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사무엘하 6:1~15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본문
사무엘하 6:1~15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다윗은 이 언약궤를 옮겨오는 일에
열심으로 준비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 하지 않고
자기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의 방법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의 방법으로 합니다.
언약궤를 옮길 때는 레위인들이 궤를 매고 옮기라고 했는데
이방나라의 방법인 수레에 싣고 언약궤를 옮깁니다.
온갖 악기를 동원하고 온 이스라엘 족속을 동원하여
축제를 벌이며 하나님의 언약궤를 맞이하려 합니다.
하지만 언약궤를 실은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수레를 끌던 소들이 날뛰었고,
웃사 라는 사람이 손을 들어 언약궤를 붙잡았을 때,
하나님은 웃사를 죽이십니다. 이 사건을 베레스 웃사라고 합니다.
누가 잘못했습니까?
7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언약궤를 옮기면서, 하나님은 웃사가 잘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 잘못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모릅니다.
오히려 방귀뀐 사람이 성낸다고 오히려 다윗이 분을 냅니다.
8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분하여' 다윗이 왜 이럴까요?
우리가 아는 다윗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디윗이 분노를 내면서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베레스 웃사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베레스 웃사'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다고요? 다윗입니다.
'베레스'라는 말은 '치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너무나도 친밀한 관계, 친구같은 하나님을
이렇게 부르는 이런 모습은 우리가 아는 다윗이 아닙니다.
그리고 9절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분을 냈던 다윗은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찬 다윗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낯선 다윗의 이런 모습?
왜 그런지 조금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말씀은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역대상 13장과 함께 봐야 합니다.
역대상 13장에는 다윗이 천부장,백부장,모든 장군들을 다 불러
한가지 일을 의논하고 결정합니다.
바로 언약궤를 옮겨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옮겨와야할 명분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사울왕 때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자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목표가 아닙니까?
다윗의 말에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
뭇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될 수 있는
좋은 분위기입니다. 정말 좋은 목표,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방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고
마치 모든 것을 이뤄낼 것같은 목표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 일을 이루어갈 때, 작은 하나까지 점검해서
한 스텝 한 스텝 정말 하나님의 방법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시는 바른 방법으로 가야합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잘못된 방법이라도 써서 성취하는 세상의 방법이
교회에서 쓰여져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느리더라도, 안되더라도 바른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성도는 느리더라도 바른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세상의 불법을 행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교회에서도 세상의 방식을 가지고 들어와
교회를 세상처럼 움직이려고 할 때, 멈춰야 합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신앙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목표지향, 성공성취, 세상기준에 맞춘 교회의 성공,
목회자의 성공, 성도의 생계의 모든 현장, 가게, 기업
자녀들의 진로와 결혼, 생활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늘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다윗이 왜 수레를 사용했을까요?
한가지, 한가지 추측해볼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의 바로 앞, 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이 위대한 승리를 거둡니다.
블레셋을 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둡니다.
다윗이 마음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높아지면 작은 것들을 소홀히 하기 싶습니다.
큰 승리를 거두고 이제 온 백성의 인정을 받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자는 멋지고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고
표어를 외치면서 언약궤를 옮깁니다.
동원된 인원만 3만명.
거대한 국가행사를 치루면서
한껏 마음이 높아졌을 때,
그는 수레를 사용합니다.
왜 수레를 사용했을까요?
지금이야 수레는 초라해 보이겠지만
다윗 당시의 수레는 최고의 운송수단입니다.
자신의 치세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 수레인데
얼마나 거창하고 화려하게 꾸몄을까요?
언약궤를 옮겼던 수레는
다윗 자신을 드러내고 다윗 자신을 높이는 수단인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왕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인간적 욕심이 드러납니다. 순수한 헌신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야 할 다윗이
오히려 수레를 이용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높아졌을 때,
다윗이 참 잘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묻고 따라가는 작은 일을
놓치고 맙니다.
항상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시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강해졌을때,
그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은 실수에서 배웁니다.
다시 말씀을 살핍니다. "뭐가 잘못 됬느냐?"
그리고 어디로 가지요? 말씀으로 갑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알아 냅니다.
역대상 15장 2절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맬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누가 이렇게 말했습니까? 다윗입니다.
다윗이 석달 동안 언약궤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 것이 분명합니다.
1차 언약궤 운반을 실패하고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2차 언약궤 운반을 하려고 합니다.
이 때, 다윗은 언약궤를 둘 최고의 장소를 궁전에 마련하고
언약궤 운반을 위한 레위인들을 모집하고 준비시킵니다.
이제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드디어 운반해 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내 생활, 내 습관, 내 언어, 내 행동, 내 비전과 목표,
내 가정, 내 자녀, 내 삶의 모든 것들을 다 살펴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들을 바르게 하나하나
방향을 수정하면 됩니다. 하나님께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신앙, 우리의 인생은 조금 느려도 방향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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