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기억함이 되는 신앙 : 데살로니가전서 1장 1~4절 본문
기억함이 되는 신앙 : 데살로니가전서 1장1~4절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대왕을 배출한 마케도냐의 수도로서 그리스 북부 지역에 위치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항구도시였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대였습니다. 그래서 상업이 발달하고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에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많은 헬라인, 로마인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와서 미친듯이 전도를 방해하고 바울과 그 일행들을 데살로니가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세월이 지난 뒤에 데살로니가에 남아있던 디모데가 고린도에 내려와서 데살로니가 교회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들은 바울은 무척 기뻐하면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가르치기 위해 데살로니가서를 보냈습니다.
과연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어떤 모습을 듣고 바울이 기뻐했을까요?
바울이 들었던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 하는지 그들의 믿음생활의 좋은 소문이 곳곳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니 그 소문을 들은 바울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말로만 듣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말뿐인 허공을 치는 소리가 아닌 살아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사망권세를 깨뜨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복음 가운데는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며 살아계신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 태산과 같은 큰 확신으로 신앙의 승리를 거두게 합니다. 6절에 보시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많은 환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7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좋은 믿음의 소문을 내었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수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많이 못들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얼마든지 듣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정작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의 모습을 기억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바울의 기억 속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바울이 기억하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은 믿음, 사랑, 소망 이 세가지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말로만 믿음, 말로만 사랑, 말로만 소망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바울이 기억하고 항상 감사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의 역사
기도할 때, 역사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아멘! 하니까 역사하는 것이 굉장히 거창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라는 말은 행위라는 뜻입니다. 역사라는 말은 실천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역사란?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믿음의 역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술로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을 야고보서에서는 죽은 믿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참된 믿음은 행위가 있는 믿음입니다. 참 믿음은 실천을 일으킵니다. 그럼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솔직히 저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실천하면 사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 아닙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마지막에 보이십니까?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리라." 이 말씀을 그대로 풀면 이렇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는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 때 그 말씀이 역사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역사하게 하는 것. 우리의 믿음이 실천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강권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을 주장하고 내 손과 발을 주장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 때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수 있을까요? 내 모든 인생의 관심이, 내 모든 삶의 초점이 바로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듣고 실천하는 한걸음 한걸음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믿음만이, 믿음대로 살았던 삶만이 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역사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노아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역사하는 믿음이 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역사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습니다. 또 백세에 얻은 외아들을 바치라 할 때에 제물로 드렸습니다. 역사하는 믿음,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정말 예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구원하셨고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말로만 믿음이 아닌 믿음의 실천이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사랑의 수고
그 다음 기억함이 되는 신앙 두번째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신앙입니다. 여기서 수고라는 말에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바로 진통, 출산, 산고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께 질문 하나하겠습니다. 특별히 여자 성도님들께 묻습니다. 아기를 낳는 해산의 고통이 심하다고 해서 아기를 낳지 않겠습니까? 아기를 낳는다고 10개월간 힘들고 고통받고 몸매 망가지고 아기 낳을 때 통증을 너무 무서워서 아기를 낳지 않으면 사랑스러운 아기를 품에 안는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한다면 수고하게 됩니다. 사랑한다면 진통하게 됩니다. 수고없는 사랑, 희생없는 사랑, 헌신없는 사랑, 나눔없는 사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고와 손해와 희생과 헌신이 있다할지라도 기꺼이 사랑할 때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예)경주동부교회 있을 때, 불우이웃을 돕던 자원봉사자
