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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가복음14:1-11 헌신 vs 배신 본문

신약/마가복음

마가복음14:1-11 헌신 vs 배신

행복으로초대 2024. 3. 18. 21:39

마가복음14:1-11 헌신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

 

헌신과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위한 헌신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위해서는

먼저, 헌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위해서

먼저, 확신이 필요합니다. 

어떤 확신일까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확신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사람들이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시나리오를 철저히 준비해둔겁니다.  

예수님을 배신할 제자도, 거짓증인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칠

어리석은 대중들도 다 준비해 두었습니다. 

조직적으로 움직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배신해서 예수님을 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될 뿐입니다. 

 

우리의 세상 살이, 그 어느 것 하나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대로 됩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둘째.

가치의 싸움에서 이겨라!

 

헌신이란 어떤 일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말인데,

내가 모든 것을 바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즉, 헌신이란 가치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헌신이라면, 

예수님의 가치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예수님보다 더 가치를 크게 두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향한 헌신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 보다 돈에 더 가치를 두었단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나옵니다. 

 

10절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에게 가매

11절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았습니다.

예수님보다 은30에 더 가치를 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았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실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민족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독립을 이루고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계산을 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듣다보니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게다가 돈에 대한 욕심도 있고, 

그래서 그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돈궤를 맡았던 회계담당이었는데, 

돈을 빼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보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욕심이 더 크면

결국 끝까지 헌신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삶의 모든 것이었고,

예수님을 위해 매우 값진 향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여자가 있습니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식사하실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이 화를 내면서 이 비싼 향유를 허비하냐고 여자를 책망합니다. 

그 순간에 향유의 값을 계산합니다. 삼백 데나리온. 

1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까 계산이 되십니까?

10만원을 하루 품삯으로 봅시다. 그러면 3000만원이네요. 

그러면서 오히려 그 향유옥합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얼마나 좋았겠냐며 자신의 의를 나타냅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람이 가룟 유다라고 했습니다. 

탐욕의 사람이요 거짓이요 위선이요 악한 생각이 가득하면서도

말로서 자기 의를 나타내려는 악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비난을 막아섭니다. 

그리고 여자를 칭찬합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자신의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장례식을 준비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곳,

어느 곳이나 이 여자의 한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자가 향유를 부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장례식을 위해 향유를 부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을 위해 향유를 부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삼백데나리온.  

3000만원짜리 향유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예수님은 여자의 마음을 받아 

그것으로 복음의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이 여자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최고의 선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 생활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날 가치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