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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부흥의 행렬에 동참합시다-1 (느헤미야 8장 1~12절)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부흥의 행렬에 동참합시다-1 (느헤미야 8장 1~12절)

행복으로초대 2017. 4. 3. 21:55

부흥의 행렬에 동참합시다-1 (느헤미야 8장 1~12절)
 
튼튼한 성벽을 쌓고 성 안에 사람들로 채워 활력을 찾게 하는 것, 7장까지 느헤미야가 중점적으로 한 정책이었고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끝일까요? 튼튼한 성벽 안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하고 활력을 되찾은 예루살렘 성으로 변했지만, 아직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10장까지는 역동적인 성벽 공사와 예루살렘 재건 사업에 잠시 쉼표를 찍는 장입니다. 외형적인 모습을 회복하는 중에 내적인 영적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잠시 멈춰보시오~~! 진짜 중요한 부분을 회복하고 다시 갑시다! 이런 느낌입니다. 그리고 7장에 이어가는 장은 11장입니다. 그럼 진정한 영적부흥에는 어떤 모습들이 있는지 함께 하나씩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부흥에는 성경을 배우는 열심이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수문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합니다. 에스라가 누구입니까? 에스라는 2차 포로귀환의 지도자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의 후손으로 대제사장 집안의 16대손입니다. 학사란 말은 ‘기록하는 사람, 서기관’ 등의 의미입니다. 바벨론 포로시절, 이들은 주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성경학자로 활동했습니다. 성경에 관한 훈련을 받고 가르칠 준비가 된 사람이 학사 에스라였습니다. 이 학사 에스라가 광장에 모인 백성들 앞에서 율법책을 낭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과 갈급함으로 학사 에스라를 찾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배우고자하는 열심이 얼마나 있습니까? 1절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향한 갈급함의 문제입니다. 
한국교회가 초창기 비약적인 부흥을 경험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성경공부였습니다. 1890년 최초의 선교사였던 언더우드는 7명의 학생들로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후 선교사들은 조선에 크고 작은 성경공부 과정을 개설하고 가르쳤습니다. 1909년 북장로교 선교구역 안에만 800개가 넘은 성경공부반이 있었고 성경공부에 참여한 사람수만 5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성경공부반도 기초부터 신학을 준비하는 특별 성경공부까지 다양했습니다. 말씀사경회를 한다면 이불에 먹을 것을 싸들고 와서 1주일 동안 말씀을 배웠습니다. 이런 말씀에 대한 열심이 한국 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항상 갈급해했고 성경을 배울 수 있다면 아무리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교회의 부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습이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열심입니다. 성경을 배우려는 열심을 내십시오
 
부흥에는 모든 일의 시작이 말씀입니다. 
다음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절에는 절기가 나옵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입니다. 이날은 나팔절이라 불려지는 절기입니다, 나팔절은 히브리달력으로 우리의 ‘정월 초하루’입니다.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첫 날입니다. 즉 한해를 시작하는 첫날 온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말씀 축제를 열었습니다. 시작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시작하십시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때,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모든 일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십시오. 그러고 보면 새벽기도회는 참 좋은 시간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새로운 일을 해야 하거나 계획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의 시작을 말씀으로 시작하십시오.   
 
부흥에는 불꽃튀는 열심이 있습니다. 
다음 3절을 보면 시간이 나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자그마치 6시간입니다. 에스라도 대단합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장장 6시간의 낭독입니다. 에스라의 열정도 대단합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6시간 동안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에 귀를 기울이고 에스라가 낭독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백성들도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고 몸을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책을 펼 때는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을 표했습니다. 6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에스라는 한마디라도 더 들려주고자, 그리고 백성들은 한마디라도 더 들을려고 합니다. 에스라의 열심과 백성들의 열심이 불꽃 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부흥의 모습입니다. 설교 들을 때, 여러분의 자세가 어떤지 점검해 보십시오. 영적침체는 한 순간에 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그래서 좀 누워서 볼까 해서 엎드렸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책을 봅니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듭니다. 본문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설교들을 때, 나의 자세를 바르게 합시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말씀을 받는 자의 마음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고 가르치는 자는 열정을 다해 말씀을 전하는 모습. 우리 거제 호산나교회에 이런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부흥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에스라를 강사로 초빙해서 열린 부흥회의 모습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에스라가 강대상에 서있고 좌우에 13명의 사람들이 서있습니다.(4절) 그리고 백성들 사이사이에는 명단이 공개된 대표적인 13명을 포함한 레위인들이 서있습니다. (7절) 에스라 좌우에 서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반면 백성들 사이에 서있는 레위인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해석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7절에 보시면 "백성이 제자리에 서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또 8절에도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모두 다 동원된 것으로 보입니다. 몇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헬라지역에서의 생활로 인해 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된 율법책을 에스라가 낭독하면 레위인들은 그것을 헬라어로 통역해 백성들에게 낭독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낭독한 율법책을 단순히 앵무새처럼 따라한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자세히 풀어서 해석해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레위인들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잘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았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납니까?(9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웁니다. 메마랐던 영혼, 쩍쩍 갈라지는 가뭄의 땅과 같았던 백성들의 마음에 말씀의 단비가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말씀이 백성들을 살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자들이 말씀을 듣자 곧 생기를 얻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저의 현재 신앙상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말씀을 들으면서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니면 말씀 때문에 설래고 가슴 뛰고 기쁘고 행복했고 힘이 나고 정말 말씀이 꿀처럼 달았던 때가 언제였던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영혼을, 나의 마음을 찔렀던 경험이 언제였던가?  이런 경험들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험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백성들이 흘렸던 눈물을 생각해 보면 회개의 눈물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을 벗하며 살았더 지난날의 모습을 뼈저리게 회개하는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나라를 잃고 오랜 포로생활의 수지를 겪었음을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감사의 눈물도 있습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아와 성벽을 재건하고 피폐해진 삶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대해 감사하는 눈물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옛날처럼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심의 눈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눈물을 흘리십니까? 부흥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면 반응이 일어납니다. 마치 화학반응하듯이 말씀을 만나면 불꽃이 튀고 눈물이 쏟아지고 기쁨이 넘치고 힘이 생깁니다. 우리의 눈에 눈물이 메말랐다면 기도합시다. 주여! 눈물을 주시옵소서. 

부흥에는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 울자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인들이 백성들을 달랩니다. 그리고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합니다.(9절) 여호와의 성일은 나팔절입니다. 정월 초하루, 희생제물 위에 나팔을 크게 불며 모두가 즐거워하는 날이니까 기쁨의 날인데 울지 말자. 오히려 살진 것을 먹고 단것을 마시고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누어 주고 다 함께 즐거워하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정말 멋뜨러진 말을 합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10절하) 할렐루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기쁨을 누릴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힘으로 나의 의지로 주어지는 기쁨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말씀을 통해 변화된 사람은 말씀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게 되니 세상의 어떤 일이 닥쳐와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바로 이런 영적 삶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우리의 얼굴에 신경질, 독기, 어둠이 빠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얼굴로 바뀝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오늘 하루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으로 힘을 삼으십시오. 우리 안의 모든 슬픔이 하나님의 기쁨으로 바뀌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