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압살롬의 죽음이 말하는 것(사무엘하 18:16-18) 본문
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새벽나눔>
아버지 다윗을 반역해서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
그는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가다가 자기의 자랑거리 중에 하나인
머리털이 상수리 나무에 걸려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요압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잠언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옛 속담에도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 고 했습니다.
죽임을 당한 압살롬, 오늘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말라
압살롬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곧 왕이 될 듯했습니다.
온 백성이 압살롬을 지지하고 압살롬의 편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단지 범죄했던 다윗을 심판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다윗을 심판하기 위해 사용될 때는 잠시 성공한 것 같지만,
이제 다윗의 범죄에 대한 징계가 거의 끝나가자
압살롬의 성공도 곧 종말을 고하고 맙니다.
이는 마치 바벨론과 같은 이방인 나라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는
잠시 형통해서 강대국이 되었다가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가 끝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곧 멸망해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의 성공은 도구로 쓰임받을 때까지.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악인들이 성공하는 것을 볼 때
부러워하거나 낙심하고 분노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악인들의 성공은 반드시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악인들이 천하를 요란하게 할만큼 대단한 성공을 거두며,
한없이 형통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정하신 목적과 기간이 끝나면
가을 낙엽처럼 힘없이 떨어지고 맙니다.
세상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지옥에서 영벌을 받게 됩니다.
압살롬의 죽음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부잣집 아들이 잘못을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아들을 회초리로 교육하려고 합니다.
아들을 훈계하는데 쓰여지는 회초리를 보고는
설마 회초리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회초리 수천개를 버리더라도 아들이 훨씬 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악인들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압살롬의 죽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둘째,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압살롬이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편이며, 압살롬은 악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모든 순간을 살아가면서
항상 영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어느 편에 서있는가?"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있는가? 악한 자들의 편에 서있는가?를
매순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을 죄악가운데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방법입니다.
로마서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사
1:26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으니
1:28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자기가 죄인인줄 모릅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잘못을 모릅니다.
항상 자기가 옳다고 합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합니다.
자기 행동이 옳다고 합니다.
자기 의에 빠져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의롭다는 착각의 늪에 빠져있고
잘못된 생각에 고집을 피웁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자기를 모릅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그래도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싸웁니다.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첫번째 답은 누구의 '이름'을 내는가?입니다.
18절을 보시면 압살롬이 살아있을 때, 자기를 위해서 비석을 하나 세웠습니다.
압살롬에게 아들이 없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어서
자기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자기 이름을 세우고
압살롬의 기념비라 불렀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반면에 압살롬이 반역했던 다윗은 누구의 이름을 위해 싸웠습니까?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사람의 편에 서십니다.
2)열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분명한 답은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했습니다.
압살롬의 삶의 열매를 보십시오.
어찌되었든 그는 형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추격하는 반역자입니다.
아버지의 후궁들, 즉 자신의 어머니 뻘 되는 여자들을 욕보인
체면도 부끄러움도 없는 파렴치한입니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분열케 하며,
많은 사람들을 고통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압살롬의 삶에는 악한 열매가 가득 맺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자기를 희생합니다.
결국 함께 하는 사람이 더 잘되고 더 행복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남을 희생시킵니다.
결국 함께 하는 사람이 아프고 상처받고 불행해 집니다.
공동체를 아프게 하고 관계를 깨뜨리는 모습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에게는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므로 내 삶의 열매를 확인해 보고 하나님의 편에 서도록 삽시다.
압살롬의 죽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세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의 불행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압살롬이 죽는 과정 속에서 그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첫번째는, 전쟁에 패해 도망가다가 머리털이 나무에 걸려 결국 요압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저주를 받은 것이 됩니다.
17절.
죽은 압살롬의 시체 위에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이것 또한 죽은 자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18절.
압살롬의 돌무더기가 저주받은 자의 상징인데
18절에 압살롬의 기념비도 결국 저주의 상징이 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압살롬의 기념비를 지나가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아버지를 반역한 불효자 압살롬을 생각하며
비석을 향해 돌을 던지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난 자,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지
압살롬의 죽음을 통해 결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압살롬의 불행한 결말을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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