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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택함받은 증거는 무엇일까? (데살로니가전서 1:4-7절) 본문

신약/데살로니가전서 완료

택함받은 증거는 무엇일까? (데살로니가전서 1:4-7절)

행복으로초대 2017. 9. 23. 15:53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성도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성령 충만 하십시오.

 

오늘 말씀의 시작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은 일차적으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감사했고 항상 그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와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확신있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이 말을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을 겁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종하는 삶을 살고, 말 뿐인 사랑이 아닌 사랑의 수고를 하며, 많은 환란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삶을 살았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의 힘든 여정을 걷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를 택하셨다내가 확실히 알아! 이렇게 선포해 주니까 얼마나 기뻤을까요? 자신들이 걸어 온 믿음의 길이 헛된 길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가면 돼! 잘 하고 있어! 우리 잘 하고 있는거야~! 서로를 격려하며 미소 짓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그리고 사도 바울의 격려가 계속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확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줍니다. 이제 이 부분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증거가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내적 증거(4-5)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내적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입니다.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사도 바울 선교팀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이 데살로니가에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은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말로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고 복음을 설명하거나 때로는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조리있게, 설득력있게 잘 전하기 위해 훈련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만약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이 말로만 전해졌다면 그 복음은 그들의 귓전을 울렸을 뿐 마음과 영혼을 울리지는 못했을 겁니다. 복음을 통해 영혼은 구원하기 위해서는 유창한 말 이상의 그 무엇인가 더 필요합니다.

 

어느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여름농촌전도를 나갔습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된 한 여학생이 참가했습니다.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되었지만 구원의 감격과 감사, 기쁨이 넘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는 훈련이 안되어 있다보니 다른 친구들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전도의 모든 일정을 다 마치면서 초청을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전도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모두 놀랐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래서 그 여학생의 이름으로 초청받아 온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 학생이 전도를 한다고 하면서 뭔 설명은 못하고 계속 울먹이면서 꼭 예수 믿어야 된다고 하는데, 자꾸 저 학생 울먹이는 얼굴이 생각이 나더라구, 내가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 큰 일 날 것 같아서 왔어. 초청했는데 안 올수가 있어야지.” 유창한 말이 아닌 진심이 통했던 겁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진실된 마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말로만이 아닌 그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5절에 그것이 뭐라고 했습니까? 바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입니다.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능력은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는 능력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능력은 죄인으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과로 번역된 부분은 성령으로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복음이 듣는 자들의 영혼 속에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큰 확신으로는 두 가지 확신을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의 마음 속에 생기는 확신이며 또 하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생기는 구원의 확신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맞는지 보다 큰 확신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전도자에게든, 복음을 듣는 자들이든 확신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복음에 대한 내적 반응으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택하심을 받은 내적 증거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믿음의 반응이며 구원에 대한 내적 확신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대한 내적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내적 증거는 사실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당신은 택함을 받았다, 택함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내적 확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적 증거라고 해서 여러분 속의 감정적인 것으로 증거를 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 속에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것을 인정하십시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의 힘으로 내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믿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오직 믿음은 나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심어주신 것임을 인정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닌 예수님에 대한 인격적 관계가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알 수 있습니다. 공부해서 알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종교학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 어떤 성경학자들보다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에 대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오늘 나의 십자가가 되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내가 살았음을 믿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음에 감격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의 삶 속에 언제나 동행해 주시는 주님을 느끼며, 힘들고 어려울 때, 오직 의지할 분이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 삶,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경험한 삶, 생명을 주시되 더욱 풍성히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고 그로 인해 기쁘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속에 성령으로 주어진 내적 증거를 굳게 붙잡으십시오. 내적 증거의 힘은 우리의 입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합니다. 내적 증거의 힘은 우리의 기도에 능력이 됩니다. 내적 증거의 힘은 우리를 굳건하게 합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어떤 유혹이 와도 어떤 환란이 와도 넘어지지 않게 합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힘이 되며,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내적 증거의 선물을 더욱 굳게 붙잡으십시오. 아멘.

