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요한복음1:14-18 영광3-버리고 섬김이 영광입니다. 본문
버리고 섬김이 영광입니다. (요1:14-18)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하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있는가? 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생활'
말씀을 육신으로 살아내는 '삶'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힌트를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며,
예수님과 사는 것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은 말씀이 내 안에 있어
내 안에 내가 아닌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바로 육신이 되신 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육신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 위에 앉아
세상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죄로 부터, 사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그래서 죄에 대한 형벌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받기 위해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이 믿음의 이유입니다.
그럼 세상에 예수님을 어떻게 믿을까요?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을 보고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면
예수님을 당연히 믿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영광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오늘 말씀 14절을 유심히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인데,
그 조건이 하나 나옵니다.
반드시 '어디'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영광이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우리 가운데'에서 나타납니다.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의 아들께서 육신이 되어서
육신인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실 때, 영광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에는
두 가지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버림'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자리, 삼위하나님의 아름다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희생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픔입니다.
특히, 십자가의 죽음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끊어짐, 단절이 되는 가장 큰 아픔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은
버림, 자기 희생, 아픔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외국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편안하고 안락한 삶, 창창한 앞날과 성공을 버리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미지의 땅 조선을 향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에 왔고,
이 땅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버림과 자기희생, 아픔을 겪으나 이것이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우리 곁에는 사람들이 '영광스럽다'고 하는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영광스럽다 하시는 자리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버림'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선교사님~부름받기 전에는 뭐하셨어요?"
의사였습니다~.
네~의사를 버리고 선교하십니까?
'선교사가 더 좋습니다.‘
부부가 함께 교사생활을 하는 안정적인 생활을 버리고
몽골로 떠나 그곳에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부부를 만났습니다.
선교사님들의 자녀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데,
선교사 자녀들은 모 아니면 도! 라고 합니다.
선교사 자녀들, 목회자 자녀들이
사실 상처가 정말 많은데, 이들을 위한 사역이 절실함을 보고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교사생활을 포기하고 몽골로 떠났던 것입니다.
한번 밖에 보지 못했는데,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합니다.
얼굴에 얼마나 기쁨이 넘치는지?
다 버려도 다 얻은 얼굴에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이 계시는데,
대기업 이사셨는데, 다 버리고 목회를 하세요.
사람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지만 그 길이 좋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자기의 신분과 지위, 명성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던졌습니다.
누구를 닮아서 이럴까요? 예수님 닮아서요.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닮아서 이렇습니다.
이것이 영광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통해 보는 영광은
두번째, '섬김'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섬김을 받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계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섬기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찾아오신 '우리 가운데'
이 말은 '죄 가운데', '죄인들 가운데',
'더럽고 타락한 세상 가운데',
'죄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연약한 사람들 가운데'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
'우는 사람들 가운데'
'웃음과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들 가운데'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우리 가운데'의 오셔서 섬기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 가운데 오신 이유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셨지만
우리를 살리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가 가서 섬기며 살릴 수 있는
'우리 가운데'는 어디일까요?
<사진>
엘리자벳 조안나 셰핑 이라는 여성입니다.
1880년 9월 26일 독일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서
어머니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갔고
미국에서 어머니를 만난 후,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조선의료간호사로 이 땅에 왔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 순회전도와 간호를 했으며
하루 식비가 3원이었는데, 10전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습니다.
걸인들을 데려와 씻기고 옷을 사 입히고,
버려진 아이들14명 정도를 수양아들로 삼아 길렀습니다.
아들을 낳지못해 집에서 쫓겨난 여인과 과부
약 38명을 보살폈습니다.
거적떼기를 덮고 자는 사람에게
자신의 담요 반쪽을 찢어주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여서
살려냈지만 정작 자신은 영양실조에 걸려 22년의 조선생활,
5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으면서도 자신의 시신을 기증했고,
장례식장에는 천여명이 통곡하면서
어머니 어머니~를 외쳤다고 합니다.
그 때 유품이 강냉이 가루2홉, 현금 7전,
반쪽짜리 담요한장이 전부였습니다.
엘리자벳 조안나 셰핑.
이분의 한국 이름은 서서평 선교사님입니다.
서서평 선교사님의 침대 머리맡에는
이 글귀가 있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오늘 나의 섬김으로 누군가 살아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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