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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야고보서1:1~4 참성도 본문

신약/야고보서

야고보서1:1~4 참성도

행복으로초대 2023. 8. 19. 17:26

야고보서1:1~4 참성도

 

사도 바울이 외쳤던 교리가 이신칭의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는데, 

사도 바울이 지나가고 나면, 어떤 사람이 와서

"야~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믿는 것도 중요한데,

거기에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 그러면 구원 못받아~"

자꾸만 이렇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 주제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가? 아니면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이 때, 치열한 논쟁 끝에,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다!

땅땅땅. 이렇게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 그래, 그렇구나~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공로로 구원을 받았으면

구원은 취소될 수도 없고 영원한 것이네. 내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물릴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고 견고하니까~~~~

그러면 뭐하러 저렇게 열심히 사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좀 적당히 살아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면

뭐 그까이꺼 대충대충, 설렁설렁 살다가 

천국만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

뭐하러 저렇게 죽기살기로 믿는가? 

나는 예수 믿는다! 내가 예수 믿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교회를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행위가 아무 필요없다. 

 

지금도 이런 잘못된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좀 적당히 하다가 천국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값싼 구원, 값싼 은혜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불균형 현상에 대해 야고보가 나섰습니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예수님께서우리에게 주신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의 실체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참 성도는 어떤 사람이며,

참 성도는 어떻게 하는가?
참 성도 증명서! 

야고보서에 나오는 하나하나 과제들이 있는데,

이 과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다보면 참된 성도의 모습을 알게됩니다.

 

참 성도가 만나게 되는 과제 - 첫번째는 '여러가지 시험을 만날 때'입니다.

참 성도라면 시험이 올 때 이렇게 합니다. 

참 성도의 진위여부를 가립니다.

참 성도인지 아닌지 우리가 가려낼 수 없지만,

참 성도라면 시험이 올 때 이런 모습을 보이니까 

그래서 여러분들도 시험이 올 때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하고 있으면 '참성도'라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이 말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이라는 말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예수 믿으면 시험이 옵니까? 안 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시험이 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 시험 끝.

예수님을 믿으면 내게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 끝.

그래서 예수만 믿으면 복받고 예수만 믿으면

이 땅에서 질병도 없고 부자도 되고 사업도 잘 되고

만사형통한다고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 믿었는데 왜 이런 안 좋은 일들이 내게 닥치지?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 가지 시험이 옵니다. 

한가지 시험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여러가지 시험이 온다고 합니다. 

참 성도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여러 가지 시험이 옵니다.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까닭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경건하게 살 수록 더 많은 핍박과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디모데후서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시험이 온다. 

예수를 믿으면 여러 가지 시험이 옵니다. 

그러면 그 때,

"아이고 예수를 믿었더니만 오히려 여러 가지 시험이 

온다고 하네. 안되겠다~" 도망치면 참 성도일까요 아닐까요?

여러가지 시험이 온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더이상 시험이,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올 때,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은혜를 주신다. 할렐루야~ 그래서 시험은 오되 

그 시험에 대해서 내가 무너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도록

아니 설령 쓰러진다 하더라도 내게 오셔서 내 손을 붙들어 

나의 손에 힘을 주고 나의 발에 힘을 주고 내가 일어서도록 

세워주셔서 붙들어 주시는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믿고 여러가지 시험이 온다 할지라도 예수로 이길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붙들고 있으니까 나는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어 갑시다. 

 

그리고 참 성도라면 또 이렇게 합니다.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면 "기쁘게 여깁니다"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왜 기쁘게 여겨야 할까요? 

시험이 오는게 좋습니까? 될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게 시험 아닌가요?

시험이 어렵죠? 그런데 시험을 기쁘게 여길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를 따라하세요. "시험에는 유익이 있습니다."(시험에는 유익이 있습니다)

 

시험을 치면 힘들죠. 어렵죠. 될수 있으면 시험을 안치면 좋겠죠?

여기 있는 유초등부 아이들에게 "야~너희들 매일마다 시험칠래?"하면

뭐라고 할까요? (이서준 두 손 X 고개 절래절래. 격렬하게 두 손 X)

 

그런데 시험을 치면 유익이 분명히 있습니다. 

첫번째 유익. 나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시험을 치면 아~내가 초등학교 수준이구나. 중학교 수준이구나 

고등학교 대학교 수준이구나 알게 됩니다. 

내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수준을 알게 됩니다.

 

두번째 유익.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준을 알게 되면서 그 다음 성장을 하게 됩니다. 

마치 나무가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나면 나이테가 하나 더 늘어나듯이

시험을 치고 나면 한단계 더 성장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4절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네, 이것이 성장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시험이 단순히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쓰러뜨리고 나를 파괴하는 시험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나를 한단계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한단계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그 시험을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하나님의 좋은 뜻이 있는 시험입니다. 

시험을 잘 치면 한 단계 더 올라간다. 성장한다. 

좋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시험이 올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아이~하나님, 또 제게 무슨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런 시험을 주십니까?"

