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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역대상10:1-14 하나님의 나라를 맡는 자. 1~9장까지의 기나긴 족보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족보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이제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기나긴 족보 이야기의 마지막은 사울왕의 족보였습니다. 1-9장의 긴 족보의 결론을 사울왕으로 마무리 합니다. 그럼 사울왕가의 성장과 번영, 발전의 이야기가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족보 이후에 어떤 이야기로 시작합니까? 일반적으로 나와야 할 사울왕가의 성장과 번영, 발전의 이야기인가요? 아닙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사울왕의 죽음 이야기로 넘어..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과 조직과 임무에 대한 기록이 계속됩니다. 그 중에서 10-13절: 제사장 가문의 명단. 14-16절: 레위인 및 찬양단 대표자들의 명단. 17-19절: 문지기 대표자들의 명단. 19-27절: 문지기들의 조직과 임무. 28-34절: 레위인의 주요 임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바른 모습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일할 힘이 있으면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십시오. 13절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의 임무를 수행할 힘있는 자"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할 때, 누구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섬기는 일을 위해 내가 가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라는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역대상9:1~9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오늘 말씀은 1절과 2절 말씀을 위주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을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거론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이 말을 우리 민족에게 적용하면 과거에 겪었던 아픔의 원인을 알고 그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고 과거를 통해 건설적인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역사는 참으로 쓰라린 치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고통받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학자들에게 연구를 ..
역대상8:1-40 영적인 환경을 만들라! 1.또 다시 베냐민 지파? 앞선 7장에서 베냐민 지파의 족보를 소개했는데, 8장에 와서 다시 베냐민 지파의 족보가 별도로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서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왜 베냐민 지파의 족보를 또 다시 기록했을까요? 답은 33절에 있습니다.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왕을 배출한 지파가 베냐민지파입니다. 8장은 지루한 족보에,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이 연결된 족보지만 그렇게 사울 왕에게까지 이어지고, 또 사울왕 이후의 자손들, 베냐민 자손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비록 사울왕이 하나님에 대한 처음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지만, 그것은 사울이라는 한 인..
역대상7:30-40 아셀 지파의 계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셀 지파의 계보에서 특이한 사항은 40절 입니다. "이는 다 아셀의 자손으로 우두머리요 정선된 용감한 장사요 방백의 우두머리라 출전할 만한 자를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하면 이만 육천 명이었더라" 먼저, 부정적인 교훈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오늘 우리에게 긍정적인 교훈과 부정적인 교훈을 함께 줍니다. 아셀 지파의 용사 수는 26,000명으로 다른 지파에 비해 적습니다. 아셀 지파는 가나안 정복 이후, 비교적 비옥하고 좋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원주민인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에게 눌려 살면서 지파가 번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속에서 소금으로 살지 ..
역대상7:21~22 위로자 예수 지난 시간에는 에브라임의 두 아들 에셀과 엘르앗이 가드 사람들의 짐승을 빼앗으려다 죽임을 당한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에브라임은 큰 슬픔에 빠져있었는데 그의 형제들의 와서 에브라임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에브라임을 위로한 형제들은 므낫세와 다른 야곱의 아들들로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다른 형제들의 위로는 에브라임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어주었을 겁니다. 사실, 형제가 슬픔을 당하면 위로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마땅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하지만 가족파괴가 점점 심해지는 시대를 살다보니 부모나 형제 친척들에게 향한 사랑과 관심, 애정과 연합이 무엇보다 더욱 귀한 가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 누구보다 자기 가족을 잘 돌아보고 서로를..