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느헤미야 설교 완료 : 뚝배기 신앙으로(느헤미야 13장 10절~31절) 본문
뚝배기 신앙으로(느헤미야 13장 10절~31절)
양은냄비는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버립니다. 양은냄비신앙은 순간적인 감동, 은혜를 잘 받습니다. 양은냄비신앙의 좋은 점은 반응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을 잘 합니다. 은혜의 시간에 회개의 눈물,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양은냄비신앙은 금방 식어버립니다. 반면에 뚝배기는 요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뚝배기신앙은 반응이 느립니다. 쉽게 은혜받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뚝배기같은 신앙은 한번 은혜를 받으면 오랫동안 감격과 감동이 지속됩니다. 뜨거움을 오래 동안 간직합니다. 오래 기다림, 인내,희생,헌신합니다. 그럼 우리는 양은냄비 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뚝배기 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이렇게 물어보면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시죠? 양은냄비신앙의 좋은 점과 뚝배기 신앙의 좋은 점을 다 가지면 좋겠습니다.
제가 왜 설교를 시작하면서 양은냄비, 뚝배기 타령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양은냄비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느헤미야를 살펴볼 때, 성벽재건 후, 백성들이 부흥회를 열고 은혜를 받고 울며 눈물도 흘리고 하나님께 견고한 언약을 맺으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런 이런 일들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고 개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치 양은냄비가 팔팔 끊으며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것처럼 백성들의 모습이 다시 원상복귀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왜 그들의 뜨거웠던 신앙이 식어버리고 말았을까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잘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방 식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잘 유지하려면.사람 앞에서 신앙생활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하십시오.
오늘 말씀에는 느헤미야의 재개혁이 나옵니다. 이미 느헤미야가 12년간 총독으로 있는동안 했던일이었습니다. 10절~14절은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들을 위해 백성들이 다시 십일조생활을 하도록 했습니다.
15절~22절은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했습니다. 안식일에 장사하는 일들을 금지시켰습니다.
23절~31절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조차 대적 산발랏과 사돈관계가 되어있을 만큼 이스라엘 전체가 이방인과의 통혼을 꺼리낌없이 행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가 재개혁을 실시하자 백성들이 따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느헤미야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느헤미야가 있을 때는 열심과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느헤미야가 없으니까 다시 세상 속으로 녹아버렸습니다. 느헤미야라는 사람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느헤미야를 의식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여기서 단어를 하나 만들어보겠습니다. '사람앞 신앙'과 '하나님앞 신앙'으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에게 보이고자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앞 신앙을 가지면 아무런 영적 유익도 없습니다. 사람앞 신앙은 참 피곤합니다.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답답한 신앙생활을 하게됩니다. 잠시동안은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앞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특히 사람앞 신앙은 보여야 될, 의식해야 할 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이 믾으면 열심히 하다가 보는 사람이 없으면 게을러지는 신앙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교회사역을 하다보니 담임목사님이 계실때와 출타해서 안계실때 성도들 출석율이 차이가 많이 나더라구요. 새벽기도,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에 잘 참석하다가도 담임목사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안보여요. 그래서 사람앞 신앙은 참 불쌍합니다. 또한 중직자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새벽기도 나오고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나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평상시에 잘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람앞 신앙은 외식적인 신앙생활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꾸짖었던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앞 신앙은 아무런 영적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앙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외식적인 신앙이 되면 은밀한 죄의 유혹이 다가올때,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앞 신앙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예배생활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데 왜 나를 인정하지 않는가?하면서 자칫 시험에 듭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앞 신앙은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못하니 마치 광야와 같은 곳에 서있는 것같습니다. 억지로 기도해야 하고 억지로 봉사해야 하니 어떻게 힘이 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앞 신앙이 되지 마시고 이제 하나님앞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라디아서 1장 10절)
하나님 앞 신앙은 우리의 신앙을 진짜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 앞 신앙은 우리를 진짜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앞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 앞 신앙은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우리의 신앙을 꾸준하게 합니다. 시험이 와도, 은밀한 유혹이 와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힘있게 서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원하기에 누가 보든 안보든 열심히 하게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재밌습니다. 하나님을 기대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소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며 하나님을 더욱 체험하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속에서 만나시기 바랍니다.
"코람데오"를 실천합시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살아갑시다. 느헤미야가 있다고 신앙생활 잘 하고 느헤미야가 없다고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맙시다. 하나님앞 신앙으로 진짜가 됩시다.
하나님 앞 신앙은 뚝배기 같은 신앙입니다.
하나 더, 알아보겠습니다. 금방 식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잘 유지하려면. 하나님께 기억될 선한 일들을 만들어 가십시오.
재개혁을 하나씩 할 때마다 느헤미야는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14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22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31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한 마디로 하면 "나를 기억하옵소서."입니다. 자칫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려는 기도 같지만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개혁한 일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한 개혁의 일들이 오랫 동안 백성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당대에만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느헤미야가 떠난 이후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약속했던 언약들을 기억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이 하나님을 오랫동안 잘 섬기면 그것이 느헤미야에게 복이 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기복이 심합니다. 어떤 때는 뜨겁다가 어떤 때는 차갑다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침체되어 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억될 만한 일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 때, 그 일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 요단강에서 돌을 주워 길갈에 기념비로 세워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기념비를 볼 때마다 요단강을 멈추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갈 때, 그 기념비가 무엇인가? 알고 다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 신앙의 침체기가 올 때, '골방으로 돌아가라'고 제 스스로에게 외칩니다. '골방기도'를 통해 큰 은혜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정해진 찬송가가 있습니다. 찬송가 438장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찬양하다가 하나님의 은혜에 빠져들었던 찬송입니다.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봉사하시다가 연세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교사를 그만두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직접 학생들을 지도하지는 않지만 빠짐없이 평생을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맡았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수십년 교사봉사하셨는데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있겠습니까? 그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그렇게 즐겁다고 하더라구요. 제자들이 잘 성장해서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모습을을 볼 때 너무 좋아하십니다. 사회적으로도 자기 역할 잘 감당하는 제자들을 보며 기도합니다. 혹시나 어려움을 겪는 제자들을 보면서 같이 마음 아파하고 더 기도하십니다. 그 장로님에게 기억될 만한 일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한두가지 겠습니까?
신앙의 기념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했던 기억,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 수 있는 기념비를 만들어 가십시오. 그 때의 그 감격을 회상하면서 침체가 올 때, 이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삶 가운데서도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영적일지를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어떤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시는지 영적인 예민함으로 순간순간 느끼며 사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렇게 쌓인 영적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어 돌아옵니다.
양은냄비신앙이나 뚝배기신앙이나 식지않고 뜨거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계속 열을 가해주면 됩니다. 음식점에 가도 처음 뜨겁게 끊이고 나면 약한 불로 해서 계속 식지않도록 해주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의 기질이 양은냄비신앙이든 뚝배기 신앙이든 하나님 앞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앞 생활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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