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을 위한 방이 있습니까?(느헤미야 13장 4~9절) 본문
하나님을 위한 방이 있습니까?(느헤미야 13장 4~9절)
계속해서 느헤미야의 마지막 장인 13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13장 3절과 4절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아닥사스다왕 20년에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했던 느헤미야는 12년 간 총독직을 수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느헤미야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무너진 성벽이 재건되었습니다. 무너진 신앙도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습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느헤미야가 12년 총독 재임 기간을 마치고 페르시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짧은 세월 동안, 아마 2~3년 정도로 봅니다. 그토록 뜨거운 영적부흥을 체험했던 이스라엘이 다시 죄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아도 좋으니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해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다시 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조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 한가지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단행한 첫번째 개혁은 성전을 정결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무엇보다 놀란 것은 성전 안에 이스라엘의 대적 도비야를 위한 방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제사장 중 한명이었던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큰 방을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도비야가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할 때 가장 심하게 조롱하고 방해하고 느헤미야를 위험에 빠뜨리려 했던 대적 중에 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도비야를 위해 성전에 방을 만들어 주다니요. 여기서 "만들었으니"의 의미에 의하면 여러 개 방의 벽을 허물어 큰 방 하나를 만들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대적 도비야를 위해 거룩한 성전이 훼손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거룩한 물건들, 즉 5절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을 치우고 그 방에 절대 있어서는 안될 대적 도비야의 세간으로 채워넣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온 후 이것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8절에 "심히 근심했습니다." 이 말은 성전이 더럽혀진 것으로 매우 불쾌한 마음이었으며 거룩한 공동체가 더럽혀 질 것으로 인해 염려했다는 말입니다. (개인의 근심거리 보다 거룩한 공동체를 위한 근심을 하는 성도)
그리고 도비야의 세간들을 다 방 밖으로 내어 던졌습니다. 9절에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다시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으로 다시 채워넣었습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직분인 제사장 엘리아십과 대적 도비야에 의해 저질러진 심각한 범죄에 대해 의로운 분노를 발하며 적극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신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상과 의자를 엎으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는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분노하십니다. 이것은 성전안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성전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말해 줍니다. 성전에는 기도의 소리가 가득해야 합니다. 예배의 소리, 찬송 소리가 가득해야 합니다. 회개와 거룩함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가득해야 합니다. 순종의 기쁨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이유는 성전에 장사치의 매매하는 소리, 그리고 매매과정 가운데 거짓과 속임수, 그리고 불공정 거래로 인한 범죄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성전안에 가득해야 할 것은 없고 성전안에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을 알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더욱 분노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무엇이 있었다고 합니까?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습니다. 왜 제사장인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 즉 친분이 있었을까요? 28절을 보면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적들의 수뇌격인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의 지도자층은 산발랏의 권력과 도비야의 막강한 자금줄에 선을 대고 상당한 혜택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성전을 더럽힌 원인이 됩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적들과 친분을 쌓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전에는 하나님과의 연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친밀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경제적,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가끔씩 있습니다. 교회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연락을 하는 곳입니다. 교회에 오는 목적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것외에 다른 목적이 될 때 우리는 싶게 넘어지고 신앙생활은 생기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신앙의 순수성도 잃어버립니다.
5절을 보십시오. 성전은 누구를 위해 지어진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하나님 만이 목적이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5절에는 누구를 위해 성전이 만들어 졌습니까? "도비야를 위하여"라고 합니다.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성전에 어떤 물건이 채워지느냐가 달라집니다. 성전이 도비야를 위하니까 도비야의 세간이 들어옵니다. 성전이 하나님을 위할 때는 거룩한 물건이 가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또는 여러분의 물건 중에서 하나님을 위해 쓰여지는 물건은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다면 용도가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예: 찬양으로 채워지는 MP3, 스마트폰, 전도를 위한 도구로 쓰여지는 자동차, 예배가 드려지는 테이블이냐 아니면 그냥 밥만 먹는 테이블이냐?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쓰여지는 냉장고, 그릇들, 전도를 위해 집으로 초청하고 음식 대접하는 그릇 말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할 것과 버려져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정결해야 합니다. 신부의 아름다움은 순결에 있습니다. 도비야를 위하여가 아닌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 삶의 모든 것들에 의미가 붙여지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여기 방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방에 여러분은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드릴까요? 하나님을 위한 방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방이 여러분에게 꼭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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