 

 

2.외적 증거(6-7)

아이돌 문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 첫째 딸 하영이는 방탄소년단을 정말 좋아합니다. ’방탄소년단이 뭐꼬? 어리둥절해 하시는 표정들이시네요. 또 방탄소년단이라고 하니까 방탄조끼? 보이스카웃? ㅎㅎ 옛날 학도병들이가? 이러면 곤란합니다. 방탄소년단이라고 남자 아이돌 그룹이 있습니다. 방탄소년단 브로마이드, 화보입니다. 방탄소년단 관련된 것만 있으면 가지고 싶어합니다. 방탄소년단이 나오는 방송프로그램을 체크하고 본방사수합니다. 그렇다고 제 딸이 아이돌에 미친 아이는 아닙니다. 지극히 건강하게 아이돌 문화를 대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춤을 좀 잘 췄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가시죠? 한때, 구미의 양현석이라고 불렸습니다. 구미는 제 고향이고,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의 멤버였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각 학교에 각 반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반끼리 어느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제일 춤을 잘 추는지 쉬는 시간에 난 알아요라는 곡을 틀어놓고 춤대결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서태지와 아이들이 입는 옷, 장신구 그대로 따라합니다. 춤동작 하나하나 똑같이 따라하려고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같이 춤췄던 친구들하고 연습을 많이 해서 구미 전체 고등학교에서도 유명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유명 연예인들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머리모양, 화장법, , 장신구 등을 따라하고 행동 하나 하나에 열광하면서 따라합니다. 한번이라도 가까이에서 얼굴을 보고 싶고, 말하고 싶어서 집 앞에서 진치고 밤을 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제 딸이 요즘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옛날 제 모습이 떠오르더라구요. 의외의 모습인가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외적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주를 본받는 자, 그리고 본이 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6절과 7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고 또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본받은 자는 광대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이라 말 속에는 처럼 되고 싶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즉 주를 본받는다는 말 속에는 주님처럼 되고 싶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말은 모든 믿는 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믿음생활하는 것처럼 하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다. 6절과 7절을 보면 순서가 있습니다. 제가 순서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여기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본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울과 그이일행들이었습니다. 바울 선교팀이라고 합시다. 바울선교팀이 예수님을 먼저 본받았습니다. 그래서 5절을 보시면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여기서 우리가 바울 선교팀입니다. 바울선교팀이 주님과 동급으로 자신들을 놓았는가? 교만한 것 아닌가요? 아니요. 이 말은 바울선교팀이 이미 주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해서 지금 주님과 같은 곳에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 서신 곳에 함께 서 있는 것, 주님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주님을 참 많이 닮은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도 주님을 본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을 누구를 통해 본받았을까요? ! 바울선교팀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바울 선교팀의 모습을 보면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닮아갔습니다. 이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도 주님 계신 곳에 함께 있으면서 주님과 참 가까워져 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7절에는 모든 믿는 자들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예수님을 본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바울선교팀-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모든 믿는 자들 이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 바른 믿음생활에 대한 말씀을 오늘 우리가 보고 듣고 순종하려고 합니다. 이런 연쇄반응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또 본이 되는 모습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임을 알 수 있는 외적 증거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질문 두 가지를 할 겁니다. 이 질문에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 아니요입니다.

 

첫째,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처럼 되고 싶습니까?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십니까? , 아니요 됐습니까?

둘째,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볼 때, 본받고 싶어할까요? ,아니요 됐습니까?

 

아마, 첫째 질문에는 자신있게 예! 하셨을 텐데 둘째 질문에는 자신이 없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여러분을 비판하거나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자신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방향은 정확하게 잡읍시다. 이 자리에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어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시죠? ! 그럼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정합시다.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닮고 싶어하도록 본이 되는 삶을 살자! 이렇게 삶의 방향을 정합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고 그의 삶의 방향을 다른 사람의 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잘 배워 예수님을 본받는 삶,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나를 통해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 본이 되는 삶으로 정합시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동의하는 분은 아멘합시다. 아멘.

 

본받고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원하는 분들에게 다음 단계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본받고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이렇게 하십시오.

 

1.상황을 이기는 믿음을 가집시다.

