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전도서9:1-6 죽음 앞에 서서. 본문
믿음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인정해야 할까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채 100년도 살지 못하고
당장 내일 일도, 아니 1초 후의 바로 다음 일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안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인생을 살펴보면 볼수록 인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1절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인데
마음에 두고 반성하고 되돌아 본 결론이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결론으로 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예로 들면서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사람들과 뒤섞여 살다보면 워낙 여러가지 사건과 사고,
상황과 관계 속에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 뜻과 내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현대시대를 살아가면서 온갖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인 병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기지 못해서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적인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항상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삽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지만 동료나 상사로부터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든지, 미움을 받든지
결국 가는 길은 일반이라. 모드 사람에게 임하는
일반적인 길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
무엇일까요?
2절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모든 사람은 같은 길을 갑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운명이 같다.
의인이나 악인, 선한 자나 깨끗한 자나 깨끗하지 않는 자,
제사를 드리는 자나 드리지 않는 자.
선인이나 죄인이나, 맹세하는 자나 맹세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자.
이것의 차이에 상관없이 결국 같은 길을 갑니다.
모두가 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3절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결국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은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의 길로 가는 이유는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악하고
평생 살면서 미친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아버지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는것이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가는 길입니다.
죄는 우리를 미치게 합니다.
죄를 품은 마음은 미움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로 가득해서
서로를 힘들게 하고 죽이고 또 자기도 죽습니다.
사람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4절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죽으면 끝이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만 기다릴 뿐이다.
모든 사람이 가야할 죽음 앞에 아직 이르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아직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합니다.
왜 살아있는 것이 소망이 될까요?
살아있으면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는 세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1.육체의 죽음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육체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육체의 죽음을 당합니다.
2.영적인 죽음
영적인 죽음은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있는 영적상태를 말합니다.
육체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영적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3.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렇게 영적인 죽음의 상태로 있다가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면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은 천국이요 영원한 죽음은 지옥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살아있음은 영적인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을 수 있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끝입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습니다.
아무리 사자의 힘과 권세와 능력과 명성을 누려도 죽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은혜는 끝나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5절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산 자들은 자신이 죽을 줄을 압니다.
자신이 죽을 줄을 알고 죽음 앞에서 들어야 합니다.
죽음을 지나 그 이후의 영원한 삶과 심판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은혜이며 소망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죽으면 끝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은 잠시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든 하지 않든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멕시코 같은 나라입니까?
죽은 자가 내세의 세계에서 사라질 수 있는데,
이승에서 사는 사람들이 죽은 자를 더이상 기억하지 않으면
내세에서 조차 소멸해 버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6절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죽음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허무한 것입니다.
허무한들 어쩌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가야할 길인데 어쩌겠습니까?
죽고 나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죽은 자에게 돌아갈 몫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어떻게 해야 할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계신데 왜 믿지 않습니까?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주님으로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이
죽음 앞에서 선 사람들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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