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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창세기 12:1~4 믿음이 시작되다 본문

구약/창세기

창세기 12:1~4 믿음이 시작되다

행복으로초대 2023. 1. 2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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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1~4 믿음이 시작되다  

 

여러분에게 별명이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누구나 별명 하나쯤은 다 있습니다. 

성경에도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믿음의 조상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죠?

 

어릴 때부터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인지?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그렇다 하니까

교회 선생님이 그렇다 하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이유는

마서 411절 말씀에 근거를 둡니다.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별명을 붙여주시기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믿음이냐 율법이냐 믿음이냐 할례냐 하는

논쟁 가운데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있기 전에 할례가 있기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고

하는 그 말씀에 근거해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별명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믿음이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는지?

우리가 왜 하나님만, 예수님만을 믿어야 하는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왜 믿음인지 아브라함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오늘은 "믿음 시작되다"

어떻게 믿음이 시작되는지?

아브라함을 통해, 아브라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믿음이 어떻게 시작될까요?

첫째.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시작됩니다.

 

1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이르시되"라는 말 앞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죠?

이르시되? 말씀하시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왜 이 말이 중요할까요?

창세기121절 전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일까요?

몰랐던 사람일까요? 창세기 121절 말씀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마음조차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믿음의 삶을 시작하도록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이 점은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똑같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나에게는 믿음의 조건이 전혀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복인지 모릅니다.

나에게서 조건을 찾는다면 내가 잘 믿느냐?

얼마나 잘 믿느냐는 것을 수치로 해서 점수로 매겨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왜 아브라함일까요?

세상에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특별히 아브라함일까요?

왜 아브라함에게?

모릅니다. .왜 아브라함인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무 조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지금으로 바꾸면 왜 김창태 일까요?

죄송합니다(성도들 중에서) OOO일까요?

왜 나냔 말입니다. 모릅니다.

한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우리에게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유 그 하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하는 것에는

놀라운 진리가 하나 더 담겨있습니다.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떠오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침에 곧 즉시 일어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정말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훌륭한 믿음입니다만

그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고 그 이전의 모습을 보면

아브라함도 우리처럼 부족하고 실패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남편 아닙니까?

저는 아직까지 아내를 팔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아내를 부인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떳떳합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내 목숨 살자고 아내를 버리는 나쁜 놈은 아닙니다.

부인을 바로 왕한테 들여놓고 많은 선물을 받았던 아브라함은

절대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심심하면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로 갑니다.

자기 편한대로, 자기 살 길로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기도 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보호하기고 인도하시고 지키십니다.

결점투성이 실수투성이지만 하나님을 결코 쓸모없다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옷이 헤지거나 작아져서 못 입는 경우가 없습니다.

맘에 들지 않아서 유행이 지나서

더 좋은 옷을 입기 위해 버리는 것입니다.

살던 집도, 타던 차도 때가 되면 새 집, 새 차로 바꿔탑니다.

핸드폰도 더 좋은 것으로 쓰기 위해 통신사이동 하면서

갈아타는 것이 일상이며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수십 번도 더 버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부족하고 잘못한다고

버리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셨다는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은

확실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실수해도, 넘어져도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계셔서 저는 참 좋습니다.

 

믿음이 어떻게 시작될까요? 

둘째.믿음은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의 말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떠나라~그리고 가라!

 

이 명령에는 장소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떠나야할 이 곳과 가야할 저 곳이 있습니다.

 

아브람이 떠나야할 이 곳은 어디일까요? 

아브람이 살았던 도시는 갈대아 우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되자며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께 대적했던 도시였습니다.

아브람이 자란 가정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우상을 만들어 팔던 가정입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시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온갖 죄악을 쌓던 가정에서 자랐던 아브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에서 그 가정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이 떠나야 하는 곳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사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던 곳입니다.

문명이 발전된 도시, 안정된 가정,

태어나 자라면서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환경들.

하나님 없이 살아도 사전혀 문제가 없어보이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살았던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아브람에게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땅이

어떤 곳인지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이 곳에 있습니까? 

신앙셍활을 오래 했지만 여전히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이 곳에 있습니까?

너무나 안정적이어서, 너무나 익숙해서,

내 삶에 아무 문제 없어서

기도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곳에서 떠나라! 우리의 생활이 너무 안정적이 되면

가끔씩 기도제목을 물어보면 기도제목이 없어요.

내 인생이 너무 잘 풀린다.

내 인생이 너무 탄탄대로로 잘 되어가니까

기도할 제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새벽으로 밤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 곳을 떠나라! 그 안정을 버리고 그 익숙함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와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곳으로 가라!

익숙한 신앙생활, 안정된 신앙생활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안정과 익숙함이 신앙생활의 도움이 되서

더 기도하고 더 말씀보고 더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따라 살고

하나님과 깊은 동행가운데 살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기도할 필요도 없고

더이상 말씀 볼 필요도 없고

기도안해도 잘 되고 말씀 안봐도 잘 되고

성령의 인도함, 이끄심을 받지 않아도 잘 되고

내 삶에 아무 문제 없어 부르짖지 않아도 소리 지를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황이라면 그런 나태함과 안일함, 그런 안정과 익숙함을

깨뜨려 믿음생활에 변화를 주셔야 합니다.

