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594)
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은 육신의 중요한 활동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의 중요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음식물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을 통해 진정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숨을 쉬어야 살수 있는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해야 살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을 마셔야 살수 있는 것은 생수이신 성령님이 내안에 충만해야 살수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은 자는 것 같은 죽음이 있고 일어나는 것 같은 생명이 있으며. 생명이신 주님을 믿고 편히 잠들며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임을 일어날때마다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빛과 어둠이 있는 것은 예수님이 빛이며 말씀이 빛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에서 찬양하고 예배함으로 천국의 삶이 어떤 것인지 ..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면 이깁니다."입니다. 저를 따라해 볼까요? "오직, 하나님만,섬기면, 이깁니다." 아멘. 하나님은 참 일관적이십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의 메시지는 일관적으로 한가지입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내용이 있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가? 아니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첫 시작도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 원하십니다. 오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빼앗겼던 언약궤가 벧세메스로 돌아왔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수레의 나무를 패고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며 번제와 다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큰 기쁨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만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는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칠십명을 죽이셨습니다. 너무 놀란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로 언약궤를 옮기게 됩니다. 큰 기쁨의 큰 잔치가 순식간에 슬픔과 애통의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나요? 오늘은 벧세메스 사람들의 잘못을 짚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받은 은혜를 잊지말고 생각하라. 6장 13절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
"오직 예수 뿐입니다"라는 제목을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 수요기도회 때, IWT GX 인터내셔널 팀의 초청 공연이 있었습니다. 지난 수요기도회 때, 공연을 보시면서 어땠습니까? 좋았습니까? 초청공연을 보면서 복음을 위해 자신을 던진 청년들을 보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앞에서 춤추고 하니까 그들의 깊은 내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여러가지 아픔과 상처들이 많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고 춤이라는 재능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수요기도회 때. 간증과 춤도 참 좋았지만 사실 전날 화요일에 구역장 권찰 모임 때 간증과 춤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 훌라춤인가요? 하와이 춤있죠? 그 춤을 추시는데 손끝과 몸동작, 표정이 정말 천상에서 추는 춤 같았습..
'아리랑' 노래말 속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원망을 담고 있지만 다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희망도 담겨 있습니다. '떠났다'라는 말 속에는 "다시 돌아온다'는 기대와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 '이가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엘리의 며느리가 해산하면서 죽을 때 한 말이 이가봇입니다. 블렛에 패배한 일, 언약궤가 빼앗긴 일, 시아버지,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아이를 해산을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이가봇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참 비참한 일입니다. 한 가정의 비참한 몰락! 그리고 이가봇이라는 이름의 아이! 평생 그는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마치 모..
골로새서의 첫인사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발신자인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이자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디모데를 높이고 자신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고 세워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같이하는 사람이 잘 되는 행복'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2절 말씀을 통해 골로새서를 받아보는 수신자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수신자가 누구입니까?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골로새라는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골로새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수 없으나 골로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하심을 받아 성도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성도들인가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