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창세기 5:28-32 위로의 아들을 기다리는 믿음 본문
"28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32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도입>
*하영이 이름 지을 때
전에 말씀드린대로 아내가 해산할 때,
두 번다 옆에 있어주지 못한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딸이 태어나기 전에, 태명으로 '소명'이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첫째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친하게 지냈던 전도사님들을 한 방에 불러서,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고 치킨을 쏜 다음,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이름을 하나씩 내놓게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합심해서 기도하고ㅎㅎㅎ 주여~이름을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 때 제비뽑은 이름이 '하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바라며
이름을 정했습니다.
자녀의 이름에는 기대와 소망, 자신의 형편과 인생이 농축되어 있기도 합니다.
야곱의 가정을 보면, 아들들을 경쟁적으로 낳았는데,
그 중에 레아의 예를 들면,
레아는 아들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첫째 아들 르우벤 “하나님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기의 괴로움을 돌보셨다.”
둘째 아들 시므온의 뜻은 “하나님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들으셨다.”이며,
셋째 아들 레위의 뜻은 "지금부터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라"
넷째 아들 유다의 뜻은 “하나님을 찬송한다.”입니다. 이제 남편 필요없다!
아들이 내 소망이다. 내게는 하나님 밖에 없다~~ 슬픈 이름이에요.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간절히 소망하며 아들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라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은 후에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었습니다.
노아의 이름 뜻은 '위로'입니다.
'위로'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29절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라멕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던 일.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평생 수고하여야 땅에서 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된 일.
이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척박한 땅에서 땀흘리며 수고하지만
땅의 소산을 얻기 힘들 때, 아담에게 물었을 겁니다.
도대체 왜 이리 사는게 힘듭니까? 힘들어 죽겠네. 배고파 죽겠네
그 때마다 아담은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죄를 지었고
나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아서 이렇게 힘들게 수고해야 먹고 살수 있게 된거야!
이 이야기를 하는 아담을 사람들은 얼마나 손가락질하고 원망했고,
하나님을 향해서도 얼마나 불평했을까요?
불순종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죄의 결과를 보고 있었으면
회개하고 모두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며 살아야 될텐데
이상하게도 죄의 결과를 보면서 사람들은 더욱 악해지고
더욱 죄를 쌓아가기만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죄가 세상 가운데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는
비참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었음을 한탄하실 정도,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그런데 라멕은 에덴 동산의 아담의 범죄와
죄의 비참한 결과를 보면서,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에
자신 역시 '수고로이 일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혹시 지금 자기가 낳은 아들이 고생으로 점철된 인생으로부터
'안식'을 줄 수 있는 위로의 아들이 아닐까?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위로의 아들?
에덴 동산에서 죄에 대한 심판을 당했지만
심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시고"
바로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고통의 시작, 죄의 시작이었던
뱀의 머리, 사단의 머리를 밟아이겨 승리하고 사람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복음을 라멕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라멕이 가지고 있었던 이 소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메시야'소망입니다. 따라하세요. '메시야'
지난 주일 예수님께서 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구원자라는 말과 같은 말이 '메시야'입니다.
라멕은 소망했습니다.
노아가 태어났을 때 어쩌면 자기 아들이
'수고와 고통'의 저주로부터 자신과 모든 사람들을 '위로'해 줄
메시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면 그런 위로자가 속히 오기를 기다리며
여자의 후손 '위로의 아들'이 이 힘든 세상의 수고에서 위로와 안식을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았습니다.
라멕의 소망은 어느 정도 맞는데 했지만 결국 노아가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라멕의 아들 노아는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으며
홍수 심판 가운데서 살아났지만 그가 세상을 구원하고 죄의 고통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위로하고 안식과 쉼을 줄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이 메시야 소망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되었으며
구약이 끝나고 400년의 긴 침묵시대가 끝나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참된 여자의 후손, 저주받은 땅에서 고통 중에 신음하며
힘든 날들을 보내던 사람들에게 참 메시야, 참된 위로자이신
에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진정한 위로의 아들,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렸던 위로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좋은 교회,
거제호산나교회를 만나면 신앙의 방황이 끝납니다.
미국의 어느한인교회 집사님이
짬짬이 이마을 저마을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곤했습니다.
어느날 고급 주택가에 궁궐같은 집 앞을 지나고있었습니다.
문패에는 외국인 이름이 선명하게 씌여져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그 집 벨을 누르도록 요청하셨습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에서 동양인 인것을 확인하고는 "꺼져"하고
외칠것만 같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벨을 눌렀습니다
한번누르고,두번누르고,세번눌렀지만 아무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돌려 몇걸음가다가 "아니다 한번 더 눌러야지"
하는 마음에 네번째 벨을 눌렀습니다
그때 한 영감님이 고개를 내밀며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고물었습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나면끝이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납니다,,,,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전도지 한장을 건네주고왔습니다...
다음날,,,전화가 왔습니다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벨을 누르던 그 시간에 나는 자살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대들보에 목을 매달기 위해 노끈을 준비하고 있는데....벨이울렸습니다
세번째울릴때까지 망설이고있었지요..
그리고 벨소리가 그쳐 다시목을 매달려하는데 네번째 벨이울렸습니다"
노인은 덧붙여서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를 만나십시오 인생의 방황은 예수를 만나면 끝이 난다는 당신의 말에
큰 충격을 받게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예수님을 만나 새힘을 얻고 새인생을 출발하고싶습니다
다음세대 여름사역을 위한 관심데이입니다.
경주동부교회 전도사 시절이었습니다.
중고등부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할머니 권사님 세 분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전도사님~~~중고등부 수련회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있을까요?"
권사님들~~~내일 저녁이 마지막 밤입니다.
권사님들~기도가 필요합니다. 저녁 집회 하는그 시간에 오셔서
유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제가 그렇게 부탁하자 권사님들 6명이 그날 저녁부터
이불을 싸들고 교회에서 주무실 준비를 하고 오시더니
철야기도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배시간마다 말씀시간마다
기도회 시간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이 일어났으며
중고등부 청소년들~~눈물 범벅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오랜 시간이 오래 흘러 부산에서 사역할 때,
유초등부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할 때였습니다.
역시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목사님~여름성경학교하는데
우리가 할 일이 있겠습니까? 나이들어서 힘도 없고 도움이 안되서..."
갑자기 옛날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권사님~집사님~ 내일 저녁에 저녁집회하는 그 시간에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역시 짐을 싸들고 오셔서 교회 유아실에서 주무시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역시나 였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 속에 아이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예수님 예수님~~~예수님 죄송해요.
예수님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 사랑해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목이 터져라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서 변하기 시작하는데,
기도하러 오신 권사님, 집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더 놀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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