이런 생각으로 기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 이번에는 어떤 좋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시험이 힘들지만, 이번 시험 잘 치루겠습니다. 

그런 유익이 있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기쁘게 여긴다고 할 때는

시험의 괴로움이나 시험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시험의 유익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한 가지 시험도 아니고 여러 가지 시험이 온다는 말은

한 가지 유익도 아니고 여러 가지 유익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참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면 합격.

 

기쁘게 여기하면 웃는 것일까요? 우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많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희락의 영이 임해서 예수 믿으면 자꾸 밝아지고

미소가 많아지고 웃음이 많아지고, 

예수 믿으면 별거 아닌데 자꾸 웃어요. 

분명히 안 좋은 일인 것 같은데, 자꾸 웃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정신 나간 것 같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분명히 어렵거든요.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생활형편이나 사정이 어려워요. 

그래서 분명히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저 사람이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계속 감사합니다~

만나면 즐겁고 기뻐하고 그래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예수님께서 도와주심을 계속 경험하다보니

자꾸 웃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우리에게는 약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약함이 있느냐하면

힘들 때에 웃어야 합니다. 그래 기뻐하자 즐거워하자!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우리가 그 힘들고 어려운 시험이 계~~~~~속 되면 

그 때가 진짜 힘듭니다. 

참깐 힘들고 잠깐 어려울 때야 웃을 수 있어요.

그런데 고난이 고통이 오랫동안 계~~~~속 되면,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날마다 날마다 계속 되면 그게 힘든 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래도 기뻐해야지"라고 하시기 보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3절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너희 믿음의 시련이' 라고 합니다. 

2절에서는 시험이라는 말을 씁니다. 

3절에서는 시련이라는 말을 씁니다. 

시험은 잠깐 치는 것이지만, 시련을 계속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련이 우리에게 계속 다가올 때, 

오랫동안 계속 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련이라는 말 앞에 어떤 말이 붙어 있습니까?

믿음의 시련이죠. 믿음의 시련.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꾸~욱 참고 있으라. 너 인내력 한번 테스트 해보자!" 이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건, 사고, 질병, 가난, 고통, 괴로움, 슬픔 등의 시련이 많죠?

시험이 이런 모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참 성도는 이것을 시련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믿음의 시련으로 보는 관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내 삶에 닥치는 시련을 빨갛게 달구어진 용광로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용광로 속에 여러분의 믿음을 넣어보는 겁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넣었을 때, 믿음이 녹겠죠?

그 믿음이 녹아서 무엇인가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인내입니다. 

무조건 꾹 참고 견뎌라!가 아니라 온갖 종류의 여러 가지 시험으로 

내게 많은 시련이 올 때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이 무너지고 힘들 때

그 때 그 시련 속에 나의 믿음을 넣고 그것이 녹고 녹아 무엇이 된다구요?

인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 집니다. 

그 인내를 어떻게 하라고 하면,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4절에 처음에 나오는 '온전히'라는 말과 '온전하게'라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용광로에서 믿음을 넣고 인내가 나온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대장장이가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어해요. 

그래서 생각하다가 "그래~세상에서 가장 강한 칼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강한 칼을 만들기 위해 용광로를 벌겋게 해놓고 쇠를 집어넣고

용광로에서 나온 벌겋게 달구어진 쇠를 탕탕탕 두드리면서 모양을 만들고

다시 차가운 물에 푸욱 집어넣으면 치~~~~~~~익. 

그럼 다시 꺼내서 벌겋게 달구고 또다시 탕탕탕 두드리고. 

이것이 온전히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내가 나왔어요. 

온갖 종류의 시련에 내 믿음을 넣어니까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을 주셨는데, 인내라는 선물입니다.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견디자. 이기자. 

내가 믿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잖아.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앞에 나가 기도할께요.

믿음으로 어떻게 하든 살아볼께요. 그런 믿음으로 인내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히 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강한 칼. 그 칼이 온전한 칼입니다. 

그 칼은 수천번, 수만번, 수억번을 부딪쳐도 끄떡없는

전쟁에서 이기는 칼, 가장 강한 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이 오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지 말고,

믿음의 시련이 되도록 하라! 

가난이라는 시련에 믿음을 더해서 용광로에 넣고 

하나님께서 탕탕탕 두드리시고 치~~익 식히고 다시 두드리고 

식히고 이런 온전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 겪고 있는

가난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강한 칼이 되어라고 하십니다.

질병이라는 시련에 믿음을 더하고 

고통이라는 시련에 믿음을 더하고

슬픔이라는 시련에 믿음을 더해서 온전한 강한 칼을 만들어 줄테니

시련을 이겨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세요.

 

그리고 난후, 용광로에서 만들어진 인내의 목적이 있습니다. 

4절 말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께서 만들기 원하시는 것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온전한 사람입니다. 구비된 사람, 준비된 사람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당하거든'으로 시작된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험에 핵핵 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용광로에 들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나오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시험을 잘 이겨내는 사람, 그 사람이 참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