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누가복음 1:5~13 나는 포기했으나 하나님은 진행중입니다. 본문
나는 (기도를) 포기했으나 하나님의 (응답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등장인물 소개>
*본문 5절을 보면 한 부부가 등장합니다.
*남편의 이름은 사가랴요, 제사장입니다.
아내는 엘리사벳이고 아론지파의 자손입니다.
둘 다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이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는지 알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도 의인이라고 소문이 난 부부였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큰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면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고 했습니다.
<자식없는 자의 고통>
당시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메시야가 자기 가문에서
탄생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식이 없다는 것을 큰 수치로 간주했었습니다.
장래에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시편 127편에 나오는 것처럼
자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형벌로 받아들이는 풍조가 만연했었습니다.
심지어 레위기 20:21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형제의 아내를 취하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이 무자하리라"
생활이 문란한 자는 자식이 없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두 사람은 제사장 가문입니다.
영적지도자가 자식이 없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부부의 고통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가시나요?
<가장 큰 고통>
그러나 자식이 없다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약5:16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런데 웬일인지 의인 스가랴 부부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영적 지도자이며 백성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백성들 앞에서 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움추려 들었을 것입니다.
만약 백성들 앞에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면
백성들이 "당신부터 응답받아 보시지,
그러면 우리도 기도할 테니."라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하면
"당신부터 복 받아보시지, 자녀도 없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복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백성들에게 가르칠 게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부부간에 위기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쫓겨날 수도 있었고, 스가랴는 다른 여자를 얻어
아이를 가지려는 인간적인 방법도 동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2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의인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그런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욥은 뜻하지 않은 고난으로
자식과 모든 소유와 건강을 잃어 버렸지만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더 깊은 신앙을 갖게 됩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는 수모를 당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기민족 이스라엘을 기근에서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음으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은 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또 한나는 자식이 없는 설움 때문에 울며 기도했을 때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얻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은 질병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했으나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크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결국 어떠한 복을 누리게 됩니까?
위대한 선지자 세례요한을 얻게 되고,
그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큰 사역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과 고통이 어떠한 것이든
결국 거기에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성도의 아무리 연약한 기도라도 들으십니다.
13절을 보시면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하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여기에서 '간구함이 들린지라'라는 말은
부부가 한두 번 기도한 게 아니라
여러 번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 부부는 신혼 초부터 거의 평생을 자식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기도했겠습니까? '수태불가'라는 판정이 날 때까지 기도했을 것입니다.
수태불가라는 판정이 나왔을 때
그들은 기도를 멈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기능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18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이 사가랴의 말 속에서 이제는 아이 갖기를 포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3절 말씀을 다시 보면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사가랴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다가 포기하고 잊어먹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천사를 보내어 "네 기도를 들었다.
이제 응답하리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태어날 아들 이름까지 ‘요한’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요한'이라는 말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절을 보시면,
아들 요한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말에 사가랴가
정작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그는 상황에 압도되어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는 했지만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낙심치 않고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눅18: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의외의 교훈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가 믿고 기다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응답도 없어지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이라면 실제로
하나님의 응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온전히 끝까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경우>
사가랴와 천사와의 대화에서 가장 감동이 되는 부분은 20절입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후반부를 보라, 뭐라고 했습니까?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사라랴가 믿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적절한 때에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에 의해서 제한 당하시는 분" 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일은 중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좋은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깨알만한 믿음도 받으셔서
산을 옮기도록 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불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래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니까
기도안해도 하나님이 아시겠지? 이게 아닙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고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이러한 축복과 응답을 받게 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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