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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견고한 언약3-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느헤미야 10장 32절~39절)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견고한 언약3-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느헤미야 10장 32절~39절)

행복으로초대 2017. 5. 7. 14:52

 

견고한 언약3-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느헤미야 10장 32절~39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자신들의 공동체 약속을 만들고 그것을 견고한 언약으로 하나님과 맺었다고 했습니다. 그 견고한 언약의 첫번째는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였습니다. 두번째는 안식일과 안식년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오늘은 세번째 견고한 언약을 살펴보겠습니다. 세번째 견고한 언약이 무엇인가 듣고 우리도 함께 하나님과 약속을 단단히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언약이 무엇인지는 39절에 보면 나옵니다. 39절을 보시면 '그리하여'라고 나옵니다. 즉 결론을 맺는 말이죠. 다음에 나오는 말이 앞의 내용의 결론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철저하게 성전을 위한 성전 중심의 삶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의 포로생활 중 버려졌던 성전이었습니다. 포로귀환 후, 여전히 고달픈 생활 가운데 자기 생활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생활해야 할 자기 집은 어떻게 하든지 세웠을 지 모르지만 성전은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서 성전은 엉망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이제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야 할 것을 발견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계속해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이라는 표현입니다. 9번 반복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전을 향한 열심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지침을 정했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합니다. 그 약속은 다음의 3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1)성전사역을 위한 지원을 하겠다.(32~34)  

2)첫 열매를 성전에 바치겠다.(35~37a)

3)십일조를 내겠다(37b-39)

이 3가지 약속을 오늘 우리 교회에 적용해 보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교회를 위해 어떻게 열심을 다해야 할지 알고 순종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교회 사역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원합시다.(32~34) 

성전의 모든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성전에 필요한 것은 성전세와 나무장작이었습니다. 

32절입니다. "또 우리가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세겔은 화폐의 단위입니다. 원래 20세 이상은 성전세로 반 세겔 씩 내도록 율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3세겔을 내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식민지 치하에서 어려운 상황을 반영해 성전세금을 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바쳐진 성전세 1/3세겔은 어떻게 쓰여졌을까요? 33절을 계속해서 보시면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진설병은 성전 성소의 금상 위에 놓여진 열두개의 떡 덩어리를 말합니다. 열두개의 진설병은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의히합니다. 그리고 진설병을 바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진설병은 안식일마다 새 것으로 교체 되었기에 성전세를 통해 이것을 조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성전에서는 제사가 아침 저녁으로 계속됩니다.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는 아침 해뜰 무렵과 저녁 해질 무렵마다 드려졌습니다. 절기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성전을 오고 갑니다. 때문에 제사드리기 위한 성물 등 수많은 물건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수리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을 위해 성전세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의 전을 향한 열심을 회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의 모든 일을 위해 세금을 기꺼이 바치기로 했습니다.

 

34절에는 제사용으로 쓰여질 나무 장작을 바치기로 약속합니다.

모세는 레위기 6장 12~13절에서 "제단 위의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는 많은 제사가 드려집니다. 그 때 제물을 불로 태우기 위해 장작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도 제단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나무가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무를 바치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추측해 보건대 과거 삼림이 울창하여 나무조달이 어렵지 않을 왕정시대에는 굳이 나무를 성전에 바치는 것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 당시의 상황은 달랐을 겁니다. 심각할 정도로 황폐해진 땅 그래서 나무의 공급이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작은 양이 아니라 정말 많은 양의 나무장작이 필요했습니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시기를 정하고 나무를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많은 양의 나무를 성전에 공급하기 위한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전세와 나무를 바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원하여 성전세 내서 성전의 사역을 지원했습니다. 개인의 힘으로 힘들 때는 제비뽑아 종족대로 힘을 모아 나무장작을 공급했습니다. 분명 쉽지 않은 일, 힘든 일이었지만 온 힘을 다해, 온 힘을 모아 성전사역을 지원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역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에 진행되는 모든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또 힘을 모아 사역에 동참합니다.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나태하지 않습니다. 주의 전을 향한 열심으로 자원하여 섬깁니다. 교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감당해야 할 복음의 사역이 막히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도록 자신을 나무 장작처럼 드립니다. 성전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나무를 계속해서 공급하듯이 자신을 활활 태워 하나님께 드립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킵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은 뿔뿔이 나눠진 상태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자석과 같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사역을 위해 자원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성도들이 모입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뜻을 품고 함께 교회의 사역을 활성화시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전 사역을 지원했던 모습이 우리 교회 성도들 모습에도 강하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둘째,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립시다.(35~37a)

