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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낙타의 콧잔등을 개혁하라(느헤미야 13장 1~3절)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낙타의 콧잔등을 개혁하라(느헤미야 13장 1~3절)

행복으로초대 2017. 5. 17. 12:06

 

낙타의 콧잔등을 개혁하라(느헤미야 13장 1~3절)

 

중동지역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막의 주요 이동수단은 낙타죠. 낙타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밤이 되어 천막을 치고 자고 있었습니다. 사막이 낮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뜨거운 곳이지만 밤에는 추위가 몰려오는 곳이도 합니다. 추위가 몰려오니까 낙타가 천막 안으로 코를 들이밀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밖이 좀 추워지는데 코가 많이 시립니다. 콧잔등이라도 좀 천막안에 넣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좋다하고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제는 얼굴을 쏙 하고 넣으면서 귀가 시려서 죄송합니다하고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주인이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앞다리를 쑥 하고 넣으면서 "주인님 다리를 굽혀서 있으니까 다리가 저려옵니다. 앞다리 만이라도 천막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주인이 어쩔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자면 천막은 주인과 낙타를 함께 수용할 만한 크기가 안됩니다. 잠시 후에 낙타가 천막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 몸때문에 천막이 들쳐져 있으니까 찬바람이 안으로 자꾸 들어옵니다. 차라리 안에 들어가겠습니다." 주인과 낙타가 함께 있기는 좁습니다. 낙타가 들어와 있으니 이제는 주인이 자꾸만 밖으로 밀려나서 결국 낙타는 천막 안에 주인은 천막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이 제목은 "낙타의 콧잔등을 개혁하라"입니다. 주인이 밖으로 밀려나게 된 원인은 낙타가 천막안으로 들어올 때, 즉 "콧잔등만 넣게 해주세요."할 때 그것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동물애호가 분들의 반대를 사양합니다. 낙타가 추위에 떨도록 내버려둔 주인에 대한 성토, 동물학대 이런 말씀은 하지 마시구요.ㅎㅎ 이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적용이 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 세상의 방법, 죄의 유혹, 이단적인 신학 등이 낙타의 콧잔등처럼 서서히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생활 속에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그 콧잔등을 잘 분별하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낙타의 콧잔등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성벽봉헌식의 큰 축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성벽봉헌식 날에 일어난 엄청난 개혁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시면 '그 날' 즉 성벽봉헌식이 있던 날입니다. 모세의 책을 낭독했습니다. 성벽봉헌식을 한 후 율법책을 낭독하는 부흥 집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 모세의 책에  기록된 말씀을 읽던 중 강렬하게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찌른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마 신명기 23장 3절~6절까지의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2절에 나옵니다. 암몬과 모압은 이스라엘과 혈통적 관계가 깊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 암몬과 모압이니 이스라엘과는 혈통적으로 상당히 깊은 관계입니다. 당연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식과 물로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술사 발람을 매수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해도 되지 않도록 발람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결국 발람은 이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발람의 사건을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여튼 모압과 암몬은 이렇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음행해 빠뜨려 큰 염병이 돌게 하고 곤경에 빠뜨린 민족도 모압과 암몬이었습니다.  형제와 같은 이스라엘에게 선을 베풀지 않고 오히려 저주를 쏟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3장에서는 모압과 암몬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그 명령을 따라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분리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혈통적으로 암몬, 모압이면 무조건 축출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한 여인이 머리속에 떠올라야 합니다. 모압여인 '룻'입니다. 룻은 혈통적으로는 모압이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거하며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았으며 다윗왕과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 되는 영광까지 누렸습니다. 이를 보면 암몬과 모압 사람들이 신앙공동체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배척된 것은 혈통적 구분이 아니라 신앙적 구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광야생활 중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의 신앙을 오염시켰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사람들을 축출한 것입니다. 여호와 신앙이 없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살던 불신앙적인 사람들을 몰아냈습니다. 이들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마치 낙타의 콧잔등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서서히 이스라엘을 오염시켜갔던 이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구분해 내는 개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모압과 암몬을 축출하는 것은 뒤이어 나오는 13장의 모든 개혁의 시작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개혁'입니다. 이런 종교개혁을 통해야만 이스라엘은 건강한 신앙공동체로 설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를 살펴보면 느헤미야 전체가 종교개혁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개인신앙생활에 있어서 보다는 교회, 즉 신앙공동체의 개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중세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생각해 봅시다. 부패한 로마카톨릭에 대해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바른 신앙을 세우기 위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세워진 교회는 완전했을까요? 아닙니다. 교회는 여전히 걔혁의 대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만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 위에 서야만 교회는 세상 속에서 바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세지가 세상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교회는 아무 힘도 아무 영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세상의 사상과 가치관, 철학, 이단의 신학이 들어와서 어지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여호와 신앙의 공동체인 이스라엘에 불신앙의 사람들인 모압과 암몬이 들어와 있음으로 순수한 신앙을 훼손시켰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진 교회는 말씀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해 변질된 교회의 모습은 말씀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했습니다. 거짓선지자,거짓교사들, 영지주의자들, 플라톤의 이원론, 세상권력을 탐하던 교황들, 황금만능주의, 성경의 권위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인 도전 등으로 교회는 혼란에 빠졌던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을 개혁한다고 나온 개혁교회도 여전히 개혁의 대상인 것입니다. 위대한 신학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칼빈도 개혁되어야 합니다. 오직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잣대 안에 교회도 개혁되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그리고 교회가 건강해야 성도들이 건강해 집니다.

 

그렇다면 이런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들이 되는 때가 언제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1절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3절에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질 때, 그 말씀을 들을 때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됩니다.  

 

우리 호산나교회도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말씀의 반석위에 바르게 서야 합니다. 말씀의 반석위에 세워놓았을 때, 삐걱거리고 흔들리면서 바르게 서지 못한다면 교회는 그것을 바르게 고쳐야 합니다. 교회의 영적지도자들과 성도들은 말씀의 반석위에 서야 합니다. 교회 안에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말씀으로 바르게 서기 운동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를 살펴보고 교회를 말씀으로 진단해서 바르게 세우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운동에 모든 성도들이 동의하고 동참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들 스스로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보고 변화시키는 운동이 뜨겁게 일어나기 원합니다.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천막에 슬며시 들이미는 낙타의 콧잔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신앙생활의 천막 속에 슬며시 들이미는 낙타의 콧잔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일체의 불의하고 죄악된 요소들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덩이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혼잡케 하는 죄악의 누룩, 이단의 누룩, 세상의 누룩이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늘 개혁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