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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의 일을 할 때라도 대적은 있습니다 : 느헤미야 2장 19~20절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하나님의 일을 할 때라도 대적은 있습니다 : 느헤미야 2장 19~20절

행복으로초대 2017. 2. 7. 00:27

하나님의 일을 할 때라도 대적은 있습니다(느헤미야 2장 19~20절)

 

절망과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신 일을 느헤미야가 간증하자, 유대인들이 일어나자! 건축하자! 힘을 다해 보자! 해보자고 강한 손으로 일어납니다. 이제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선한 일, 즉 하나님의 일이 힘있게 진행될 때입니다. 모두가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이제 모든 일이 잘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때, 찬물을 끼엊는 듯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19절에 그 하나님의 선한 일이 시작하려 할 때,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이 대적들은 이미 2장 10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왔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을 흥왕케하는 자가 왔다고 심히 근심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느헤미야가 왔다고 근심하면서 오히려 더욱 연합해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대적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느헤미야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한명씩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호론 사람 산발랏입니다. 산발랏은 당시 사마리아 총독으로서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의 재건되고 유대인들이 다시 강성해 지는 것을 누구보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총 지휘자입니다.

두번째는 암몬 사람 도비야입니다.  종이었던 도비야라고 되어있는데, 종이라기 보다는 '신하'로 해석하는게 맞습니다. 즉, 산발랏의 신하라는 말입니다.  도비야는 산발랏의 참모로 아주 지능적인 전략가입니다.  그리고 도비야는 유대인들의 지도자 계층과 친인척 인맥을 갖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중에도 많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조직 안에 스파이를 심어놓고 느헤미야의 진영에서 내부 정보를 계속 빼내는 일을 하고 느헤미야를 힘들게 한 사람입니다.

세번째는 아라비아 사람 게셈입니다.  게셈은 산발랏과 도비야와 동맹을 맺은 관계였으며, 애굽 북동쪽에서 팔레스타인 남쪽까지 꽤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 영주 였습니다.

 

이  세 사람은 느헤미야와 유대인들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업신여기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협박을 합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산발랏, 도비야, 게셈, 이들은 십여년 전에도 유대인들이 성벽을 건축하려고 할 때, 반란을 꾀한다는 모함을 해서 공사를 중단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일을 유대인들에게 상기시켜 주면서 백성들을 반역자로 몰겠다고 협박합니다. 대적들은 업신여기고 비웃고 때로는 협박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조롱받게 하고 비웃음 당하게 하며, 때로는 협박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신앙생활에 힘을 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때 대적들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사무엘상 2장 9절 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는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우리가 믿고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은 대적들을 산산히 깨뜨리시는 하나님이며, 하늘 우레로 대적들을 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대적들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힘으로는 그 어떤 대적들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믿음의 사람 옆에 대적들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왜 대적들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보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도 조롱받고 비웃음을 당하고 협박을 당합니다. 대적들을 박살낼 수 있음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 옆에 대적들이 있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허락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대적들을 계속 느헤미야 옆에 공존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욥이 사단에 의해 갑작스러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분명한 경계선을 그어주십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 건들어도 욥의 생명 만큼은 해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 있씁니다. 정말 무서운 사자 한 마리가 으르렁 거리며 한 사람 옆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표정이 참 평안합니다. 하나도 안무서운 것처럼 멀쩡히 서 있습니다. 알고보니 사자 목에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이 묶여있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무서운 사자라도 그 옆에 있는 사람을 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들을 해하고자 대적들이 으르렁 거리더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손을 믿으십시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대적들이 있음에 마음이 힘들고 괴롭습니다. 분명한 믿음은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손을 믿습니다. 대적들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대적들 때문에 힘이 듭니다. 이 때,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실까?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음에도 왜 하지 않으실까?

 

먼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피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엎드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느헤미야서 안에 느헤미야의 기도가 12번이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은 느헤미야 옆에 계속해서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힘들기는 했지만 오히려 느헤미야는 더욱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문제 없는 것도 좋지만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엎드리며 인내합시다. '인내'의 짝꿍이 있습니다. 인내의 짝꿍은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기에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인내할 수 있습니다. 20절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니 하나님의 종들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국 성을 건축할 것이다.

아무리 조롱하고 비웃고 협박할지라도 방해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느헤미야의 소망이며, 느헤미야가 인내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형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보통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이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내 뜻이 내가 계획하고 소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뜻이 내 마음대로" 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형통입니다.

찬송가의 제목처럼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것이 형통입니다. 찬송가 549장은 독일의 슈몰크 목사가 작사했습니다. 슈몰크 목사 부부가 심방을 갔다고 돌아오니 집에 화재가 발생해서 두 아들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 때의 울부짖음의 가사가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에 이것은 정말 큰 불행입니다.

솔직히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대한 어려움 없이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가족들이, 사랑하는 두 딸이 무사히 안전하게 잘 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슈몰크 목사님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을지라도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주여 뜻대로"가 나의 반응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이 바로 형통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역사하셔서 선을 이루십니다. 과정 가운데 대적들이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우리는 우리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맡깁니다.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국은 형통하게 하실것이니 그것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여러분을 조롱하고 비웃고 협박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내하십시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품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망을 품고 인내하고 기도합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대적들의 살기등등한 위협도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을 깨뜨리시고 산산히 부수실 수 있는 강한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함에 힘을 냅시다. 낙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충성되이 헌신합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든든히 서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