

자신이 무조건 선인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내가 스스로 나를 선이라고 생각하고

교만해져 다른 사람을 악으로 규정하고 진노를 쏟아 붓는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냥 축복하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박해하는 자가 있어도, 원수가 있어도 축복하는 좋은 역할만 하라고 하십니다.

 

6.우리가 왜 악인을 축복하지 못할까요?

복에 대한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복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그렇다.

복을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해서 축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복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복이 아니라,

예수가 복이다. 그래서 천국의 복, 팔복이 복이다는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애통하는 자의 복,

온유한 자의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화평케 하는 자의 복,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

 

악인들, 나와 원수관계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축복하면서

그들이 잘 먹고 잘 살게 기도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 예수의 복을 선포하십시오.

저들도 이런 복을 받게 하소서. 이렇게 축복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의 마음이 생기겠죠?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예수님의 애통함이,

영혼을 보며 아파하는 마음이 생기겠죠?

그 때가면 진정한 축복의 삶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20절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숫불을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20)

 

지난 주일 담임목사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먹여서 섬김으로 이기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배가 고파 힘들어 합니다.

그것을 보며 고소해 하고 즐거워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먹이고 목마른 원수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결국 원수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 먹이고 마시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먹이고 마시게 하면서 축복하면 나를 박해하던 사람,

미워하고 괴롭히던 사람의 마음에 괴로움이 더해집니다.

양심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불안해 집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나는 괴롭히고 나는 박해하고 핍박하는데,

이 사람은 왜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나에게 마실 것을 주며 축복하는가?

오히려 자신의 박해하고 괴롭히고 미워했던 일들을 반성하게 되고 돌아보게 되며

괴로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장면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만남 속에서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고난당하시는 그 현장에 사람들이 추워서 불을 떼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과 멀찍이 떨어져 그 불을 쬐며

사람들 속에 숨어 예수님이 어떻게 되시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를 아는 사람들이 너도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자꾸 묻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불 곁에서...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숯불을 피워두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위해 생선과 떡을 준비했습니다.

먹이고 마시게 하는 섬김으로 베드로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은 것입니다.

숯불을 마주한 예수님과 베드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3번 물으십니다.

숯불의 기억. 불을 쬐며 3번 부인했던 베드로.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배신한 일,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결국 불 앞에서 예수님을 향해 3번 사랑한다고 시인하게 됩니다.

베드로를 억누르고 있었던 죄책감, 온갖 자괴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축복하면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과

또 하나는 끝까지 강퍅한 마음으로 살다가 심판받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여전히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축복하고 먹이고 마시게 해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강퍅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악한 자가 있으면 그 머리에 숯불을 쌓아둡니다.

축복의 말, 축복의 행동을 합니다.

먹이고 마시게 함으로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두면 회개하거나 강퍅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만

그 것 또한 우리의 할 일은 아니며, 우리는 다만 그냥 좋은 역할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악에게 악한 방법으로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한 방법으로 선한 일,

선한 역할, 좋은 역할을 함으로 섬기고 나누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베풀고 먹이고 마시게 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래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

이 축복의 삶, 축복하는 사람들을 통해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