그 곳에서 일어나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께 외치십시오.

주님! 내가 주님께로 가겠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하나님 없어도 되는 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살아도 된다는 교만에서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에서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저 곳은 어디일까요?

1"내가 네게 보여줄 땅"입니다.

"보여줄" 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보여준 땅이 아닙니다.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할 때

구체적인 목적지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진을 보여주시는 장면)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준 땅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보여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보여줄 땅"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법칙: 한 걸음의 법칙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내가 해야할

작은 어떤 일에 대해 믿음으로 한 걸음만 내디디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그 앞을 열어가시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두고 요단강을 건너야 되는 상황입니다.

히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짊어지고

세차게 흐르는 요단강에 발을 담그면 요단강이 멈추게 하십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해서 제사장들이 한걸음 내디디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달랐습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 때 바다가 갈라졌고

바다가 갈라진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았으니 이제는 요단강을 가르지 않고

믿음의 한걸음을 내딛도록 합니다. 한걸음의 법칙대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한걸음 내딛는 사람마다

믿음의 길을 활짝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체를 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내 앞의 길을 여십니다.

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라

그래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에 한걸음 한걸음을 이끌어 가십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할 때

"보여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일단 순종해서 가면

"가면서 내가 어디로 가야 될지 알려주께" 이 말입니다.

 

그래서 4절에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믿음생활이라는 것은 보이는 현재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로 갈 때,

오직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내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을 열고, 나의 온 영적 감각과 신경을 집중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은 하나님만 보이는 땅입니다.

믿을만한 사람 하나 없는 땅입니다.

안전한 곳을 벗어나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야 하는 땅입니다.

경험하지 못하는 땅,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땅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신뢰하게 하는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을 내려놓고 말씀을 따라 일단

말씀하신 무엇인가 작은 것을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말씀이 아직 들리지 않는다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고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시옵소서.

 

믿음이 어떻게 시작될까요?

셋째.믿음은 우리가 복이 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2023년 설날입니다. 우리는 이 때 서로 이렇게 인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로 인사할까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하나님도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2절 같이 읽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가지 복입니다.

1)너는 큰 민족이 될 것이다.

이 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입니다.

이 나이를 지금과 같이 생각해서 어떻게 75세나 된

나이 많은 노인이 어떻게 이렇게

믿음의 결단을 하고 떠날 수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175세를 살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나이 75세를

그렇게 많은 나이로 보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175세 중에 75세면 지금 나이로 보면

40세 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나이 75세는 창창한 나이입니다.

 

나이가 많은 노인이 믿음의 결단을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으로 자기의 힘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창창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결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창창한 나이였지만 그에게 아들이 없습니다.

아내는 불임입니다.

그런데 큰 민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네 이름이 유명해 질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유명인이 될 것이다.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수십억의 인구가

아브라함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복이 될지라에 대해서 풀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복이 된다는 말은

우리가 더이상 세상의 복에 목마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더이상 세상의 복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이 될지라에 대해 이해가 더 잘 되도록 설명한 구절이

3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저를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고

여러분이 저를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할까요?

저를 향해 여러분이 저주하든 축복하든 저는 상관없어요.

저를 저주하든 축복하든 그 결과는 모두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저주에, 사람들의 축복에 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받으려고

세상에서 전전긍긍하고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

세상을 두려워하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십니다.

사람에 묶여서 사는 인생에서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

사람들에게 축복받으려, 사람의 마음에 들려 

하는 것에서 풀려지게 됩니다.

 

내가 복인데 어디서 복을 구하러 다닙니까?

여러분이 복인데 어디 점집에 가고 무당을 만나서 복채주고

여러분이 복인데 토정비결은 무엇이며,

올해 운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복인데 어디가서 복받으려고 합니까?

 

세상의 어떠함에 따라

내 복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구걸하는 인생을 삽니다.

복주세요. 복주세요 제게 복주세요.

제 가정에 복주세요. 내 사업에 복주세요.

내 자녀들에게 복주세요. 내가 하는 일들에 복주세요.

오늘도 내일도 내게 복주세요.

 

하나님은 이런 복을 구걸하는 인생에 묶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이제는 세상 복에 매인 인생이 아니라 니가 복이 되어라!

그래서 내안에 있는 복을 마음껏 흘려보내고 마음껏 나누어주는

복 그 자체가 되라고 하십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러 온 세상을 뒤져도 없다가

자기 집에 돌아와보니 행복의 파랑새가 집에 있네

복은 내 안에 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풍성하고 큰 복이 내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이 복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 내가 있음으로 인해 복이 되고

자녀가, 부모님이 내가 있음으로 복이 흘러가서

복된 자녀가 되고, 복된 부모님이 됩니다.

설날입니다. 가족,형제,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데

내가 그 곳에 있음으로 복입니다.

 

우리는 복덩어리입니다. 우리는 복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덩어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통해 복이 흘러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를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 당신을 통해 주 사랑 알기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