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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는 헌신(느헤미야 11장 1~36절)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는 헌신(느헤미야 11장 1~36절)

행복으로초대 2017. 5. 14. 11:42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는 헌신(느헤미야 11장 1~36절)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데 그 소가 새끼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농부는 너무너무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는 송아지 새끼 두 마리를 낳고서 너무 감사한 나머지 당장 자기 부인에게로 달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송아지 새끼가 두 마리야. 주님께서 주셨으니까 하나는 주님께 드립시다.” 그의 아내도 “아멘”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후에 송아지 새끼 한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 죽었습니다. 죽은 송아지를 본 농부는 울상이 되어 방안에 있는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큰일났어. 큰일났다고! 주님께 드릴 송아지가 죽었어. 주께 드릴 송아지가 죽었단 말이야.”

 

 

주님께 결단한 마음들이 상황에 따라 자꾸만 바뀝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헌신은 마음이 아닙니다. 결단이 아닙니다.  '헌신'이라는 단어의 뜻은 "몸을 드린다"입니다. 누구나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는 어렵습니다. 작정하고 결단하기는 쉬워도 작정한 대로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헌신한다고 할 때는 실제적인 몸의 행동을 말합니다. 내 몸이 실제로 그 자리에 있어야 '헌신'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공사가 52일 만에 기적처럼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외형적인 벽은 세워졌지만 그 안에 거주하며 예루살렘 성을 강한 도시로 만들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성벽만 있고 성에 거주하며 성을 지키고 성을 관리하고 공격을 받으며 방어를 할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총 길이가 6Km에 이르는 큰 성으로 소수의 인구만으로 방비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와서 거주할 이주민들을 모집해서 성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랜 타국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고향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은게 정상적인 마음 아닐까요?

 

괜히 위험하고 힘든 예루살렘에 가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예루살렘은 그동안 버려졌던 성입니다. 황무한 성입니다. 성벽은 지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생활하기 힘든 곳입니다. 생활 환경, 시설이 넉넉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루살렘은 주변 이방민족들에게 공격 목표로 지목된 곳입니다. 불안한 국제정세 가운데서 적의 침입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때문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은 누군가가 희생을 각오하고 해야할 일이지만 솔직히 내가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할 백성들을 어떻게 채워졌을까요? 힘들고 위험한 곳이지만 그 예루살렘에 살 사람들이 채워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예루살렘에 와서 살게 되었을까요?

 

 

 

1.백성의 지도자들의 솔선수범

 

1절을 보시면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솔선수범 했습니다. 느헤미야를 지금까지 보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지도자들의 헌신이 빛을 발합니다. 느헤미야를 비롯해 지도자들은 성벽을 재건하는 대공사 가운데서 백성들 앞장서서 백성들을 이끌어 갔던 모습을 자주 볼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할 때 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할 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할 때, 시작의 문을 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을 솔선수범하여 하는 사람들이 '지도자'입니다. 

  또한 지도자는 '마중물'같은 사람입니다. 옛날 지하수를 끌어올릴 때, 펌프질 많이 해보셨죠? 옛날말로 하면 '뽐뿌'... 펌프질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물을 한 바가지 펌프 안에 붓고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이 때 쓰이는 물 한 바가지를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쓰여지는 마중물 한바가지 처럼 지도자들은 전교인이 함께 하는 사역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먼저 자원하고 솔선수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중요직분을 맡은 분들을 중직자라고 부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의 직분을 받은 분들은 기억하십시오. 솔선수범합시다. 구역장, 권찰, 전도회장과 임원의 직분을 맡은 분들은 기억하십시오. 솔선수범합시다. 교육부서의 교사를 맡은 분들은 기억합시다. 솔선수범합시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께서 먼저 앞서 가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앞에 가신 예수님께서 우리보고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자리에 가셨고, 예수님께서 먼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솔선수범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우리가 됩시다.

 

 

2.제비뽑힌 1/10

 

1절을 계속 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할 사람들을 채워갈 때, 인구의 십분의 일을 제비뽑아 거주하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알기는 하지만 쉽사리 거주를 결정하기는 힘든 곳입니다. 이 일을 위해 제비뽑기를 습니다. 제비를 뽑아 뽑히는 사람들이 이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비 뽑힌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비록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한 채찍질로 더이상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을 때, 로마 군병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지기 싫어하는 가장 끔찍한 사형틀 십자가가 어깨에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것은 그 누구도 하기도 가기도 싫은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위해 구레네 시몬은 선택받았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마가복음 15장 21절을 보시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라고 했습니다. 당시 모든 성도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들이 누구인지를 다 알만한 교계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시몬의 아내를 향해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롬16장 13절)라고 까지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사는 것은 마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면 결국 그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고, 고난 없는 영광 또한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성도는 고난 없는 영광을 원합니다. 고난없는 영광, 십자가없는 영광은 껍떼기 영광입니다. 껍데기를 진짜인줄 알고 살지 말고 진짜베기 십자가 영광을 바라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억지로 예루살렘에 가야할 1/10이 되더라고 이 사실을 기억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3.자원한 자들.

 

세번째 예루살렘에 이주할 사람들은 '자원한 사람들'입니다.

 

2절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그렇게 예루살렘으로의 이주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결단을 칭찬하고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원하는 자를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기뻐하지 않을까요?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헌신은 마음이 아니라 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결단한 사람도 기뻐하시지만 자신의 몸을 실제적으로 드려 실천하며 순종한 사람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진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드려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땀흘린 사람들이 진정한 영적예배를 드린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몸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누구나 말로는 "예수 믿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내 몸이 예수님을 위해 살고 있는지,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옛날 얘기하지 마시고 당장 지난 한 주동안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생활을 여러분의 몸으로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몸으로 순종했습니까? 주님 말씀대로 어떤 순종을 했습니까? 

 

  느헤미야 10장 39절 마지막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공동체 약속으로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약속을 할 때 모든 백성이 아멘으로 동의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에 동의한 사람들이라면 순종해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전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성전을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은 그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을 버려두지 않고 잘 관리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약속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의 재건활동에 희생을 각오하고 자원하여 뛰어든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예루살렘이 다시 예전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모두 이렇게 기도합시다. 자원하는 심령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백성의 지도자들, 십분의 일로 제비뽑힌 사람들 그리고 자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이 다시 활기있는 강한 도시로 세워져 갈 것입니다. 11장 3절부터 36절까지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 성과 주변 마을과 들에 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의 명단이 소개됩니다. 이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해 헌신된 자리에 선 사람들. 자신의 몸을 드리는 헌신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찬양 가운데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이 찬양처럼 천국에서 해같이 빛날 것이며, 지금 우리의 헌신도 천국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그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원합니다. 부담되시죠? 몸이 가 있는 사람, 그 사람을 헌신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헌신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헌신은 무엇을 드린다고 했습니까? 몸입니다. 다들 꼭 필요한 일이라고는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알기만 한뿐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있다고 하지만 몸이 가지 않습니다. 결국 몸이 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교회에서 여러 사역들에 봉사자들이 필요해봉사자들을 모집합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여러 부서에서 봉사자들이 이동하기도, 빠지기도 하고 그래서 봉사자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지금도 찬양대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수고하고 시간을 내야되고 연습도 해야 되고 더 수고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누군가 수고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러분의 예루살렘이라 생각하고 자원해서 동참하는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대해 봅니다. 서로 미루고 서로 눈치보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 하겠다고 두 팔 걷고 나서는 성도들이 가득한 교회.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기대를 가지고 기도해 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