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창세기 12:7~13:4 실패해도 예배로 돌아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본문
창세기 12:7~13:4 실패해도 예배로 돌아오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배가 살아야 산다 시리즈가 있습니다.
예배가 살아야 성도가 산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예배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예배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예배가 살아야 열방과 온 민족이 산다.
예배가 살아야 내가 니가 살고 우리가 산다.
예배가 살아야 믿음이 산다
예배와 믿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브람의 이름을 믿음으로 바꾸면
믿음이 무엇인지 보인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아브라함을 통해 알게되는 믿음은
"실패해도 예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저를 따라하세요.
"실패해도 예배로 돌아오는 것이 믿음이다."
이 한줄 문장을 잘 기억하십시오.
이제, 주일 날 아침부터 이런 말 해서 죄송하지만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말씀드립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높이뛰기 예화) 공식기록은 190, 비공식기록 192
제 키가 176인데.... 제 키보다 높은 높이를 넘을 때...
뛰어가서 넘으려고 할 때, 무서움, 바가 무섭습니다.
높이뛰기는 성공과 실패가 분명합니다.
뛰어서 바가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성공.
아슬아슬하게 엉덩이 .... 바가 높이 떴다가...성공
그 높이 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을까요?
수백번을 뛰어서 그 높이에 성공하고 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그 높이를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컨디션 난조나 여러 상황으로 또 실패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계획한대로, 생각한 대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 정의합니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하죠.
그 말은 그만큼 눈물날 실패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리 자꾸 실수하고 자꾸 넘어지는지 연약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기에 주님이 뜻을 이루려고 살아보지만
주뜻 이루며 살기엔 너무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위기가 닥쳐옵니다.
'기근'이라는 위기가 닥쳐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겠지만
당장 먹을 것이 떨어지고 처자식, 식솔들 굶주려 하는 모습을 보니
먹을 것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아브라함의 불신앙으로 보지만
막상 생계의 큰 위기를 만나면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당장 거제도 이런 상황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신앙생활하다가
직장 취직이 안되고 사업이나 가게, 장사가 되지 않아 먼 타지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해서 우리 거제호산나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지 못하는
성도님들이 많습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실패한 것은 무엇일까요?
기근을 피해 먹을 것이 있다는 애굽으로 갑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믿음의 조상, 하나님을 예배했던 아브라함에게
그의 일생에 가장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내 사래의 미모가 아름다워 애굽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빼앗아가기 위해 자기를 죽일 수 있다는
불안감,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될
심각한 거짓말을 합니다,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아내라고 하면 남편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으면 되고,
누이라고 하면 오빠에게 돈을 주고 그 누이와 결혼하면 됩니다.
이것이 그 당시, 불법의 시대, 여전히 힘있는 자들이 활개치던
시대의 모습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애굽의 사람들이 사래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그 소문이 애굽왕에게까지 들려
애굽왕이 사래를 궁으로 데리고 가버립니다.
아브람에게는 큰 재산을 선물로 줍니다.
여기서 여러분~아브람의 거짓말에 집중하면 안됩니다.
아브람이 자기 목숨살자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말을 하는 동안
그에게 땅과 복과 큰 민족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한 하나님
큰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라면
아브라함의 목숨을 반드시 지키셔야 됩니다.
아브라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큰 민족, 자손의 복을 주시려면
아내 사래도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기근을 만나고 자기 목숨 지키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왕에게 "니가 어찌하여~~~"라는 책망을 듣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이렇게 수치러운, 부끄러운 일을 당합니다.
마치 맛있는 소금이 그 맛을 잃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꼴입니다.
아브함은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수치를 당하고 고개조차 들기에 민망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합니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에, 두려움에 믿음이 사라져버렸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약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애굽왕으로부터 지키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믿음의 시작,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실패했듯이
우리도 살다보면 인생의 갖가지 기근을 만나 실패합니다.
그 때 꼭 기억합시다. 나는 실수하고 나는 실패하고 나는 넘어지고
나는 부족해도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의 제목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실패해도 예배로 돌아오는 것이 믿음이다.
오늘 말씀을 잘 보세요.
그런데 이런 실패자 아브라함의 사건 앞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십시오.
