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느헤미야 12장 1절-47절)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느헤미야 12장 1절-47절)

행복으로초대 2017. 5. 14. 18:46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느헤미야 12장 1절-47)

 

52일의 짧은 기간에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었습니다. 기적같은 일입니다. 페르시아 수산궁에 있던 느헤미야의 금식기도로부터 시작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기적같은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주변 대적들의 조롱과 방해와 협박이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헤치고 나갔습니다. 쉬운 일을 할 때에는 별로 감격이 없지만 정말 어려운 일을 해내고 기적같은 일을 경험하고 나면 얼마나 감격스럽고 뿌듯한지 모릅니다. 이제 성벽재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 감동과 감격으로 하나님께 성벽봉헌식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 그 축제의 현장으로 들어가 봅시다. 그리고 그 축제의 현장에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때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할까요?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첫째.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드립시다.

'봉헌'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벽봉헌식이란 성벽을 하나님께 받들어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봉헌식에서는 무엇을 바치느냐? 이것이 중요하겠죠? 백성들이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피땀흘려 수고한 결과인 성벽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셨음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죄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성벽을 재건해 어두운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롭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봉헌식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건물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는 백성들을 받기 원하십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제물의 차이가 아닙니다. 제사를 드리는 가인과 아벨 그 사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가인은 하나님께서 받을 수 없는 사람이며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2장에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절부터 26절까지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각 처에서 레위인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가  봉헌의식, 찬양과 감사의 축제를 위해 악기들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이 성벽 위에 올라갔고 감사찬송하는 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오른쪽으로 한 그룹은 왼쪽으로 돌게 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다윗의 악기는 아마도 성전예식을 위해 다윗이 지정한 악기들로 보입니다. 양쪽으로 나눠 전진하는 백성의 지도자들은 성벽위를 지나가면서 얼마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특별히 자기가 맡아 쌓았던 구역의 벽돌을 만지면서 감회의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성벽위를 행진하면서 52일간의 치열했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이 고조됩니다. 그 감사와 찬양의 마음을  앞에 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찬양으로 표현하며 성벽위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앞에 함께 모여 예배드림으로 봉헌식의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봉헌 즉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는 무엇보다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예배자의 자세, 그리고 예배자의 삶을 기뻐하십니다. 예배없는 봉헌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없는 물질, 예배없는 헌물은 껍떼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큰 것, 화려한 것, 비싼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들의 예배없는 돈주머니를 받는 분이 아닙니다. 찬양과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과부의 두 렙돈, 작은 동전 두 닢을 기뻐 받으십니다.  항상 예배하는 자세로 살아갑시다. 항상 출발은 예배로서 시작합니다. 다른 것은 예배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러니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봉헌! 하나님께 바치는 것도 예배의 연장선상인 것을 기억하시고 먼저 예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정결함으로 하나님께 드립시다.

두번째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는 '정결함'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봉헌식을 준비하면서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자신들의 몸을 정결하게 합니다. 또 백성들을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성벽까지 정결하게 합니다. 아마 레위기의 정결예식을 따라 행했을 겁니다. 목욕을 하고 옷을 깨끗히 씻었을 것입니다. 부정한 것들과의 접촉을 피했을 것입니다. 희생제물의 필을 바르고  물로 씻거나 뿌렸을 것입니다.

 

 이런 정결예식을 성벽 봉헌식을 앞두고 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드릴 때는 죄와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거룩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전달하려면 그 사람이 있는 곳에 가야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악의 자리에서 떠나야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죄악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내가 지금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나갈때는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해야 합니다.

 

  진정한 웃음은 진정한 슬픔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죄를 자복하고 애통함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정직하게 죄를 고백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있는 헌물,물건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받으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게 아닙니다. 우리가 깨끗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정결함으로 하나님께 드립시다라고 해서 지금 내가 정결하다. 거룩하다. 깨끗하다. 그래서 나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깨끗하다 나는 거룩하다고 자찬하며 목이 곧은 자세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인입니다라고 엎드리며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매일 죄를 자책하며 죄의 지배아래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더욱 의지하고 십자가의 그 사랑을 더욱 감사하며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더욱 찬양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리십시오. 우리가 그런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됩니다.

