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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느헤미야1:4-5 눈물이 믿음을 만나 기도가 됩니다 본문

구약/느헤미야 완료

느헤미야1:4-5 눈물이 믿음을 만나 기도가 됩니다

행복으로초대 2024. 11. 26. 06:20

눈물이 믿음을 만나 기도가 됩니다.(느헤미야 1장 4절~5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눈물이 믿음을 만나 기도가 됩니다.”입니다. 
매주 금요일 밤, 중고등부 제자훈련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처럼 12명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자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한주간의 숙제입니다. 

혹시나 자녀중에 제자훈련 보내시는 부모님들은 숙제 꼭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숙제 안하면 벌금이 좀 쎕니다. 

지금 벌금 많이 모았습니다.

 

지난주  숙제가  "예수님은  나의  ooo입니다. 왜냐하면~~~"였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앙고백  10개를  적는 숙제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고백한 것을 간추려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기 입니다. 

왜냐하면 없는 것 같지만 없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제일 귀하신 분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저는 불행 속에서 살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나의 친구이십니다. 

친구처럼 항상 제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항상  친구처럼 위로해 주십니다. 

필요한게 있으면 항상 챙겨주십니다. 

내가 기쁠때 예수님도 나의 친한 친구처럼 항상 같이 웃어주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빛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안보일 것 같던 희망의 빛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나서 나의 삶이 더 행복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나무입니다. 

왜냐하면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소망이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슬퍼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할 때에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전부이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주 약한 존재이며, 

그 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적어낸 신앙고백 하나하나를 읽다보니 

아이들의 마음이 보이고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명 한명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친구의 신앙고백을 읽다가 눈물이 나기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이가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합니다.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하나님을 고백하고 

하나님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향한 진한 신앙고백으로 더욱 단단해 지는 그 아이를 보며 감사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을 아주 진하게 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5절 말씀을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 고백의 주인공은 ‘느헤미야’입니다. 

바벨론 포로된 백성들을 이끌고 3차 포로귀환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바벨론 왕의 술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아 포로에서 귀환할 때는 유다의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환 후,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지도자였습니다. 

이 느헤미야가 바벨론의 궁전에 있을 때, 

예루살렘 성과 백성들의 비참한 소식을 듣고 수일동안 울면서 슬퍼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그의 입술에서 터진 신앙의 고백이 바로 5절입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뭐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두 번에 나눠서 부릅니다.

첫째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둘째는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느헤미야가 자그마치 4개월 동안 울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에게 간절히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잖아요!!!! 맞잖아요! 라고 

하면서 매달리는 것입니다.그런데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느헤미야가 부르짖을 때, 무너진 예루살렘에 살던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은 어땠을까요?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의 마음과 생각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무너진 예루살렘,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 굶주림과 두려움,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구겨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방민족들이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합니다. 

너희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거야? 있기는 있냐? 

우리의 신에게 겁을 먹고 도망쳤나보다. 

3류 신 여호와는 믿지 말고 우리가 섬기는 최고의 신을 섬겨라~~~ 

이런 조롱의 말을 들으면서도 변변히 대답 한번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 때, 느헤미야는 담대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시며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이 믿음의 고백대로 그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에게 숙제를 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이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사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갑자기 하라고 하면...한동안 뭐라고 해야 할지, 

바로 입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너무 바빠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생각이 너무 복잡해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지 못해서 고백을 바로 못합니다. 

잠시 생각해야 한다면 회개하십시오. 

만약~결혼한지 얼마 안됐는데, 아내가 갑자기 “자기야~~~자기한테 난 뭐야!”라고 했는데... 

생각하고 있으면 밥 못얻어 먹습니다. 

결혼한지 오래 된 분들은 “여봉~~자기한테 난 어떤 여자야?”라고 물어보면 “이게 
미칬나? 이러면 큰일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오전예배 자주 할수도 없는데... 왜 하필이면 다른 주제를 놔두고)
제가 제가 왜 이렇게 집요하게 여러분에게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라고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꾸 믿음을 고백하라고 합니다. 사랑을 고백하라고 합니다.
베드로야 니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
얘들아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하냐?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자꾸 묻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다 아시죠? 같이 해 볼까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하시며 대단히 좋아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좋아했을까요?
그 신앙고백이 멋져서? 제자들과 함께 살며 가르친 보람이 있어서? 아닙니다. 
그 신앙고백이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최고 관심은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이 반석이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무엇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반석으로 삼아 

그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고백, 신앙의 고백을 자꾸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아끼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교회! 

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풍성한 신앙의 고백들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유창하고 세련된 말을 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가득한 말을 하는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려는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려고 눈물로 울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으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고백처럼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불쌍한 유다 민족을 지켜주는 성벽을 완성해 주십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52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요?  한 사람의  믿음의 고백을 듣고 그 고백대로 이루시는 신실한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여러분의 고백대로 작게는 여러분 자신에게, 가정에, 

그리고 우리 함께 마음을 모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튼튼히 세우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고 예수님을 많이 생각하고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고백하면, 그 믿음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이제 이런 믿음의 고백에 더해 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데 있어서 이 재료가 꼭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를 보니까 확실합니다. 
우리 담임목사님 봐도 확실합니다. 이거 한번 할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의지할 때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실 너무나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담임목사님 새로 오시고 제가 계속 기도했던 제목 중에, 

담임목사님의 눈물이 그치지 않게 하소서!!! 
여전히 여기만 서면 울고 계십니다.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 강의를 많이 들었는데요.... 
“기도의 눈물이 차야 성도가 찬다.”라는 말이 기억이 납니다. 