바로 '예배'입니다.
12장 7-8절,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언약을 갱신해 주심에
감사함으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했습니다.
13장 1~4절,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하나님을 절대신뢰하지 못한
믿음의 실패를 한 후, 다시 처음 제단을 쌓고 예배드렸던 곳으로 돌아온 것이 중요합니다.
그 곳에서 13장 4절 무엇을 합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입니다.
실수, 실패, 넘어짐, 부족하고 연약함에서 오는 많은 문제들,
그 모든 것을 예배로 감싸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꼭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곳,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예화)바울과 실라
예화 : 박한상 사건의 뒷 이야기
1994년에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바로 일명 박한상 사건입니다.
당시 20대의 청년이었던 박한상 군이 한약상을 하는 부모를
칼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집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던 사건입니다.
이 청년은 미국에 유학 중이었는데 공부는 안하고 도박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부모에게 돈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일반 신문과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박한상 사건의 슬픈 뒷이야기 있었습니다.
박한상 군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청소년/청년사역으로 유명하신 원 베네딕트 선교사님께서
그 교회의 수련회 강사로 갔었습니다.
당시 박한상 군은 고등부 회장이었고,
그 부모님은 중고등부 부장집사님이었습니다.
수련회에서 박한상 군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100여 명 되는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저는 학생회장인데 술담배를 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부모님께
“제가 지금까지 속을 많이 썩여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신앙생활 잘 하겠습니다.”라고 무릎을 꿇고 약속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원 베네딕트 선교사님은
이 학생의 가정과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겠구나 라고 생각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련회에 은혜받고 돌아온 아들에게
부모님이 했던 첫 마디가 박한상 군의 인생을 어긋나게 만듭니다.
“은혜받은 것도 좋지만 대학 갈 때가 되었으니 공부에만 전념해라”
“교회가 너무 머니까 당분간 본교회가 아닌
가까운 교회에 나가고 고등부에는 그만 나가라”
그러면서 소위 유명하다는 강남의 고등학교로 전학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 있는 가까운 교회의 아침 7시 예배에만 참석하게 했습니다.
백만원짜리 과외를 시키면서 “4년제 대학을 꼭 가야 된다”
그 부모는 백억대 재산가였습니다. 돈으로 대학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많았기 때문에 꼭 믿음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박한상 군은 집 앞에 있는 교회의 7시 예배에서
은혜를 못 받으니 예배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의 삶이 무너지니까 다시 술담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험을 봤지만 4년제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박한상 군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배가 무너진 사람은 어디를 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유학을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매일 도박하고
카드빚을 엄청나게 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도 떠나고 비전도 없고 소망도 없고 예배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부모가 경고를 했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예배가 무너진 사람의 삶이 달라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정신을 못차리고 마약까지 하고
카지노에서 빚을 엄청나게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너는 가능성이 없다.
아예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라”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반성하거나 정신 차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악한 생각을 마음에 품고 너무나 충격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버지 몰래 귀국해서 부모님을 칼로 찌르고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부모는 죽고, 박한상 군은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 많던 재산은 큰 아버지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얼마나 불행해졌습니까?
이후 원 베네딕트 선교사님이 박한상을 만나러 대구 교도소에까지 갔습니다.
원 베네딕트 선교사님이 박한상 군에게 물었습니다.
“너 나 기억하니?
“그럼요 선교사님, 분명히 기억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바로 그 고등학교 2학년 수련회였습니다.”
그는 은혜 받았던 그 때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베네딕트 선교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너 하나님은 믿니?
“예!.......... 그런데 선교사님, 저도 천국 갈수 있을까요? 라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한상 군이 왜 이렇게 무너졌습니까? 왜 이런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을까요?
하나님을 못 만났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박한상 군의 아버지는 돈이면 다 된다는 착각으로
자녀의 예배의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변화를 너무나 소홀히 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를 소중하게 간직하게 더욱 깊은
예배의 삶으로 나아갔어야 되는데 그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박한상 군은 하나님을 만났지만 부모의 반대와 환경에 굴복하여 예배의 삶이 무너졌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끝까지 묵숨 걸고 싸워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배입니다.
이 예배가 무너질 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쌓아가는 모든 것은 함께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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