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태복음5:1-9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10-화평하게 하는 사람 본문
마태복음5:1-9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10-화평하게 하는 사람
<도입: 마틴루터의 마지막 사역>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입니다.
500여년전 로마카톨릭교회의 부패와 잘못된 신앙에 대항해
오직 믿음과 복음을 외치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루터를 생각하면 종교개혁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의 마지막 죽을 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루터는 자기의 고향 친구를 위한 일을 하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멘스필드라고 하는 친구 백작의 가정에서
재산을 둘러싼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서 권면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루터의 나이 예순 세 살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예순 셋이면 한창이지만
당시에는 자기 한몸 움직이기도 힘든 나이입니다.
하지만 싸움을 화해시키려 고향까지 먼 길을 떠나
형제를 만나 밤새도록 서로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 권면했습니다.
결국은 루터의 말을 듣고 형제간에 화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저녁 더 자고 이튿날 떠날 계획으로 잠들었다가
그날 저녁 병들어 그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시키려고 많은 애를 썼을 뿐더러
거기에서 자기의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위대한 종교개혁가이기 전에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석위에 세운 하나님 나라, 계속해서 팔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팔복의 사람은 화평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을 보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말입니다.
'~~답다'는 말 우리 말이 있죠?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답네'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았다는
칭찬이 됩니다. 세상에 신앙의 삶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답다~"라는 말을 합니까?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하게 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답다'라는 칭찬을 합니다.
여기서 화평하게 하는 사람의 자세는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수동적으로 마냥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난 싸움은 싫어해.
난 평화가 좋아. 난 복잡한 싸움에 끼어들기 싫어.
난 평화주의자거든 이것이 아닙니다.
팔복에서 말하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영주 시민교회 성도 여러분~
화평을 만드는 사람들이 됩시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화평하게 하는 자의 최고의 모델은 역시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분 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5)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실 때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로마서 5장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절: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연약한 사람을 위해, 나에게 범죄를 저지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치 않은 영적으로 연약한 자였고,
우리는 죄로 가득찬, 죄 밖에 모르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끊어졌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 즉 하나님과는 함께 할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였던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 중요한 작전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통신병이 이 작전명령을 전해야 하는데,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지고 적의 대포공격에
통신을 위한 전선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끊어진 전선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끊어진 부분을 연결할 방법이 없었고, 시간은 너무 급합니다.
그래서 통신병은 끊어진 양쪽의 전선을 자기의 양손으로 잡았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작전명령을 전달했고,
통신병은 결국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한 손으로는 우리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잡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연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며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
원수 사이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로 화목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일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죄인된 사람 사이에 가로막혔던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몸이 찢어지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채찍에 살이 찢어지고 못과 창에 살이 찢어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한 한 가족이 되기 위해 자신을 찢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예수님의 몸이 찢어지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짜 성도네~~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네~~진짜 하나님의 자녀구나~~~라는
인정을 받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참 구원자,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은
능력과 기적을 베푸신 것으로 증명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것은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유일하신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찢을 때,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명된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예수님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하나님이 하나님이실 때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올해로 사역한지 25년째입니다.
하나님께서 훈련도 참 빡세게 시키셨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역지를 옮길 때마다 친구들이 저에게 이럽니다.
"창태야 ~ 넌 왜 꼭 그렇게 힘든 교회만 찾아가냐?"
지나왔던 교회들을 보니 교회건축하다가 온갖 비리와 부정으로
망할 뻔 했는데, 성도들이 깡패들과 싸우고 겨우겨우 지켜낸
전투력 넘치는 교회.
교회가 반쪽이 나서 성도들 반이 떠나갔다가 겨우 정신차리고
회복하기 시작하는 교회.
어떤 교회는 성도들이 어찌나 전투력이 강하던지.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싸우고 부목사끼리 싸우고
부목사와 관리집사가 싸우고 관리집사와 장로.집사가 싸우고
직분자들끼리 편가르고 싸우고.....부목사 임기가 1-2년밖에 안되요.
교회 안에 분열의 영, 다툼의 영, 폭력의 영이 지배하는 것도
모르고 싸우고 다투면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의 영적 상태가 보이는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몰라요. 싸우는 사람들도 몰라요.
교회의 역사를 듣고 결단했습니다.
나는 이 교회에서 싸우지 않는 목사가 되야겠다.
여기저기서 트집을 잡고 싸움을 걸어오는데,
다 버티고 견뎠습니다. 그 때 제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해서, 잘 몰라요. 실수도 잘 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를 정말 아끼시는 분들이 저보고 이런 말씀을 몇번 해주셨습니다.
여기서도 이렇게 따뜻하게 조언해 주신 분이 계세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목사님~너무 죄송하다고 하지 마세요 목사님 권위가 떨어집니다."
참 이상하죠? 거의 같은 말씀을 하세요. 어떤 때는 맞다. 그렇다 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권위는 죄송합니다는 말 한다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사 스스로 목사의 권위를 세우고 높이려고 할 때 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잘못한 것이 있다면 늘 같은 마음입니다.
교회가 평화로울수만 있다면, 나 한 사람 찢어져서
교회에서 싸움이 멈춰질 수만 있다면,
교회가 하나되고 서로 화목할 수만 있다면 좀 찢어져도 됩니다.
그렇게 싸우지 않기로 화평하기로 작정하고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려고 애쓰다보니, 교회에서도 알아주는 싸움닭 집사님이
제 앞에서 울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양반입니다. 목사님은 진짜 목삽니다."
저는 그 말 들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왜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왜 화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왜 감정이 폭발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먼저 죽어 교회가 평안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그 싸움닭 집사님조차도 울면서 인정하게됐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창태야~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으실까요? 그렇게 7년을 버티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영주시민교회와 아름다운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선물로 주시고 담임목회하도록 허락하셨음을 믿습니다.
< OOO권사님과의 일화 >
좀 찢어져도 됩니다.
자신을 찢으신 예수님을 높이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30장 26절 마지막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화평하게 하는 예수님은 자신을 찢어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우리가 화평이 필요한 곳에서 우리를 찢으면 상처가 나겠지만
하나님께서 일곱 배의 영광으로 빛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영주시민교회 성도 여러분!
이웃과 화평한 관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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