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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신명기16:13-22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삶 본문

구약/신명기

신명기16:13-22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삶

행복으로초대 2024. 5. 7. 22:05

신명기16:13-22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삶

오늘 말씀에는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초막절, 재판, 예배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이 말씀 속에서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삶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초막절의 형식, 즉 절기가 있을 때,

그 절기 속에 담긴 진정한 내용은 무엇이며

재판이라는 형식 속에 담긴 진정한 내용

예배라는 형식 속에 담긴 진정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를 약속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초막절(13-17)

초막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농업적인 의미와 역사적인 의미입니다.

농업적인 의미는 가을 추수가 끝난 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의미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광야에서 초막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해주심에 

대해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초막절 기간에는 올리브나무나 야자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초막이나 오두막에서 생활을 합니다. 

이런 의미를 생각하면 이 초막절의 형식에 담긴 내용은 무엇일까요? 

 

첫째, 감사와 헌신 

농사 중에도, 광야 중에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절기가 무엇일까요?

'주일'입니다. 매 주일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힘을 다해 헌신하십시오. 

봉사와 섬김으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십시오. 

17절에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하나남께 헌신하는 것이 초막절의 내용입니다. 

 

둘째. 초막절에 담긴 또다른 의미는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풍성한 농사의 결실에 나 혼자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 결실을 나누면서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함께 즐거움을 나눌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고 손을 내미십시오. 

 

2.재판(18-20)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공의로운 재판을 해야 합니다. 

공의롭지 못한 재판이 무엇일까요?

19절에 재판을 굽게 하는 것입니다. 

이 재판을 굽게 하는 것은 

재판관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외적 조건,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 

신분과 계급이 높은 지 낮은지를 보고 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재판관이 뇌물을 받고 뇌물을 준 사람이 유리하도록 

판정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재판을 굽게 하는 재판장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왜냐하면, 공의로운 재판이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강같이 하수같이 흘러넘치는 진정 복된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3.예배(21-22)

예배의 형식에서 강조되는 내용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우상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 옆에 세워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말이 되나요? 하나님을 섬기는 이 예배 한쪽 편에 불상을 

세워두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이 있었겠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분별하십시오. 하나님만 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섬겼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고, 아세라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도 농사가 잘 되도록 농사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함께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을 섬기게 되는 이유입니다. 

필요가 우상입니다. 분명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나의 필요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보다 우선이 되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믿는다고 하지만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학생. 

하나님을 분명히 믿는다고 하지만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취준생. 하나님을 분명히 믿는다고 하지만 승진과 돈벌이를 

위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직장인과 장사꾼들.

하나님을 분명히 믿는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질서를 잡으십시오. 그때 진정한 예배가 회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