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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역대상7:22~29 위로자 예수 본문

구약/역대상

역대상7:22~29 위로자 예수

행복으로초대 2023. 9. 1. 00:06

역대상7:21~22 위로자 예수

 

지난 시간에는 에브라임의 두 아들 

에셀과 엘르앗이 가드 사람들의 짐승을 빼앗으려다

죽임을 당한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에브라임은 큰 슬픔에 빠져있었는데

그의 형제들의 와서 에브라임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에브라임을 위로한 형제들은

므낫세와 다른 야곱의 아들들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다른 형제들의 위로는 에브라임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어주었을 겁니다. 

 

사실, 형제가 슬픔을 당하면 위로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마땅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하지만 가족파괴가 점점 심해지는 시대를 살다보니

부모나 형제 친척들에게 향한 사랑과 관심, 애정과 연합이

무엇보다 더욱 귀한 가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 누구보다 

자기 가족을 잘 돌아보고 서로를 더욱 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가족과 형제를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잠언에 보면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잠언17:17)고 했습니다. 

형제란 남보다 더욱 사랑하고 위급할 때 서로를 위하고 도울 줄 알고

하나됨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에브라임이 두 아들의 죽음으로 슬퍼할 때, 

형제들이 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에브라임을 위로하는 일에 힘을 다했겠지만 

사실 에브라임의 슬픔을 다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23절입니다. 

"그리고 에브라임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매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집이 재앙을 받았으므로 그의 이름을 브리아라 하였더라"

 

형제들의 위로 속에서 두 아들을 잃은 슬픔이 가라앉고 난 후,

에브라임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이름을 '브리아'라고 지었습니다. 

브리아는 재앙, 불행 이라는 뜻입니다.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는 것은 

에브라임의 슬픔, 아픔이

치유되었다는 뜻일까요? 안됐다는 뜻일까요?

에브라임이 아들들을 잃은 상처가

여전히 마음 속 깊이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합니다. 

자식 잃은 그 아픔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누가 알겠습니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픔과 슬픔에

그 누가 와서 위로해 주어도 위로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처럼 재앙과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도 내 슬픔을 몰라~아무도 내 아픔을 몰라~"

힘들어 다 포기하고 다 내려놓고 삶의 의욕도 없이 

우울증으로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딸을 먼저 보내고 눈물로 눈물로 지새우다

눈물도 다 메말라 버렸는데, 가슴에 묻은 자식을 생각만 해도

얼마나 아른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에브라임처럼 자식을 먼저 보낸 분들이 계시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합니다. 

 

사람의 어떤 위로도 사실 위로가 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픔과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

 

에브라임은 아들이 이름을 브리아, 재앙, 불행이라고 하며

깊은 상처를 그대로 드러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깊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에브라임에게

후시딘! 상처엔 후시딘을 준비하셔서 상처를 고쳐주십니다. 

 

에브라임이 재앙, 불행이라고 부르는 브리아를 통해 

후손들이 태어나는데, 그 후손들 중에 가나안 정복전쟁의 영웅

여호수아가 태어납니다. 

 

비록 에브라임과 같은 슬픔을 당한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위로의 아들을 또 보내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을 대신해서 셋을 보내셨던 것처럼

죽음의 깊은 상처를 싸매주실 하나님께서 하나님만의 선한 방법으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보면 브리아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죄를 지은 인류의 역사도 결국 브리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죄인들은 결국 재앙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며 죄와 허물로 죽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진정한 위로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브리아 속에서 여호수아를 보내주신 하나님! 

진정한 위로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싸매 주시고 위로해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우리의 위로자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