제가 전도사였을 때입니다. 교회로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경주동부교회에 다니는 할머니라고 하는데, 사는 형편이 너무 불쌍해서 안되겠다고 교회에서 책임지고 돌봐야 되는게 아니냐는 항의전화였습니다. 알고보니 교회 전도축제할 때 한번 왔던 주민이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경주동부교회 다니는 성도라고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이 사는 곳에 가보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고발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 나오는 쓰레기 집 정도였습니다. 치매도 오셔서 여기저기 대변 냄새도 진동했습니다. 도와주려고 왔다가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오더니만 집청소를 하기 시작하고 대변도 치우고 정리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죽 한그릇을 만들어 그 할머니에게 먹여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 아주머니가 어디서 왔어요? 묻길래 요 앞에 경주동부교회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까? 그럼 일단 여기 이것좀 도와주세요라고 하길래 도와드리려고 하니까 그 분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도움을 주려면 옷이라도 일할 수 있는 옷을 입고 오시지?" 라고 했습니다. 제가 정장 입고 갔었거든요. 솔직히 일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어떤 상황인지 알고 가야지?라고만 생각했지 실제적인 사랑의 수고를 하려고는 하지 않았던 모습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저의 부끄러웠던 일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랑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랑한다면 수고합시다. 사랑한다면 우리가 외치는 그 사랑의 열매를 맺어갑시다. 우리는 세상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진짜 사랑의 수고를 하는 성도들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믿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장14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진짜 사랑의 수고를 다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합니다. 이것이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독생자를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걷고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사랑때문이었습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실 때, 그 장면을 하늘에서 보는 장면으로 바꾸면서 뭉글뭉글 뭔가 영그는 화면이 되고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땅에 뚝 떨어집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기까지 내버려두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시던 예수님, 인류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 고통을 겪으시는 예수님도 사랑의 수고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우리 호산나교회가 사랑의 수고가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함께 사랑의 수고를 다합시다.
3. 소망의 인내
세번째 기억함이 되는 신앙은 소망의 인내입니다. 소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3절을 계속해서 보시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소망이 있었습니다. 무엇에 대한 소망입니까? 우리 주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재림에 대한 소망을 말씀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하지만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때를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소망을 가진다보니 환란과 핍박이 올 때, 쉽게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소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내하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막연한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내는 막연한 인내가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과 인내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 그린 '소망'이란 유명한 명화가 있습니다. 지구가 있는데 그 지구 위에 남루하게 옷을 입은 어떤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가 거기서 하프를 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프줄을 가만히 보면 그 줄들이 가닥가닥 끊겨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줄만 남아 있습니다. 이 소녀는 그 하나밖에 없는 하프줄을 가지고 하프를 켜고 있는 것입니다. 줄이 정상적으로 모두 있어도 하프를 켜기 어려운데. 가닥가닥 끊어지고 하나밖에 없으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 줄을 가지고 소녀는 하프를 켭니다. 그 그림이 전체적으로 어둡습니다. 하지만 제목 '소망'입니다.
인맥의 줄이 끊어지고 금맥의 줄이 끊어지고 세상 줄과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져 배신당하고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을지라도 우리에게 한 줄만 있으면 소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인내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무슨 줄일까요? 하나님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마지막 한 줄만 있으면 소망과 인내를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교통할 수 있는 한 가닥 줄만 있으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사랑합니다. 고후4:7-11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소망하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답답한 일을 당해도, 핍박을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소망의 인내로 최후 승리할 줄 믿습니다.
소망은 역경을 이기는 힘입니다. 2차대전시에 나치 수용소에서 기록한 프랭클린 박사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소망을 포기한 자는 몸도 마음도 곧 쇠약해졌다. 그러나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자는 자신도 건강했고 남까지 도와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씨앗을 땅에 넣은 농부는 가을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알에 따라서 다르지만 알이 부화하는데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타인이나 자신에 대해서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위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호산나교회와 성도들이 됩시다. 사랑의 수고를 감당합시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놓지말고 인내를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신약 > 데살로니가전서 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돌봄이 있는 교회(데살로니가전서 2장 6~9절) (0) | 2017.11.29 |
---|---|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데살로니가전서 2장 1~6절) (0) | 2017.11.15 |
은혜에 감격하는 자(데살로니가전서 2장 1~4절) (0) | 2017.10.07 |
믿음의 소문 (데살로니가전서 1장 8~10절) (0) | 2017.09.23 |
택함받은 증거는 무엇일까? (데살로니가전서 1:4-7절) (0) | 2017.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