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음의 소원대로 갑니다(사도행전 24:24~25:12) 본문
마음의 소원대로 갑니다(사도행전 24:24~25:12)
오늘 말씀에는 총독이 두 사람 등장합니다.
한명은 벨릭스, 한명은 베스도입니다.
2년 간격으로 총독이 바뀌었는데요,
오늘 말씀에는 이 두사람이 얻기를 구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알아 보려고 합니다.
24-27절까지 보시면,
먼저 24절입니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벨릭스 총독의 아내는 드루실라라고 하는 유대여자였습니다.
유대여자다 보니 바울에 대한 소문도 많이 들었을테고
바울이 전하는 예수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벨릭스와 함께 바울에게 와서 그리스도 예수의 도를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기에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 속에 믿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믿음이 생기게 되는데 참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25절 입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 즉 복음을 전하는 중에
바울이 의, 절제, 장차 오는 심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벨릭스가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려움에서 끝났습니다.
계속해서 25절을 보시면,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고 합니다.
네, 이후 틈이 있으면 바울을 자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의 마음 속에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반드시 일어나야할 믿음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려워 함은 있었는데, 그 두려움이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6절입니다.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벨릭스가 말씀을 들음에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그 마음에 구하는 것이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돈은 뇌물을 말하는 거겠죠.
바울과 벨릭스가 자주 만남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동상이몽이라~ 서로의 만남의 목적이 다릅니다.
벨릭스는 뇌물을 받으려는 목적이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죽으심. 부활하심,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놀라운 소식이 귀에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돈, 뇌물에 대한 탐욕이 하나님의 은혜를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벨릭스 총독에게 믿음의 생기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27절입니다.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벨릭스가 돈을 구함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았는데,
그가 또 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유대인의 마음은 다른 말로 하면 지지율입니다. 정치인들에게 지지율은 참 중요합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들의 지지율이 얼마나 높으냐?
자기가 잘 다스렸다는 치적을 세우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지지, 인기, 명예, 그로인해 오는 신분 상승의 기회.
이것이 벨릭스가 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 구합니다.
돈도 구하고, 인기도 구하고, 명예도 구하고 힘과 권세도 구하고...
마음 속에 세상의 불순물이 너무 많습니다.
그 마음 속에 복음이 들어갈 공간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또 한명의 총독이 있습니다. 베스도입니다.
벨릭스의 후임으로 온 베스도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25장 1절을 보십시오.
"베스도가 부임한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보통 총독이 부임하면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총독을 찾아와 인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총독이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갑니다.
예루살렘에 누가 있을까요? 2절에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높은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는데 그들이 바울을 고소합니다.
2년 동안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을 죽이기 위한 시도를 합니다.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달라고 베스도 총독에게 요청합니다.
이유는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길에 매복했다가 바울을 덮쳐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베스도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 음모는 모릅니다.
대신 베스도에게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베스도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9절을 보십시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베스도도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합니다.
지지율, 인기, 명예, 신분상승, 더 높고 강한 힘과 권세를 얻고자 하는
세상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명의 총독이 똑같습니다. 참 안타깝게도 두 명 다 복음의 진수,
복음의 진국인 바울을 옆에 두고, 바울을 만났는데도
그들에게 구원받을 믿음이 생기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 벨릭스는 더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인류역사상 최고의 전도자인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또 들어도
그 마음에 믿음이 생기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의 소원이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총독과는 다른 한 명을 소개합니다. 바울입니다.
베스도가 자기가 내리는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대제사장과 높은 지위에 있는 고위층 권력자들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자기 앞에서
심문을 받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대제사장과 높은 사람들의 요청대로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울은 로마시민권자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가이사 황제 앞에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가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의 마음의 소원은 로마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로마'입니다.
당시 세상의 중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며, 세상 모든 나라와 인종이 모이는 곳.
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울의 마음의 소원이었습니다.
내가 로마로 가야 된다. 내가 로마로 가야 된다.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결국 바울은 로마로 갑니다. 마음이 소원대로 로마로 갑니다. 구하는 대로 갑니다.
벨릭스는 구하는 것, 마음이 소원이 돈이었습니다.
그는 돈 따라 가다가 돈에 파묻혀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놓쳐버리고 멸망의 길을 갑니다.
벨릭스도 베스도도 구하는 것, 마음의 소원이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인기와 명예, 권세와 힘,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원했지만
사람들 속에 살다가 사람들 속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어떤 결말을 맞이 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분명한 것은 독생자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마음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무엇을 묵상합니까? 기도의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지 않습니까?
말씀의 자리에, 기도의 자리에, 은혜의 자리에는 있지만,
구하는 것, 마음의 소원이 다른 것을 구하기 때문에
정말 받아야할 은혜는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마음을 청소하시고 정리정돈해서 세상의 것들은 버리고
주님을 향한 마음의 소원을 정하십시오.
내가 주님 앞에 정한 마음의 소원이 나의 발걸음을 이끌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있으면
위로와 회복과 섬김과 나눔이 필요한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며
그들에게로 이끌어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 구원의 복된 소식을 꼭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마음이 있으면
전도대상자로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며, 복음을 위한 만남을 주선하실 것이며
복음의 능력이 역사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를 위한 마음의 소원이 있으면 보이지 않던 선교의 방법을 보게 하실 것이며,
선교관에 입주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에게 관심이 가며, 섬기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질 것이며, 매일 스쳐 지나가던 열두광주리 냉장고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열두광주리가 아직 뭔지 모르시는 분들, 마음 속으로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십시오.
자라나는 다음 세대가 마음의 소원이 되면 어떤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날 지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마음의 소원으로 두면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을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게 하시고
마음이 뜨거워져 양육과 교육을 위한 귀한 사역을 하나님께서 열어가실 것입니다.
오늘 내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실 것이며,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 귀하고 복된 일에 능력있게 쓰임받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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