6절을 보면 너희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라고 시작합니다. 주를 본받기 위해 애쓰던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평안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믿음생활 하는 것을 장려하고 격려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환란이 있었던 때입니다. 여기서 많은 환란의 그림을 그려 드리겠습니다. 많은 환란의 그림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포도즙 틀에 넣고 으깬다는 의미가 환란입니다. 그런데 그런 으깨어지는 것이 많다는 말을 만나서 으깨어지고 으깨어지고 으깨어져서 완전히 갈아지는 상상을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주를 본받기 위해 살다보면 평안한 날도 있지만 극심한 환란을 겪을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주를 본받는다고 무조건 환란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평안할 때도 환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평안할 때는 느슨해지고 게을러질 때가 많습니다. 환란이 많은 때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변치않고 주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환란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환란의 시험이 와도 나는 변치 않고 나의 가는 길을 가리라 이런 믿음의 결단을 합시다.

 

 

2.성령충만과 말씀충만을 받읍시다.

6절을 계속해서 보시면 너희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라고 되어있습니다. 어떤 환란이 와도 주를 본받는 생활이 꺽이지 않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주를 본받는 삶에서 본이 되는 삶으로 연결되려면 그 사이에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6절에서 7절로 한 절로 넘어가지만 이 한절 사이에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를 본받는 삶을 성공해야지만 본이 되는 삶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를 본받는 삶과 본이 되는 삶 사이에 많은 환란이 올 수 도 있습니다. 7절에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것은 많은 환란을 이기고 주를 본받는 삶을 살아냈다는 말입니다.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자격증이 주어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로 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많은 환란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제 믿음생활에서 많은 환란을 이긴 사람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성령충만 말씀 충만 받으면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많은 환란이 와도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마땅히 감당할 시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하면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이길 수 있으니 기쁨으로 환란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쁨은 어떻게 올까요? 성령님께서 밝히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 말씀충만을 위해 늘 기도하십시오. 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수능시험이 끝나고 1등한 친구들에게 비결을 물으면, ‘학교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어요.“ 때려주고 싶죠? 하지만 정답이기도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확실히 해야 그 위에 다른 방법을 써도 효과가 있죠.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기본기는 성령충만과 말씀충만입니다. 기본에 충실한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흉내가 아닌 진짜가 됩시다.

조금 전에 본받는 자의 의미가 광대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하게 배우가 자신이 맡은 배역의 연기를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흉내 내는 것입니다. 진짜는 아니죠? 옛날 드라마 중에 경이적인 시청률 70퍼센트를 기록했던 여로라는 드라마를 아십니까?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드라마라 저는 제대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악독한 시어머니 역을 맡았던 박주아라는 탤런트의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박주아 씨의 표독스러운 연기를 보면서 TV를 보다가 그릇을 던지기도 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공수부대 군인 7명이 녹화장에 찾아와서 시어머니 역할을 맡은 연기자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위협까지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연기를 잘 했으면 이런 일까지 일어났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박주아 씨가 실제 그 시어머니는 아닙니다. 정해진 배역대로 연기한 것입니다.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공연이 끝나면 연기자나 광대나 다시 본인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원래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믿음생활은 그게 아닙니다. 진짜인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하든지 더 닮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됩니다.

 

여러분! 옆으로 앞뒤로 한번 돌아보십시오.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닮았습니까? 같은 사람 있나요?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자라난 배경도 다르고 생활 환경도 다릅니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생활을 오래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하면 서로 닮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예수님 닮으려고 하고 여러분도 각자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니까 나중에는 모두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그러니 믿음생활의 결과, 우리 모두 닮습니다. 이것이 맞죠? 이렇게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그럼 현실에서 우리가 닮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모델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델을 다른 것으로, 다른 누군가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델이 예수님이어야 하는데 내가 되고 싶은 모델로 부자들, 권력자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모델로 하니까 서로 닮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모델로 하십시오. 그래서 주를 본받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를 본받는다고 할 때, 흉내가 아닌 진짜가 됩시다. 교회 와서 흉내만 내다가 막상 삶의 현장에서 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지 맙시다. 원래 우리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입니다.”그러니 우리는 이제 없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길은 떠났고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었으니까요? 그럼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예수로 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로 삽시다. 예수화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로 살 때, 우리는 흉내가 아닌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을 본받기 위해 늘 애씁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힘들때가 있을 겁니다. 환란이 있습니다. 환란이 와도 많은 환란, 즉 극심한 환란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겨냅시다. 말씀의 충만함으로 이겨냅시다. 그렇게 이겨낼 때, 우리는 또 다른 믿는 자들에게 믿음의 본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의 방향입니다. 바라기는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는 예수로 사는 방법 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흉내가 아닌 진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