괜찮은 말은 입술로 고백해 보면 좋습니다. 
기도의 눈물이 차야 성도가 찬다. 아멘.
그럼 오늘 제목을 저를 따라 다시 해 보십시오. 

“눈물이 믿음을 만나 기도가 됩니다.” 
눈물 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자훈련 받는 학생 중 이런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눈물이십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눈물을 흐르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는 기도하면 얼마나 우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 친구를 보면서 회개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눈물을 회복해 주세요.’ 
그런데 여기서 눈물의 순도가 높아야 합니다.
눈물 날 일 많은 세상에서 그 눈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믿음으로 고백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을 살피시고 도우시고 회복시키시고, 

역전시키시고 잘 되게 하시고 풍성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힘들다고 슬프다고 울지만 마십시오. 눈물을 기도로 바꾸십시오. 

아픔을 기도로 바꾸십시오. 두려움을 기도로 바꾸십시오. 

눈물의 자리를 털고 기도의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꼭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어머니의 눈물 기도>

어머니가 제일 많이 하던 말. 주여~~~~~~~~~~~~ 주~~~~~~~~여...

어머니 제발 신세한탄 좀 하지 마세요. 그런데 그 말은 신세한탄이 아니었습니다. 

주여~~~한 마디에 눈물 한방울로 힘든 세월 아비없는 자식들 키우는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힘드시죠? 기도의 자리에 오세요. 방구석에 울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펑펑 우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흘리는 눈물이 교회를 세우는 눈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교회를 세우는 눈물을 회복합시다.” 
느헤미야가  4개월을  울었습니다. 찌질이라고  하죠? 

저 인간은  매일  운다. 찌질하게....  그런데  그 눈물의 정체를 알고 나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성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그렇게 울 수 있을까요? 

대단한 느헤미야입니다. 그렇게 울기는 참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믿음에 한없는 눈물을 더하셨습니다. 

그렇게 눈물이 믿음을 만나 강력한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수산궁까지 수천킬로미터입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한 궁전에 있는 한 사람~ 4개월을 눈물로 밤낮 지새우는 한 사람. 

그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기도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멸망한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울지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믿음의 고백, 믿음의 기도를 통해 그 일을 하셨습니다.

 

나비효과를 아십니까? 나비의 단순한 날개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입니다.
이 거제호산나교회의 한 사람의 작은 믿음의 변화가 뭇 사람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결과가 일어납니다.
교회당 증축과 교회를 위한 릴레이 기도가 한창 진행중에 있습니다.
날씨도 많이 더워지고 본당에서 기도하려면 땀, 

더위와의 전쟁을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럼에도 한시간 기도의 자리에 와서 기도하는 분들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남아공의 거리가 14000 킬로미터입니다. 

이 곳 호산나교회 본당에서 한 성도의 작은 기도 날개짓이 그 먼거리를 지나 

남아공에서 엄청난 일을 일으키는 태풍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당 증축과 여름사역, 지금은 남아공 단기선교, 

그리고 DBS 영어성경캠프 등 기도해야할 제목들이 계속 있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이것을 위해 기도의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과테말라의 알모롱가라는 인구 2만명의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알모롱가에는 한때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주 가난했습니다. 대부분의 성인남자들은 알콜 중독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4개의 감옥으로는 수용이 부족할 정도였던 도시였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마시몽(죽음의 신)이라 불리는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아주 심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알모롱가는 가장 깨끗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도시로 변화되었습니다. 
가정은 회복되었으며, 빈곤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36개의 술집 중 33개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깡패들이 모두 변화되어 목사들이 되었고 도시의 90퍼센트가 복음화되었습니다.
4개의 감옥은 더이상 필요없어져서 관청업무나 결혼예식장으로 사용되는 곳이 알모롱가입니다. 
사람들은 알모롱가를 교회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이런 큰 변화의 중심에는 한 사람의 목숨을 건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노 목사님이라는 분이 일주일에 3~4일씩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기도의 능력으로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받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도시를 위해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도시가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가 토지가 변했다는 겁니다.
기도만 했을 뿐인데 비옥한 토질이 되면서 모든 수확물들이 

갑자기 2~3배씩 커지고 영양분도 높아졌다는 겁니다. 

수확량도 도시가 기도하기 시작하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1천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이 와서 원인을 조사했는데 도저히 밝혀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한 사람의 기도, 그리고 온 교회의 기도가 도시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압니다. 

느헤미야 한 사람의 눈물, 그리고 믿음의 고백, 그리고 기도, 

눈물이 믿음을 만나 기도가 될 때,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눈물이 믿음을 만나 기도가 됩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하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며 함께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