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은혜로만 가능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22절) 본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22)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힘들고 어렵고 이해되지 않았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제 또래의 다른 교회친구들은 오병이어.출애굽 홍해가 갈라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걸.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가시는 등의 기적을 도저히 믿을수없어서 힘들어 했는데 저는 오히려 그런 기적은 잘 믿어지고 쟐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살면서 슬픈 일, 울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바빠 죽겠다말이 입에 붙어 사는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
감사할 일 보다 불편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 더 많은데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그런데 시간이 흘러 흘러 지금은 이 말씀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여러분 중에도 오늘의 말씀이 이제는 그냥 믿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언제 이것을 알수 있느냐하면 병원에 가보면 압니다. 같은 사고가 나서 입원해도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한쪽은 사고낸 사람 원망하고 사고에 대해 불안해하고 불평하고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쪽은 사고가 났는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합니다.
예전에 어떤 장로님이 나무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작업하다가 팽팽팽팽 돌아가는 기계에서 나무가 팅겨져 나와 몸을 관통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교역자엠티 중이었는데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병원으로 급하게 가보니 한창 수술중이었어요. 그런데 부인 권사님 표정이 평안해요. 장로님도 교역자들을 보고 첫 마디가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이해가 안되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말은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삶이었습니다. 손톱에 가시하나만 박혀도 괴로워하고 불평하던 사람이 몸이 나무가 관통을 해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참 신기하죠.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왜 항상 감사하지 못하고 쉬지말고 기도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할까요?
기쁨과 감사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조건적인 기쁨, 조건적인 기도, 조건적인 감사”를 합니다.
올해 사업이 잘 되었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장사가 잘 되고 건강해서.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해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승진해서 감사합니다. 기도도 기도할 수밖에 없는 긴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이런 조건적인 기쁨. 기도. 감사가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 기도, 감사의 중심에는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잘되면 내 가족이 잘 되면 내 사업과 장사가 잘 되면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조건적인 기쁨,기도,감사는 세상의 감사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조건적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전혀 다른 기쁨과 감사, 기도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에는 두 가지를 알면 됩니다.
첫째는 나는 누구인가를 알면 되고 둘째는 하나님을 알면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러분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지금 살아있으니 예전에 죽었던 상태가 생각이 잘 안나시죠? 저와 여러분은 원래 죽었던 사람입니다. 여려분이 기도하실 때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이라고 기도하는데. 아니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이라는 말은 목숨이 깔딱깔딱 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숨이 꼴깍꼴깍하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는 완전 죽은 상태였습니다. 소망이라고는 없는 자였습니다. 그렇게 절망 중에 있던 우리였습니다. 죽었다니까요. 그런데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고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죽었던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진정으로 이것을 깨닫고 나면 조건적인 감사, 조건적인 기쁨, 조건적인 기도가 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너무 큰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큰 걸 받았는데 조그만 것, 뭐가 있니 없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죽은 사람 살려놨더니, 아파트가 좁아요. 죽은 사람 살려놨더니 이제 와서 월급이 작아요. 그거 아니잖아요. 하나님께 받은 것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 큰 은혜를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면 세상의 조금만 것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정말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중요한 것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얼마나 대단하지 알면 조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어느 집사님들과 거리를 함께 걷다가 노방전도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이 예수 믿고 복받으세요.하면서 전도지를 주셨습니다.
그 때, 전도지를 받은 한 집사님이 이렇게 다른 집사님들께 물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예수 믿고 나서 어떤 복을 받았어요? 예수 믿고 잘 된 게 뭐에요? 전도 하시는 분들이 “예수믿고 복받으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집사님이.
"복이요? 벌써 받았는데요. 예수 믿은 게 복이지. 그만한 복이 어디 있어요! 예수님이 최고 복이지!
제가 중간에서 대화가 오고가는 것을 듣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아멘!했습니다. 다른 생각이 안나요. 그렇지!
질문하신 집사님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다른 집사님이 뭐라고 하실까? 그러면서 이 집사님이 예수 믿고 어떤 복을 받았지? 뭐가 좋아지고 잘된 게 뭐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수가 최고요!라고 하니 아멘! 아멘! 아멘!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서 조건과 상황이 크게 보입니까? 아니면 예수가 크게 보입니까? 여러분에게는 예수가 가장 크게 보이기를 바랍니다.
주보의 감사 제목을 볼 때 이런 제목을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 믿음 지키려 직장은 잃었지만 예수 믿음 지켜서 감사합니다.
건강 잃었지만 예배 시간을 다시 찾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합니다. 어떠한 처지에 처할지라고 내 주 하나님만 있으면 든든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을 보며 망하세요. 아프세요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작은 것 하나에 희희낙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니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면 세상의 조그만 것이 있느냐 없느냐 때문에 울고불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왜? 우리의 생각에 성공해야지만, 건강해져야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지만, 승진해야지만 기뻐하고 감사하나요?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모습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80.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영생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짧은 생애에 우리의 기쁨과 감사, 그리고 기도를 두지 마시고 영생에 우리의 기쁨을 두고 감사를 두며 기도를 두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예수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할지라도 믿음을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옷을 찢기고 벗겨져 심하게 매질을 당한 후 였습니다. 깊은 감옥, 차가운 바닥에 발에는 차꼬가 채워져 온몸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어도 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의 입에서 찬송과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분명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조건이 아닙니다. 조건은 최악입니다. 그런데도 불평과 불만이 없습니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하나님!!!”이런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기도와 찬송의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어떤 가사였는지 알지 못하지만 찬송과 기도가 울려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기도와 찬송의 소리 속에 옥문이 열린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하고 나면 항상 기뻐하게 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19절~22절을 보시면 성령을 소멸치말라. 예언을 멸치시 말라.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라.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18절에 보듯이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성령을 소멸하며 예언을 멸시하고 좋은 것을 버리고 악을 취하겠습니까? 항상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쉬지말고 주의 은혜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고 응답을 주십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할 일들이 더해집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르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만이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은혜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의 삶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안에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게 하시며 쉬지말고 기도하게 하시며 범사에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가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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