성전을 위한 두번째 약속은 처음 난 것을 성전에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35절에는 토지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3장 19절을 근거로 합니다.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출애굽기의 말씀을 통해 첫 열매가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처음 거둔 열매 = 가장 좋은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 의미를 더욱 확실히 하는 구절이 36절입니다.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사람의 장자, 짐승의 첫새끼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장자는 아버지의 기운의 시작입니다. 가문의 혈통을 잇는 계승자입니다. 가족에 대한 지도권을 물려받는 특별한 지위를 누렸습니다. 장자는 아버지를 대리하는 집안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장자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가장 특별한 소유를 넘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태생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출애굽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초태생의 죽음과 관련입니다. 그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구원해 주셨음을 기억하는 신앙고백이 담긴 것이 '초태생'입니다. 초태생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하게 합니다.  결국 초태생은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해 봅시다. 저를 따라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욥기의 고백처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 이런 고백입니다. 장자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과 오버랩이 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를 드리겠다! 가축의 초태생을 드리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심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가장 좋은 것으로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말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강하게 거부하십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재물로 바치는 것들이 저는 것, 병든 것, 흠있는 것들, 훔친 물건들이었습니다.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주겠느냐?" 하나님을 침묵하게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르지 맙시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좋은 것을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됩시다. 여러분이 가진 것 중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여러분의 소중한 자녀들입니까? 그렇다면 가장 소중한 아들 사무엘을 바치는 한나를 따라가십시오. 세상을 따라 자라는 자녀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가 되도록 신앙교육에 자녀들을 바치십시오. 자녀를 예배에 바치십시오. 자녀를 교회 봉사에 바치십시오. 자녀를 전도와 선교에 바치십시오. 자녀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힘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십일조를 드립시다.(37b-39)

백성들이 하나님께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 세번째 약속은 레위인들에게 주어야 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하게 되는 모든 곡식과 나무와 열매와 가축들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으로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7장 30절.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그리고 이런 규례를 따라 바쳐진 십일조는 레위인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따로 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직무에만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이 받는 십일조:민수기 18장 21~24절)

 

여기서 잠깐, 헌금이나 십일조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고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교인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가 낸 헌금으로 교역자들에게 사례를 준다. 그러니 교역자들은 우리가 고용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예전에 어떤 장로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레위기 27장 30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는 여호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바로 십일조를 준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의 형태를 취해 하나님에게 드리게 한 다음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주었습니다. 백성들이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월급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백성들이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고용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이 인간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들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혹시나 여러분들 중에 교역자들에 대한 인식을 여러분이 고용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고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십일조를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결론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잠깐 옆길로 빠졌지만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마음 속으로 "형편에 따라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 든지 "십의 일을 제외한 십의 구는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도 옳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는 이 사람을 꼭 기억하십시오. '두 렙돈을 냈던 과부'를 생각하십시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입니다. 그래서 형편이 좀 좋아지고 여유가 생기면 십일조를 하겠습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편이 좋아져서 십일조를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폐허가 된 고향에 돌아와서 식민지 백성으로 수탈을 당하고 페르시아에 무거운 세금의 짐을 지고 살아가던 백성들입니다. 그런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십일조를 낸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적은 금액이라도 십일조 생활을 시작하십시오.

 

십일조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내서 하나님의 일을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는 십일조를 '온전한 십일조'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교회에서 헌금에 대한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굳이 의도적으로 헌금을 강요하기 위해 설교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하지만 본문의 순서를 따라 가는데 헌금에 대한 본문이 분명히 나오는데 굳이 사람 눈치보면서 띄어 넘어갈 필요가 없죠. 예수님도 과부의 두렙돈을 볼 때.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셨으니까요.

 

헌금, 십일조는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께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바른 헌금생활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신앙 양심에 따라 헌금생활을 하십시오. 감사함으로 헌금생활을 하십시오. 자원함으로 헌금하십시오. 즐거움으로 헌금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성전에 대한 언약을 마무리하면서 39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성전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단은 마음을 성전에 두겠다는 말입니다.

 

성전을 사모합시다.

성전을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고 살며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지난 날을 청산하고 이제 하나님의 전을 중심으로 모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교회사역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드리기 바랍니다. 바른 헌금생활을 회복해서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 갑시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가득한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