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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주님 부르실 때, 손을 높이 듭시다. (느헤미야7장5절~73절, 11장 1~2절)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주님 부르실 때, 손을 높이 듭시다. (느헤미야7장5절~73절, 11장 1~2절)

행복으로초대 2017. 3. 30. 05:41

주님 부르실 때, 손을 높이 듭시다. (느헤미야7장5절~73절, 11장 1~2절)

 

성벽재건공사를 마친 느헤미야에게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예루살렘 성은 광대한데 그 성에 사는 주민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문제는 성벽만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성벽 때문에 더이상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던 예루살렘 성의 주민들이 성을 버리고 떠나 흩어져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성은 버려졌고 집들은 폐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던 주민들이 있었지만 그 수는 택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있죠. 꼭 한 밤중에 홀로 다니면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하며 서는 느낌이 드는 버려진 도시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52일 만에 다시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에 사는 사람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고민이었습니다. 성벽은 다시 쌓았지만 어떻게하면 황폐해진 이 성에 활력을 일으킬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성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하게 만들수 있을까?  

 

그때 하나님께서 느헤미먀의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이 말은 '인.구.조.사'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느헤미야가 얻은 것이 있습니다. 5절에 보시면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즉 1차 포로귀환시의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그 내용이 6절부터 72절까지 입니다.  (이 계보는 에스라2장에 나오는 계보와 같습니다. 숫자나 사람이 약간 차이가 나지만 같은 계보입니다. 왜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서 이 시간에 다 언급하지는 못합니다. 단, 너무 궁금하신 분들은 제게 찾아오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명단을 기초로 인구조사를 합니다. 인구조사의 목적은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을 이주시켜 살도록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1차 포로귀환의 시기와 느헤미야의 시기는 약 100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1차 포로에서 귀환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황페해진 예루살렘을 버리고 73절에 보듯이 유대 각 지역으로 흩어져 자기들의 성읍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성을 떠나 흩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아 예루살렘 성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흩어졌던 유대인들 중에서 누군가는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에 이주해 와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 이주정책을 실행하는 내용이 11장 1,2절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에 거주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제비뽑아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서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한 사람들을 위해 백성들은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다함께 찬송가 323장 찬양하겠습니다. 가사를 잘 생각하면서 믿음의 고백으로 찬양합시다.

 

부름 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을리까 죽음 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 없이 드리리다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왜 이 찬양을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이미 안정된 삶의 터전을 떠나 황폐해진 예루살렘,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위험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살아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편안하게 자신이 살던 곳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며 살고 싶어합니다. 당연한 사람의 마음이죠. 하지만 그런 삶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도 아닙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그런 삶은 우리의 지음받은 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이 우리에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로 믿음생활 한다고 하지만 나를 위한 삶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 삶이냐? 라고 했을 때 쉽게 결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라면 안정된 삶을 버리고 아골 골짝 빈들에도 기꺼이 가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교회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부름받은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부름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어떴습니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도 부름받을 때, 안정적인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떠난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복이 될찌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떴습니까?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들의 아버지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안정적인 물고기잡은 삶에서 고난과 순교가 기다리는 사람낚는 제자의 삶으로 떠났습니다. 세리 마태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재물, 즉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자리, 안정적인 삶 뿐만 아니라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는 세리의 삶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이렇게 부르심에 응답하고 헌신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비록 황폐한 땅에서의 불편함, 적의 공격으로부터 위험 , 뻔한 노동의 고단함이 예상되지만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거제 호산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교회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속한 세상에 머무는 삶에 그치지 마시고 교회를 향한 헌신의 삶으로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교회가 무엇이냐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서 교회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가 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정의할 수 있는 교회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죠. 교회에는 사람들이 채워져야 합니다. 텅빈 예루살렘 성을 채워서 성의 재건을 위해 수고할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 거제 호산나교회가 더욱 활기차게 활력있게 주님 주신 사명을 행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등록교인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주를 위해 헌신된 한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나를 위한 삶에서 교회를 위한 삶으로 나서 주십시오.

여러분의 안정된 시간을 깨뜨려서 주님을 위한 예배를 위한 시간을 내 주십시오. 교회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내 주십시오. 봉사의 시간을  내 주십시오. 설교할 때 돈얘기 안하는데 이해하고 들어주십시오. 여러분의 안정된 물질을 깨뜨려 교회의 사역을 위해 지원해 주십시오. 작게는 지금 하고 있는 친구사이 전도축제에 VIP에게 식사대접하는 것, 전도하시는 분들을 지원해 주는 것, VIP에게 전달할 선물을 사서 지원해 주는 것 모두 물질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아이들이 예배 출석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상품권을 주는 선생님도 계신 걸로 압니다. 거제 호산나교회를 세우는 과정에도 많은 물질을 깨뜨려 주신 분이 계신 걸로 압니다. 선교사님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선교비를 후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더 하나님의 일을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금 더 봉사해 주십시오. 교회가 해야 할 사역의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교회를 위해 수고의 땀을 흘려주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서게 됩니다. 

 

주님 부르실 때 손을 듭시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나를 써주소서. 아골골짝 빈들에도 주님 부르시면 손을 번쩍 듭시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