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요일1:5~10 빛이신 하나님 앞에 서는 기쁨 본문
요일1:5~10 빛이신 하나님 앞에 서는 기쁨
1.하나님은 빛이십니다.(5절)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빛과 어둠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어둔 밤이었다가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며 빛이 비취면
어둠은 물러가고 밝은 아침, 그리고 밝은 낮이 됩니다.
깜깜한 방에 스위치를 올리면 등에 불이 들어오고
밝은 방이 됩니다. 어둠과 빛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둠인 우리와 사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둠이었는데 어둠을 뚫고 빛이신 예수님께서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과 사귐을 가지기 위해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둠속으로 찾아오신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더이상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와 사귐을 가집니다.
2.그런데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귀면서
어둠에 행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6절)
다시 질문.
빛의 자녀인데 어떻게 어둠에 행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면서
빛이 비췄는데 어둠이 있을 수 있는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빛을 가리면 됩니다.
빛이 비춰도 어떤 물체로 가리면 가려진 부분에는 어두워집니다.
빛을 가리면 되는구나!
<이발사와 목사>
이발사와 목사가 우연히 만나 함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통성명을 하고 각자 하는 일을 소개하고 세상 돌아가는 나누는 중에
이발사가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왜 세상은 이렇게 악하고 가난합니까?”
이발사는 교회의 문제와 성도들의 비행을 들먹거리며 열을 냈습니다.
목사는 가만히 듣기만 했습니다.
특별히 반박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렇다는 식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머리가 긴 남자가 지나갔습니다.
머리가 꽤 길었고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목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머리가 저토록 긴 것인가요?”
목사의 질문에 이발사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저 사람은 이발관에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발사를 찾아 왔다면 깔끔하게 단장했을 것입니다.”
이발사의 말을 듣던 목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군요.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그게 문제이지요.
하나님을 찾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면
그 인생도 달라지고 세상도 역시 달라질 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빛이신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도
빛을 찾지 않으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거나
빛이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둠에 행하게 됩니다.
몸이 아픈 사람을 병자 또는 환자라고 합니다.
환자는 어디로 가야 하죠? 병원에 가야 합니다.
병원에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몸이 아픈 것처럼
영혼이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영혼이 아픈 사람을 뭐라고 할까요? 죄인입니다.
죄의 병균이 영혼에 파고들어 온 영혼이 죄로 아파합니다.
이 질문을 유초등부 아이들에게 하니까
영혼이 아프다고 '영자'라고 하더라구요.
영혼이 아픈 죄인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교회로 와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어둠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맺고
아버지와 자녀의 아름다운 관계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행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반대로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둠에 행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8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0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어둠에 행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예수님을 믿어도 매일마다 순간순간마다
숨쉬듯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의 연약하고 악한 모습을 보시고
너희가 어둠에 행한다고 하시면 우리는 도저히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어둠에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주십니다.
어둠에 행하는 것은 내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둠에 행하는 것은 내가 범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죄가 있다고, 내가 범죄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 있습니다.
돌을 들어 치려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십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 어느 누구도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돌을 놓고 떠나고 난 후,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그 때 이 여인이 빛 가운데 걷기 위해서는
"예수님~나는 죄인입니다" 회개하고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꼭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입니다.
갈릴리바다 베드로 -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사도 바울은 평생 이 고백으로 살았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어릴 때 숨바꼭질 놀이를 많이 해 보셨을 겁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때로는 정말 너무 잘 숨어서 찾을 수 없도록 숨었는데,
거기서 잠이 들어 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못찾겠다 꾀꼬리 ~~~해도 안나옵니다.
그러면 찾다 찾다 못찾으면 집에 갑니다. 난리가 납니다.
집에 안 들어왔다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빠져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말로는 죄인이라 하지만 자신의 죄인됨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사는 회칠한 무덤같은 성도들이 많습니다.
성도로 그럴듯하게 경건한 척하며 신앙의 외적인 모습을 가꾸면서
깊은 내면의 속사람은 온갖 죄에 더러워져 악취나게 썩었는데,
자신의 죄를 자백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어둠 속에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빛이신 하나님 앞에 드러나야 합니다. 드러나야 삽니다
대부흥의 시대를 묘사한 풍경 :
죄를 회개하라 외치는 부흥사들의 외침에
사람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바닥에 지옥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기둥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살려달라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한국교회의 대부흥운동 :
조선사람들에 대한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과 교만함에 빠졌었던
하디 선교사의 회개에서, 죽었던 친구의 재산을 정리하면서
거금을 착복한 길선주 목사님의 회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회개했을까요?
성령님께서 그의 심령을 비추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심과 역사를 막는
나는 아간이라며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부흥의 불을 붙인 것입니다.
자백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은혜가 막힙니다.
8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죄가 없다. 범죄하지 않았다 하면 우리 속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진리,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이라 자백하면 무엇일 우리 속에 있을까요?
진리와 말씀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신앙의 기쁨? 진리가 내 안에, 말씀이 내안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
진리의 성령님이 회개하고 자백하는 사람에게 충만하며
진리의 성령님이 충만하니 말씀이 내 안에 놀라운 역사로
나타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신앙의 참 기쁨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역설입니다. 울어야 기뻐집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울어야 내 안에 참 자유을 누리고
기쁨이 내안에 충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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