 

 

셋째,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립시다.  

  12장 전체의 분위기는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칩니다. 기쁨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하나되어 있습니다. 12장에서만 "노래한다 찬양한다"가 8번, '감사한다"가 6번 "기뻐한다"가 7번, 그리고 각종 악기로 기쁨을 표현하는 부분이 3번 언급됩니다. 특히 43절을 보십시오.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성벽을 하나님께 바치는 기쁨과 감격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아주 멀리서도 들릴 정도였습니다.

 

 또한 44~47절에는 백성들에게 영적인 즐거움이 충만함으로 성전에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쓸 것과 십일조를 기쁨으로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예배의 기쁨을 알게 되니 영적인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을 감당하는 영적인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보니 마냥 즐거워합니다.  44절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영적인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영적인 일을 돕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그러니 영적인 일, 즉 성전의 일, 예배를 돕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더욱 주의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율법에 정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성전 곳간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43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는 부분이 보이십니까? 큰 기쁨의 소리가 멀리서도 들릴 정도 였습니다. 기쁨의 큰 환호성, 감사의 노래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할 때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만드셨습니다" 이게 답입니다. 그동안 버려진 성전과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해 어떻게 성전의 쓸것과 십일조를 즐거운 마음으로 낼 수 있는가?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만드셨습니다."이게 답입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여전히 주변의 대적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오히려 더욱 이스라엘을 경계하고 이스라엘의 부흥을 방해할 것입니다. 황무한 땅, 아직 정비되지 않은 예루살렘의 사정은 여전합니다. 예루살렘에 이주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은 개척자입니다. 자신의 삶의 안정된 터전을 떠나 불안하고 열악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분명 어려움이 예상되고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많아 보입니다. 어떻게 살아햐 합니까?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만드셨습니다." 이게 답입니다.

  

  느헤미야가 외쳤던 이 말을 기억합시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장10절)

기쁨의 시작은 하나님입니다. 기쁨의 전부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기쁨이 보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세상의 불안과 근심 걱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기쁨을 주십니다. 세상의 화려한 것들을 버리고 헌신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며, 빼앗을 수도 없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가진 것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쁨으로 드리는 자세에 대해서 두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세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마시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십시오. 함께 찬양합시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두가지 기쁨이 있습니다. 쾌락과 희락입니다. 세상에서 주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을 사는 우리가 정말 거부하기 힘든 쾌락입니다. 40일 금식하신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한 사단의 시험이 쾌락입니다. 세상의 쾌락! 눈이 가고 손이 가고 발이 갑니다. 순간 순간 유혹하며 거부하기 힘든 쾌락으로 초청합니다. 하지만 그 때 명심하십시오. 그 길이 멸망의 길입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달콤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죽이는 독입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희락을 누리십시오.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은혜의 방편들을 즐거워하십시오. 구원받은 삶을 기뻐하십시오. 말씀으로 인도받는 삶을 기뻐하십시오. 순종함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기도로 영원한 세계를 경험하십시오. 세상의 즐거움에 사로잡히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흥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세상 즐거움에 사로잡힌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쾌락이 아닌 희락을 선택하십시오.    

 

둘째, 작은 기쁨을 누리십시오. 무슨 말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든 부분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셔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여전히 어려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내 삶의 작은 변화와 회복의 순간들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크고 높은 산을 정복했을 때에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산을 오르면서 옆 길로 보이는 작은 꽃잎 하나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이신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어떨까? 기대하고 기도하고 기뻐하는 삶이 되십시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을 기뻐하다보면 어느 샌가 높은 산 중턱에 와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동행하면서 작은 기쁨의 산들을 하나 하나 넘어갑시다.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 3가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까요? 지난 주에 말씀드린대로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는 헌신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드릴 때의 자세를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 드립니다.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여러분을 드리십시오. 정결함으로 하나님께 여러분을 드립시오. 기뻐함으로 하나님께 여러분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 여러분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