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은혜에 감격하는 자(데살로니가전서 2장 1~4절) 본문
은혜에 감격하는 자(데살로니가전서 2:1~12)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전도훈련을 많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받아야 한다.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한다. 이왕이면 말을 잘 해야 한다. 사람들을 대하는 좋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전파의 첫 출발점이 아닙니다. 이렇게 출발하면 결국 사람의 공로와 사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복음전파의 결과에 대해 잘했다 못했다 등의 평가를 하게 됩니다. 결국 전도를 함에도 자기 자랑, 자기 과시를 하게 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만큼 전도한다고 스스로 교만의 자리에 앉고 맙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2장 1절~12절까지 읽었지만 오늘은 4절 말씀의 앞부분만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여기까지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탁받은 자였습니다. 위탁받다는 말은 남에게 사물이나 사물의 책임을 맡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원어상 의미에서는 ‘믿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믿으시고 맡기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이 4절에 있는 데로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입니다. ‘옳게 여기심을 입어’의 의미는 원래 금속의 순도를 불로써 시험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현재 완료 수동태를 씀으로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해 자격 있고 옳은 사람으로 인정된 상태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다. 하나님께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될 것 입니다. 하나님의 검증을 통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잘 하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을 옳게 여기셨을까요? 사도 바울이 전도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결과를 보고 인정하신 걸까요? 2절에 보듯이 고난과 능욕을 당해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인내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옳게 여기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옳게 여기신 때가 언제 부터였을까요?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먼저 신실하게 여기셨기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비록 죄인 중에 괴수였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을 믿어주셨습니다.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구석이 없고 인정받을만한 근거가 없는데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를 전도를 위한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바울이 전도를 잘 할 것 같으니까, 복음을 잘 전할 것 같으니까 그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9장1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바울에게 보내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시고 그가 뭔가 전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전도의 열매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처럼 ‘성과주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맡긴 이유는 우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신뢰할 만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냥 나를 믿어주신 것입니다. 나를 신뢰하신 것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한 가지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과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일단 구원해 주셔서 감사는 하지만 전도는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감격, 은혜에 대한 감격입니다. 도대체 내가 뭔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셔서 하나님을 감히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는가? 감사와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 감사하고 감격하는 사람이라면 복음을 경험하고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은 문제가 없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해야 할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입이 닫혀 있을 때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곳에 여행을 갔는데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의 광경을 봤습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했던 나만의 멋진 경험을 했습니다. 하다못해 큰 사고나 사건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럼 만나는 사람들마다 얘기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어디를 갔다왔는데, 와~~~ 진짜 멋지더라. 어쩌구 저쩌구.... 야! 이번에 거기 사고났잖아. 나 거기 있었잖아. 말도 마라...그러면서 상황 설명을 다 하지 않습니까? 한번은 휴가 때. 하동 최참판댁 주변 한옥팬션에 하룻밤 머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드라마 촬영이 최참판댁에서 있었습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겠지만 같이 휴가간 일행들이 다 연예인 한번 보겠다고 그 앞에서 난리였습니다. 사실 저도 그 난리판에 같이 있었습니다. 여자연예인 얼굴이 얼마나 예쁘고 작은지 진짜 주먹보다 작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였습니다. 휴가를 다녀 온 후, 사람들에게 촬영장 이야기를 합니다. 연예인 누구 봤는데, 그 여자 연예인이 지나가면서 나보고 안녕하세요 하면서 지나갔는데, 정말 얼굴이 요만해~~ 진짜 예쁘더라...이렇게 수다를 떠는 거죠. 촌놈이 촬영장에서 겪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던 거듭남의 현장은 세상의 그 어떤 촬영현장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더 감동이 있습니다. 날 구원하기 위해 골고다의 언덕을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오르시고 피를 흘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스토리로도 대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에 대해 여러분의 반응은 어떴습니까? 매일 매주 듣는 말입니까? 그래서 식상한 말입니까? 우리 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와 버린다든지, 아니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마음이 복음에 대해 별 감격이 없는 돌같은 마음이 되었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는 자가 복음 전하는 사람의 첫째 조건입니다.
여름을 맞이해 청년대학부 수련회를 농촌선교로 갔을 때였습니다. 3박 4일의 일정이었고 매일마다 나가서 마을 어르신들, 주민들,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한 교회를 거점으로 해서 영어캠프를 위주로 하는 성경학교도 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기 위해 CCC전도지인 사영리를 연습하고 갔습니다. 마침 이제 갓 예수를 믿은 여자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기도회마다 감사의 눈문이 메마르지 않던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인 전도교육, 복음을 전하는 것에는 아직 미숙한 단계였죠? 마지막 날 저녁에 마을 주민 초청전도축제를 했습니다. 영어캠프에 참석했던 마을 아이들이 발표를 하고 청년대학부 친구들도 여러 가지 공연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 초청축제를 위해서 4영리를 전도를 할 때, 꼭 교회로 초청축제에 초청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청축제에 가장 많은 주민들을 초청한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바로 조금전에 말씀드린 그 여학생이었습니다. 다들 4영리를 조리있게 잘 전했었는데, 이 친구는 아직 능숙하게 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전도를 능숙하게는 못했지만 울먹울먹하면서 "할아버지, 꼭 예수 믿으셔야 해요. 할머니 예수 믿어야 천국가요. 정말이에요." .ㅠㅠ 눈물을 흘리면서 "초청축제에 꼭 오셔야 되요"라고 했대요. 나중애 초청받아 오신 분들이 다같이 그 여학생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고, 저 학생이 말은 잘 못하는데 얼마나 진심으로 초청하든지, 예수 안믿으면 안되겠더라구요. 계속 저 학생 얼굴이 떠올라서 교회 왔구먼." 유창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줄 진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은혜에 감격하는 자가 되십시오. 복음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 그 은혜에 감격한 사람이 진짜 복음의 진수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은혜에 감격하는 자가 얼마나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처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와서 무엇을 보겠습니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얼마나 감격하고 있는가? 그것이 예배를 통해 얼마나 드러나고 있는가? 이것을 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예수님을 믿겠습니꺄? 여러분의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진심인가? 아닌가?이거 아닐까요? 은혜에 대한 감격이 사라져 아무리 봐도 예수 믿는 사람 같지 않은데.... 이렇게 비춰진다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받음에 대해 꺼지지 않는 불을 가지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옳게 여기심을 입어'의 의미는 원래 금속의 순도를 불로써 시험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완료 수동태를 씀으로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해 자격 있고 옳은 사람으로 인정됨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계속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탁월한 능력도, 대단한 힘도 아닙니다. 뛰어난 어떤 성공의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도 항상 성공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덴에서의 전도는 실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래 달리기입니다. 꾸준함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꾸준하게 식지않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고 한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말씀에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 라는 말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영적 침체 가운데 빠져있는 성도님이 계시면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 그리고 이 감격이 꾸준하게 식지않고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이것이 복음을 위탁받은 사람의 힘입니다. 굳어버린 마음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에 대해 책임을 맡기셨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음을 믿고 맡기셨으니 하나님의 믿음에 부합하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내가 뭔데?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내게 베푸셨는가?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 이런 감격이 있는 사람이 진짜 복음을 맡은 사람이 됩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고 꾸준하게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예! 충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신뢰하여 복음을 맡기셨을 때, 우리의 바른 자세는 충성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복음이 순수함을 지키라. 두번째 시간으로 복음을 맡은 자의 바른 자세 3가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에 대해 충성된 자세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성경에서 함께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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