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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전도서9:11-18 역전의 지혜 본문

구약/전도서

전도서9:11-18 역전의 지혜

행복으로초대 2024. 11. 30. 01:37

스포츠 경기에서 역전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경기를 계속해서 이기고 있다가 한 순간의 실수나

체력이나 전술에 문제가 생기면서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역전의 장면을 보면 승리가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11절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빠르다고 강하다고 지혜롭다고 명철하다고 지식이 많다고 

세상에서 잘 될까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 유리하기는 하지만

세상에서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토끼와 거북이, 대기만성을 보면 빠르다고 이기는게 아닙니다. 

다윗과 골리앗을 보면 힘이 센 용사라고 이기는게 아닙니다. 

지혜자와 명철자 지식인이라고 세상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시기와 기회가 누구의 것이냐를 알면 됩니다. 

때를 주관하시고 그 때에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기와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빨라도 뒤로 돌아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꼴찌가 일등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해도 지는 사람이 이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힘 센 것이 오히려 약점이 됩니다. 

아무리 지혜와 지식, 명철을 가졌다 해도

시기와 기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명철을 따를 수 없습니다. 

 

12절에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알라고 합니다. 

12절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시기와 기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너무나 차원이 다릅니다. 

마치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린 것 같고

새들이 올무에 걸린 것처럼

예기치 못한 재앙의 날이 가까이 와도 그 재앙이 가까이 왔음 조차도 모릅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시기와 기회에 대해서는 장님입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분명한 한계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의 한계와 무능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시기와 기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교만하게 행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경주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패배를 모르는 강력한 용사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지식이 많으며 명철하다는 착각 속에서 삽니다. 

그러면서도 무조건 빠른 경주자가 되라고, 강력한 용사가 되라고,

세상에서 지혜자, 지식인, 명철자가 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됩니다. 

이런 세상에 전도자는 아주 특별한 것을 보게 됩니다. 

 

13절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절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크기가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어떤 성읍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성읍에 아주 강하고 큰 나라의 왕이 침략하고 그 작은 성읍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큰 흙벽(흉벽)을 쌓고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작은 성읍과 그 성의 주민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쳐했습니다. 

이 때, 그 작은 성읍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15절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 작은 성읍에 한 지혜자가 있었는데,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혜자의 지혜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것은 그 성읍을 구원한 지혜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을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요?

왜냐하면 지혜자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16절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전도자가 이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 합니다. 

사람들은 결국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하는구나!

지혜자 조차도 가난하면 멸시를 받는 것이 세상이고

그 가난한 지혜자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구나!

이런 세상의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왜냐하면 전도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지혜가 분명 힘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크고 강한 나라의 왕이라고 해도 지혜로 이겼기 때문에 

지혜가 힘을 이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성읍의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지혜자가

가난하기 때문에 그를 멸시를 했습니다. 

 

지혜는 높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에게도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은 곳에 지혜가 있다고 몰려듭니다. 

사람들은 명성이 높은 곳에 지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어린아이에게도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말을 무시합니다. 

나보다 가난해보이고 나보다 외적으로 부족해보이면 

그 사람을 멸시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오늘 나에게 이런 교만이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작은 자, 가난한 자, 연약한 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배우려고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17절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참된 지혜에는 힘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통치자들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보다 힘이 있습니다. 

지혜자가 조용 조용히 말해도 사람들은 오히려 세심히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은 소리지만 힘이 있고 권위가 있는 지혜자가 있습니다. 

차분하지만 깊은 감동을 주는 지혜자가 있습니다. 

 

그럼 이 지혜의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힘을 믿읍시다.

성경을 읽고 그 삶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의 말은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에서 난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말씀의 힘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힘을 더욱 얻읍시다. 

 

18절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지혜는 그 어떤 강력한 무기보다 강력합니다. 

지혜는 전쟁을 막을 수도 있고 전쟁에서 피 흘리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엘리사 한 사람이 아람의 수많은 군대보다 낫지 않습니까?

지혜는 무기보다 나은 것이다. 

반면 그런데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리고에서 승리했던 이스라엘의 강력한 군대가 아간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아이성에서 어이없이 패배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신앙에도 죄가 틈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예방법이고,

교회에도 죄가 틈타지 못하도록 거룩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예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